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장님]거제시 거제면 송곡마을 윤성부 이장

군대를 제대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던 젊은이가 어떻게 하다 보니 이장이 됐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윤성부(57) 이장은 당시 이장을 할 만한 사람이 없어 본의 아니게 이장을 맡게 된 것이 지금까지 이장을 하고 있다. 무려 27년이다.

당시 윤 이장이 농민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거제면의 총무계장이 세 번이나 신원조회를 했다고 한다.

사상이 불온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 신원조회를 여러 번 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그는 어려운 관문을 뚫고 이장이 될 수 있었다.

윤성부 이장.

젊은 나이였지만 경지정리부터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시는 소로 경작하다 기계화가 시작될 무렵이었는데 논두렁이 높아 농사짓기가 이만저만 불편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 이장이 경지정리 동의서를 받은 것이 38%였지만 정작 윤 이장이 경지정리를 하겠다며 동의서를 받기 시작했는데 10%밖에 받지 못했다.

논 소유자들을 설득했고, 자신의 뜻을 강조했는데도 쉽지 않았다. 100% 동의를 받은 것처럼 해서 경지정리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마을주민들의 숙원사업을 해결한 것이었다. 윤 이장은 "당시를 떠올리면 젊은 나이였지만 경지정리를 마치고 나니 주민들이 정말 좋아하고 격려해줘서 아주 기뻤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20여 년 이장을 지내는 동안 마을회관을 두 번 지었다. 처음에는 행정의 지원 없이 지었다가 8년 전 행정의 지원을 받아 새로 지었다. 빔프로젝터와 음향시설을 갖췄다.

당시 친구이던 면장이 "면에도 없는 빔프로젝터와 음향시설을 설치하다니 면장도 못하는 것을 해냈다"면서 "넌 이장이 직업 같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투철한 직업정신(?)을 칭찬했다.

윤 이장은 농협개혁이 농민들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 농협의 이사와 감사를 13년째 하고 있지만 아직도 진행단계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한다.

그의 특기할 만한 이력은 여행업이었다.

1997년, 1998년, 1999년 3년 동안 자신의 일을 하고 싶어 이장을 잠깐 그만뒀었다. 그때 시작한 것이 프리랜서 여행업자였다.

10년 동안 여행업을 하면서 전 세계를 누볐다. 해외여행이 그렇게 많지 않던 시절에 세계를 다니면서 우리나라와는 다른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넓혀갔다.

해외에서 보고 느낀 것을 마을에 접목하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는 것은 많지 않았다.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 때문일 것 같단다.

자연이 얼마나 소중한지, 자연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맑고 깨끗한 감성을 가지는지, 자연이 주는 위대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최근 이·통장들은 주민들의 이동상황을 전혀 모른다. 주민과의 소통이 필요한데 최근의 행정을 보면 이·통장들의 역할을 많이 없애버린 것 같아 안타깝단다.

그는 '이·통장증'과 배지를 만드는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통장들에게 의무감을 더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여러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외에도 다양한 제안을 통해 거제시 이·통장협의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윤 이장은 "이장은 봉사할 마음의 자세가 준비된 사람만이 해야 한다. 지역을 지키고 마을의 전통을 계승·발전시킬 수 있는 이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이장들 스스로 이장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을 볼 때도 가끔 있다"면서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시정에 반영하는 의욕 넘치는 이장, 감투 욕심보다는 진정한 지역의 일꾼이 될 수 있는 이장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끝에 그는 "장수마을로 선정돼 올해 말이면 이 사업이 끝이 난다. 이장도 그때까지만 할 계획"이라면서 "마을 진입로를 확장하고 30년 가까운 이장생활을 끝내고 싶은 게 조그만 욕심"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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