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바래길에서 사부작] (15) 7코스 고사리밭길 마을 고샅고샅

◇고사리밭의 시작

창선농협에 물어보니 남해군 창선면에서 한 해 생산되는 고사리는 평균 200톤. 삶아서 말린 것이 그렇다는 말이니 실제 수확량은 훨씬 많겠다. 전국 고사리 생산량이 한 해 700톤 정도인데, 이 중 30%가 남해 창선에서 나니 전국 최대 산지라고 불릴 만하다. 고사리밭은 창선 임야와 밭 500㏊(5㎢)에 걸쳐 있다. 창선면 전체 면적(54㎢)의 10분의 1이다. 이 고사리밭이 바래길 7코스가 지나는 가인리 마을 주변에 집중되어 있다. 이 마을들을 지나다 보면 마치 모든 등성이가 고사리로 덮인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

창선에서 이렇게 큰 규모로 고사리를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3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알려진 바로는 고두마을 박주용(84) 어르신이 최초다. 어르신은 원래 단감 과수원을 하고 있었는데, 수확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러다 과수원에 자라는 고사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감나무에다 병해충을 없애려 약을 쳤는데, 다른 풀은 다 죽고 고사리만 살아남아 감나무에 준 비료를 먹고 쑥쑥 크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끊어다 시장에 내다 파니 꽤 수익이 컸다. 그로부터 어르신은 아예 감나무를 베어버리고 과수원 자리에 고사리를 집중적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지금은 창선면 1300여 농가에서 고사리를 키운다. 지금도 박주용 어르신과 그 가족들이 경작하는 고사리밭이 창선면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고사리 수확시기는 3월 하순에서 6월 중순까지다. 이 중에 4월 중순까지 수확한 고사리를 최고로 친다. 이른바 '초물 고사리'라 불리는 것이다. 창선 주민들이 키운 고사리는 창선농협이 모두 수매를 한다. 말린 고사리를 기준으로 올해(2016년) 시세는 ㎏당 4만 2000원이었다. 이후로 갈수록 가격은 조금씩 내려간다. 농협 수매가를 기준으로 올해 창선 주민들이 고사리로 올린 수익은 60억 원 정도다. 창선농협은 수매한 고사리를 '(해풍 먹고 자란) 섬가득 고사리'란 상표로 판매한다. 지난 2007년 산림청으로부터 지리적표시등록 13호로 지정되어 고사리로서는 처음 원산지 인증을 받았다. 창선 고사리는 맛과 영양이 좋아 주로 학교급식 재료로 인기가 많다. 창선농협 고사리 판매량 50% 정도가 학교급식으로 쓰인다고 한다.

수확이 끝난 고사리는 계속 웃자라다가 11월 첫서리가 내리면 '와르르 자빠져' 죽어 버린다고 한다. 이듬해 봄 그 자빠진 고사리 틈에서 앙증맞은 새순이 돋아나고, 다시 한 번 고사리 농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오랜 역사의 적량마을

바래길 7코스가 시작되는 적량마을은 창선면에서도 규모가 크고 역사가 오래다. 원래 '성내' 마을이라고 불렸는데, 마을 앞바다 너머로 보이는 통영 사량도와 수우도 사이에서 떠오른 붉은 일출이 가장 먼저 닿는다고 하여 적량(赤梁)이라 부른다고 한다. 요즘에는 적량해비치마을로 불리는데 해비치란 이름도 이와 관련이 있다. 임진왜란 때 마을은 군사요충지였다. 마을 뒷산인 국사봉에서는 왜적이 침입하면 봉화를 올렸다. 임진왜란 때 쓴 적량성의 성곽도 아직 마을 안에 남아 있다. 당시 군함을 숨겼던 굴항도 있었는데, 지금은 매립되고 없다.

적량마을에는 임진왜란 때 군사요충지였던 적량성의 흔적이 200m가량 남아 있다. /이서후 기자

국사봉 봉우리에는 국사당이란 당집이 있다. 동네 어르신들은 국시당이라고 부른다. 이 당집에 모신 신을 주민들은 국시당 할아버지라고 하며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긴다. 매년 음력 10월 동네 주민들이 모여 제를 지낸다. 예전에는 군대에 갈 때 꼭 국시당 방향을 보고 큰절을 올린 후에 떠났다고 한다.

◇1억 년 흔적, 가인리 공룡화석

가인리 공룡발자국 화석은 가인마을 입구 건너편 해안에 있다. 발자국 화석이 아니라도 바닷가 바위들이 볼만하다. 이 바위들의 근간이 중생대 백악기 퇴적층인 함안층이다. 이곳에서 지금까지 1500여 점의 발자국이 발견됐다. 바위 중에서도 바다로 기울어져 있는 넓이 80㎡, 두께 20㎝ 정도의 사암이 두드러진다. 이곳에서 용각류·조각류(초식), 수각류(육식) 공룡 4마리가 남긴 발자국 화석 50여 개가 발견됐다.

가인리 공룡발자국화석. 날카로운 발모양이 선명하다. /이서후 기자

이처럼 초식과 육식공룡, 대형과 중형 공룡 발자국이 동시에 있는 것은 생태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된다고 한다. 근처 안내판에 설명을 자세하게 해놓았으니 먼저 살펴보면 좋겠다. 기록을 보면 가인리 공룡발자국 화석은 지난 1998년 가인 마을 출신으로 당시 동명정보대 장우진 학생이 발견해 남해신문에 제보를 했고, 당시 진주교대 서승조 교수팀이 답사를 벌인 결과 1억 1000년 전의 공룡발자국임을 확인했다. 발자국 화석 주변이 지난 2008년 말 천연기념물 제499호로 지정됐다.

◇바래길 주변 고사리 마을들

바래길 7코스 주변 가인, 고두, 언포, 식포마을은 그야말로 고사리 마을이다. 하루에 버스가 두 번밖에 들어오지 않는 외진 곳이지만, 주민들은 해마다 고사리로 수억 원씩 수익을 올린다.

이 중 언포마을에 내려오는 남근석 이야기가 재밌다. 언포마을에서 바다 건너로 보이는 것이 낙조로 유명한 사천시 실안마을이다. 오래전 봄만 되면 실안마을 처녀들이 바람이 났다. 보다 못한 주민들이 점쟁이에게 물어보니 바다 건너 창선 어느 마을 포구에 남근 바위가 실안마을을 마주 보고 있어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실안마을 사람들이 몰래 그 바위 윗부분을 잘라 바다에 빠뜨렸더니 괜찮아졌다는 이야기다. 바로 옆 고두마을도 이 바위가 고개를 돌리고 보고 있다고 해서 고두(顧頭)라고 불렸다고 전해진다.

식포는 7코스 마지막 마을이다. 걸인들이 포식을 하고 갔대서 식포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정작 마을 정자에는 맑은 물 식(湜)자에 물가 포(浦)로 마을 이름을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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