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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자 많은 얼음골 사과 명성 지켜내야죠"

[임채민 기자가 만난 농협 CEO]밀양농협 박기철 조합장…얼음골 사과 500억 등 한 해 총매출 1000억 원

임채민 기자 lcm@idomin.com 2016년 08월 08일 월요일

'농협(수협)' 하면 어떤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지요. '대출사기, 공금 횡령, 조합장 선거를 둘러싼 각종 비리' 등이 한 번 터졌다 하면 매스컴에 굵직굵직하게 다루어지는 탓인지, 그리 썩 좋은 이미지는 아니라는 분들이 있겠죠. 반면 또 지역 특산물 판매·유통에 앞장서면서, 조합원들에게는 비료나 각종 농자재를 값싼 가격에 제공하니 농어촌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존재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특산물 판매 육성 사업보다는 대출·유통사업에 치중하면서 농어촌 살림을 더욱 팍팍하게 하고 있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그나마 농협이라도 있으니 갈수록 팍팍해지는 농촌에서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는 옹호론 역시 많습니다.

바야흐로 6차 산업의 시대라고 합니다. 농협(수협) 역시 거센 변화의 파도 앞에 서 있습니다. 지난해 처음으로 치러진 '농축수협·산림조합 전국 동시 조합장선거'는 그 변화의 길에 작은 이정표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많은 변화가 닥칠 것입니다. 그래서 일선 조합장들을 만나 농어촌 현장에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변화의 전조를 어떻게 체감하고, 대응하는지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밀양. 햇볕의 도시다. 햇볕은 농작물이 성장할 수 있게 하는 근원적 에너지이자, 해당 작물의 맛을 미묘하게 끌어올리는 신비의 영양분이다. 밀양농협의 대표 특산물이라 할 수 있는 '얼음골 사과'가 명성에 걸맞은 맛을 유지하고 있는 건 8할이 햇볕 덕이다.

지형적인 특성으로 꽃이 일찍 피고 열매가 다른 지역보다 빨리 열리지만, 수확 시기는 늦은 게 얼음골 사과 맛의 비밀이다. 다른 지역 사과보다 20일 정도 늦은 11월 초∼중순에 수확되는데, 이 기간 얼음골 사과는 햇볕의 세례를 듬뿍 받게 된다. 햇볕은 얼음골 사과에 아삭함과 꿀 향기를 아낌없이 선사하는 것이다.

▲ 2005년 밀양농협 조합장으로 부임, 지난해 치러진 '조합장 동시선거'를 거쳐 3선 조합장으로 일하고 있는 박기철 조합장./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이렇게 수확된 얼음골 사과는 밀양농협을 통해 대부분 판매되는데, 한 해 매출 규모가 500억 원대에 이른다고 한다. 웬만한 조합의 전체 경제사업 수익과 맞먹는 규모다.

밀양농협은 얼음골 사과 외에도 딸기·깻잎·무안 청양고추·맥문동·반시 등을 취급하고 있고, 한 해 매출이 1000억 원에 달하고 있다. 전국 1134개에 이르는 농협의 평균 경제사업 규모가 329억 원(경남 평균 477억 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다.

이뿐만이 아니다. 밀양시내 중심부에 자리 잡은 영향도 있겠지만, 밀양농협의 상호금융 규모는 1조 원을 상회한다. 이 역시 전국 평균 3900억 원(경남 3550억 원)을 훨씬 웃도는 것이어서 비교가 불가할 정도다.

이 같은 밀양농협의 큰 규모는 밀양이 곧 저력 있는 전통적 농업 도시라는 점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걱정이 없을 리 없었다. 끊임없이 상품성을 높여야 하고 판로를 개척해야 하는데, 급변하는 농업시장은 이를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정부 시책 역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어떨 땐 한걸음 빠르고, 또 어떨 땐 한걸음 느리게 추진되고 있다는 것도 안타까움의 한 원인으로 작용하는 듯했다.

2005년 밀양농협 조합장으로 부임한 이래, 지난해 치러진 '조합장 동시선거'를 거쳐 3선 조합장으로 일하고 있는 박기철(66) 조합장은 지금 밀양농협이 처한 어려움을 이렇게 말했다.

"밀양농협에서 취급하는 농산물은 전국 어디에서나 다 나오는 것들이다. 38선 이남에는 어느 곳이나 다 사과나무가 있다. 얼음골 사과의 맛이 독보적이긴 하다. 그러나 기후가 변하고 있다. 이런 때에 경북 지역에서는 FTA(자유무역협정) 지원 사업 일환으로 품질 좋은 묘목을 지원하고 있다. 품질 차이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깻잎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에 충남 금산에서 인삼 농사짓는 분들이 우리 사무실까지 찾아왔더라. 깻잎 농사 현장을 안 보여드릴 수도 없고 해서 이것저것 보여 드렸더니, 지금은 그곳에서도 거의 전부 다 깻잎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무안에서 생산되는 청양 고추는 좀 다른데, 여타 지역에서 재배하면 무안 청양초 특유의 맛이 안 나는 것 같더라.

