[좌충우돌 산티아고 순례길] 23편

오늘은 잠을 좀 자서 몸이 제법 가볍습니다. 새벽 6시에 알베르게 문을 열어준다고 해서 시간 맞춰 짐을 꾸려 나왔습니다. 벌써 문 열기를 기다리는 순례자가 여럿 나와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저도 어제 사놓았던 하몬(jamon. 돼지 뒷다리를 소금에 절여 말리는 방식으로 만든 생 햄, 스페인 전통 음식)을 곁들인 빵으로 아침을 먹었는데 여태 먹던 하몬보다 훨씬 맛이 있었습니다.

이 길을 걸으며 빵에 가장 많이 곁들여 먹은 게 하몬인데 여태까지는 슈퍼에서 포장해서 1~2유로(우리 돈 1200~2500원 사이)에 파는 걸 사먹었었답니다. 그런데 어제 알베르게 입구에 하몬을 얇게 썰어서 파는 가게가 있었어요. 아주 맛있어 보여서 사놨었거든요. 직접 잘라서 파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맛이 확연히 달랐어요. 아니, 이제 하몬의 맛에 길들여진 걸까요?

순례자들을 위해 주민들이 내놓은 마실 물과 먹을 거리.

아무튼, 거기다 요구르트까지 먹고 나니 힘이 불끈 납니다.

어제 같이 걷던 스페인 여성 차로와 함께 출발을 했어요. 유서 깊은 레온 시내를 빠져나오는 데도 시간이 제법 걸렸습니다.

첫 번째 나온 바르(bar)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어제 함께 걷던 반가운 얼굴들이 보이네요. 스페인 장다리 아저씨 하우메, 네덜란드에서 온 데레사, 스웨덴 사람 샤롯데도 있네요. 무척 반가웠어요. 이젠 하도 자주 만나니 왠지 가족 같기도 합니다. 바르에서 모두 같이 출발을 합니다.

순례자들을 위해 집 앞에 마실 물과 먹을 것을 내놓은 스페인 아저씨와 함께.

한참을 걸으니 갈림길이 나왔어요. 차로와 하우메는 오른쪽을 택했고 데레사와 샤롯데는 왼쪽을 택해 걷기로 했어요.(안내서들은 대체로 왼쪽길을 권한다 - 편집자 주) 저는 차로와 함께 걸으려고 오른쪽을 선택합니다. 걷다 보니 이 길은 찻길과 함께 가는 길이었어요. 내일 목적지인 아스트로가까지는 좀 짧은 거리이긴 하지만, 찻길과 함께 가니 산만하기도 해서 좀 후회도 되긴 했어요.

조그만 동네를 지나는데 집 앞에 순례자를 위해 자두와 사탕과 비스킷, 물을 내놓은 분이 있네요. 자두도 하나 먹고 잠시 쉬면서 주인아저씨와 사진도 찍었어요. 길은 계속 찻길을 따라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도로의 빠름과 순례길의 느림이 함께하는 길이네요. 하지만, 빠름이 최선이 아님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빠름이 전혀 부럽지 않았어요. 어디서부터 흘러 왔는지 길옆의 수로에 맑은 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었어요. 잘 정비해 놓은 수로가 맘에 듭니다.

차로와 같이 걸으면서 모처럼 많은 이야기도 나누었어요. 자기는 남편과 이혼을 해서 딸과 살고 있다고 속 얘기까지 털어놓네요. 둘 다 영어를 잘 못하니 오히려 완전 영어권 사람들보다 이야기가 더 잘 통하는 게(?) 재밌었습니다. 서로 아는 단어가 비슷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야기를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산 마르틴 델 카미노(San Martin del Camino) 마을 입구입니다. 곧 알베르게(순례자 전용 숙소)에 도착했어요. 아까 잠깐 바르에서 만났던 한국 아가씨가 먼저 도착해 있어요. 서울에서 왔다는 이름이 주선이라는 친구였어요. 한국에서 혼자 왔는데 레온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다고 해요. 그러니까 오늘이 첫날인 거죠. 씻고 함께 잠깐 걸으며 내가 아는 정보를 전해 주었습니다.

▲ 산 마르틴 델 카미노 마을 공원에서 아이들이 가족과 함께 뛰노는 모습.

산티아고를 걷다 보면 왜 이리 한국사람이 많은지 물어보는 외국인이 많아요. 산티아고와 관련된 많은 책이 나와 있다 보니 산티아고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고, 대중매체 등에서 소개를 많이 한 것도 있겠지요.

그런데 제 생각은 여행 수준이 달라진 거로 생각해요. 단체로 깃발 들고 다니는 여행에서 벗어나 이젠 스스로 체험하고 쉬기도 하고 생각도 많이 하는 여행을 추구하게 돼서 그런 것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한국인이 많이 보이면 오히려 자랑스럽더라고요. 물론 끼리끼리만 어울리고 주방을 다 차지하고 음식을 해서 (한국 음식의 특성상) 다른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도 예의 없는 사람들이 있는 걸로 보아 '동양인이라서 눈에 더 띄어서 그렇게 보인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도 해 보았어요.

혼자 동네를 거닙니다. 산 마르틴 델 카미노는 아주 작은 마을이네요. 마당에 꽃도 예쁘게 가꾸었고 골목에 꽃을 심을 줄 아는 여유가 보기 좋았죠.

▲ 골목에 꽃을 심어 가꾸어놓은 산 마르틴 델 카미노 골목.

골목골목 다니며 둘러보고 동네 놀이터에 오니 젊은 엄마, 아빠가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와 놀고 있었어요. 이렇게 작은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것이 참 부럽고 그들이 더욱 예뻐 보이네요.

벤치에 앉아 쉬다가 숙소로 오니 차로가 저녁을 함께 해 먹자네요. 콜~!! 주선이와 이탈리아 친구 안드레아, 스페인 친구들까지 7명이 스파게티를 해먹기로 했어요. 숙소에 작은 매점이 있어 같이 재료를 사고 함께 채소를 다듬고, 조리하고 남자들은 설거지를 하고 화기애애하게 저녁을 먹었어요. 차로와 비센테는 전에 자주 만나던 스페인 순례자 삼인방의 일부고, 하우메, 착한 청년 호세와 호르헤도 각자 혼자 왔는데 길을 걷다가 자주 만나서 친해진 이들이에요.

저녁을 먹고 마당에서 쉬면서 내일 어디까지 걸을지 고민을 하는데 계산이 잘 나오지를 않아요.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일정을 맞추려고 매일 하는 고민이에요. 결국, 내일 아스트로가까지만 걷기로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듭니다. /글·사진 박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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