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를 마치고 밤 열 시가 다 되어서야 늦은 저녁을 먹었다. 방학이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게 좋다는 아들 둘이 밥상머리에 붙어 앉았다. 아버지가 차린 밥상에 꽤나 군침이 돌았나 보다. "옛말 틀린 게 하나도 없다. 우리 논에 물들어 갈 때와 내 새끼 목구멍에 밥 넘어갈 때가 제일 좋다더니." 물에 만 밥에 김치를 올려 후루룩 삼키는 큰아들을 보았다. "아니지요. 우리 가족 밥 먹을 때가 제일 좋죠." 녀석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렇다. 가족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참 좋은 것이다. 부모에겐 자식이, 자식에겐 부모가 잘 먹고 건강한 것이 참 행복일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부모의 삶은 계절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연일 폭염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조용한 아우성이 거리를 메운다. 숨이 막히는 더위에 거리는 한산하다. 간혹 지나는 이들은 양산을 들고 선글라스를 끼고 나름의 방법을 동원하여 더위를 피한다. 바다며 계곡으로 피서를 떠난다. 시원한 에어컨 아래를 찾아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들. 차라리 시원한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이 낫다는 이들도 있다. 한 푼이라도 아낀다고 관공서와 은행을 찾는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더위를 즐겨야 하는 이들이 더 많다. 한낮의 태양은 피한다고 하지만, 결코 태양과 멀어질 수 없는 이들이다. 현장에서 땀을 흘리는 분들, 폐지나 빈병을 수거하시는 분들도 도심의 직사광선과 복사열과 싸운다. 현대식 모습을 갖추지 못한 전통시장 상인들도 태양과 겨루기는 마찬가지다. 일일이 거론조차 할 수 있을까? 삶을 지탱하는 모든 이들은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한여름의 무더위와 싸우고 있다. 부모라면 특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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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둔 농부의 마음은 계절을 앞지른다. 한 여름 무더위에도 익어가는 깨를 그냥 볼 수 없고, 잘 영글어가는 고추를 외면할 수 없다. 손자 간식거리 준비하느라 고구마 줄기는 수시로 따서 껍질을 벗긴다. 간간이 더위에 논밭에서 쓰러졌다는 농부 이야기가 뉴스에 나올 때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매일 시골 어머님께 전화를 드린다. 이 더운 날 뭐하고 보내셨냐고. 해 뜨기 전 새벽에 나갔다 더워지면 들어온다 하신다. 한낮에는 일하지 마세요. 그래도 고추밭에 앉으면 그늘이 생겨 조금 낫다 하신다. 얼마 전 깨를 찐다 하셔서 자동차 핸들을 돌렸다. 깨 농사가 영 시원찮다. 오후 다섯 시가 넘었지만, 들판의 더위에 짜증이 났다. 코딱지만 한 밭뙈기를 놀이터 삼아, 일터 삼아 평생을 일하느라 어머니의 허리는 기역자가 되었다. 이제 농사를 안 짓겠다는 여든 셋의 꼬부랑 어머니의 거짓말도 십여 년이 넘었다.

"인자 고마하이소. 기름값도 안 나옵니데이. 인건비는 고사하고 거름값도 못 건진다 아입니까?"

"그래도 참기름은 맛있다. 사 묵는 거 하고는 다르제."

엄마는 태양보다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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