아무튼, 대한민국에서 농사짓는 형태는 거의 같다고 보면 된다. 맛과 품질에 조금 차이가 있지만 서로 경쟁해야 하는 구조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대응을 잘해왔다고 할 수 있는데, 그 품질 차이가 점차 줄어드는 건 분명하다."

▲ 박기철 밀양농협 조합장. 밀양농협은 한 해 매출이 1000억 원에 달한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 그래도 아직까지 얼음골 사과를 위시해, 밀양만의 브랜드 파워는 높은 것 같은데.

"그렇긴 하지만, 다른 지역의 상품성은 올라가고 우리는 하락하는 시기다. 그 간극이 줄어들고 있기에 위기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끊임없는 우리의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지자체 등 여러 방면의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딸기의 경우도 다른 지역 딸기를 압도하지는 못한다는 평이 많다. 깻잎은 도매로 팔리는 게 대부분이어서 브랜드화하기가 어렵다. 수출을 추진하고 여러 가지 상품으로도 만들어보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는 없다. 물량 컨트롤이 어려운 것도 한계 중 하나다."

- 밀양시 역시 농업 정책에 공을 들이는 것으로 아는데, 다른 농촌 지역에 비하면 부족하다는 것인가.

"옛날부터 밀양은 농업도시다. 우리나라 시설하우스의 원조이기도 하고, 밀양을 빼면 이야기가 안 된다. 일조량이 많기에 곡식과 과일의 맛이 월등한 것도 사실이다. 밀양시가 농산물 아니면 안 돌아간다는 것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시에 계속 요구하는 게 과감한 지원책이다.

그런데 문제는, 밀양의 농업 규모가 커서 그런지, 각 지역별로 특화된 농산물이 자란다는 것이다. 통합적인 지원이 어려운 이유다. 무안에는 청양초, 시내 일원과 단장면 일부는 깻잎, 하남 지역은 감자나 수박 같은 시설 하우스고, 예림 지역에서는 원예작물을 키우고 있다. 시 입장에서도 획일적인 지원이 어려운 셈이다. 앞으로 이런 부분도 농협에서 어느 정도 조정을 잘 해줘야 하는 측면이 있긴 하다."

물론, 밀양농협은 지난해 국비와 도비 및 시비 30억 원을 지원받아 상남면에 원예농산물 산지유통센터를 설립했다. 이로써 밀양농협은 산내면에 있는 얼음골 사과 산지유통센터와 더불어 2개의 최신식 유통센터를 보유함으로써 보다 더 발빠른 시장 대응력을 갖추게 됐다.

사회적 변화를 추동하는 큰 정책의 변화는 긍정적인 요소도 있고, 그에 따르는 불가피한 피해도 있기 마련이다. 박 조합장은 곧 시행될 '김영란법'을 걱정하고 있었다.

"정부에서는 고품질 농산물 생산하라고 독려했다. 그런데 그 고품질 농산물의 판로가 막히게 됐다. 사과를 한 알씩 포장해서 팔아야 하나. 당장 얼음골 사과가 문제다. 지금 프리미엄급은 9만 9000원에 팔리고 보통 상품은 5만∼6만 원 선이다. 우리가 출고할 때는 3만 원이고, 실제 농민들이 받는 돈은 1만 원대다. 그 외는 포장비, 물류비 등에 빠진다. 5만 원 이하 상품을 만들려야 만들 수가 없다. 선물용이 줄어들면 시장 전체가 위축되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고급 농산품이 안 팔리는 게 문제가 아니고, 농산물 가격 전체가 하락한다. 농산물에 대해서는 배려가 꼭 필요하다. 법 취지야 좋지만, 현실과 괴리되는 점이 많다."

박 조합장은 농협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거듭 부탁했다.

"농협을 보는 시각이 부정적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농협의 출발과 지금까지의 성장 과정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사회적 역할에 최선을 다해왔다고 자부한다. 직원들은 죽을 듯 살 듯 일하는 데 욕만 얻어먹는다. 물론 일부 지도자들의 잘못은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그런 부분은 엄정하게 판단해 달라. 그리고 말없이 묵묵하게 일하는 90%의 농협 직원들을 아껴주는 주민들의 배려도 부탁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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