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산티아고 순례길] 22편

부르고에서 레온까지 39㎞

새벽에 일어나니 날씨가 몹시 춥습니다. 얇은 오리털까지 입고 출발 준비를 했습니다. 오늘은 먼 거리를 걸을 거라서 어제 짐을 부칠까 하고 마음이 잠시 흔들렸었지만 내 짐은 이제 내가 지기로 결정, 한국인 청년과 샤롯데와 카리나(순례길에서 자주 만나던 스웨덴인들) 그리고 스페인 사람 차로와 함께 걷기 시작했어요. 자주 만나고 같은 숙소에 묵고 하다 보니 이제 저절로 돈독한 사이가 되어가네요. 모두 유쾌하게 이야기 나누며 새벽을 맞는 기분은 역시나 좋습니다. 어느새 스페인 장다리 아저씨 하우메와 꺼꾸리 비센테, 네덜란드에서 온 데레사가 따라오네요.

모두 바르(bar)에 들러 아침식사도 하고 사진도 찍고 왁자하니 활기가 넘칩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한국친구가 함께 있으니 더욱 좋아요. 오늘은 무리를 지어 걷고 있습니다. 전 웬만하면 혼자 걷는데 오늘은 함께가 더 좋은 날이에요.

하우메가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더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를 크게 틀어 함께 부르재요. 그런데 완전 영어권의 사람들이 아니라서인가요. 모두 '더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 이 부분만 따라 하는 거예요. 음~음~ 거리다가 그 부분만 큰 소리로요. 노래가 끝나자 모두 박장대소! 진짜 많이 웃었어요. 그 노래를 몇 번이나 그렇게 따라 부르고 결국 그 노래는 새벽에 출발할 때 듣는 우리의 카미노송이 되었어요. 각 나라의 노래도 불러가며 지루하지 않게 걸을 수 있었답니다.

거대한 성벽

이젠 메세타도 끝나가고 있네요. 다른 사람들은 메세타를 걸으며 완전히 다른 두 가지의 느낌으로 이야기하던데 전 다른 길과 별반 다르지 않게 생각이 되었어요. 생각보다 그늘이 없는 것도 아니고 간혹 건조하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길이 있긴 했어도 생각을 다 바꿔 버릴 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엔 흥겹게 시작을 했는데 점점 시간이 갈수록 다들 말 수가 적어집니다. 햇볕이 뜨거워지고 목적지 레온(Leon)으로 들어가는 길이 다 온 듯, 다 온 듯 끝이 없더라고요. 좀 쉬고 싶은데 함께 걷다 보니 맘대로 되지 않아요. 대도시에서 알베르게 찾아 들어가려면 헷갈릴 수 있어서 함께 가야겠다 싶기도 해서 열심히 따라갔지요. 늦으면 자리가 없을 거란 생각에서인지 정말 걸음들이 어찌나 빠른지 완전히 지쳐서 알베르게에 도착을 했어요.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인데 이미 많은 사람이 들어와 있었어요. 이곳에서부터 걷기를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다 보니 그런가 봐요.

친절하고 분위기도 괜찮고 남녀가 구분되어있는 특징이 있네요. 전혀 모르는 남녀가 같은 방에 잔다는 게 처음엔 참 불편하고 적응하기 힘이 들었는데 이젠 하도 남녀가 같은 방에 묵으며 와서인지 감각이 무뎌져 별 의미는 없는 것 같아요.

여기저기 아픈 사람들이…

씻고 나오니 스페인 사람 차로가 울상입니다. 베드버그가 차로를 물었대요. 어제 알베르게에서 그런 것 같다며 물린 곳을 보여줍니다. 베드버그 자국은 다행히 듣던 것보다 심한 것 같지는 않았어요.

봉사자들과 함께 차로의 모든 것을 소독하는 야단법석이 조용히(?) 이루어지고 있었어요. 소문이 나면 순례자들이 불안해하기 때문이에요. 저도 갑자기 찜찜해지기 시작해요. 어제 같은 숙소에 묵었잖아요. 배낭을 통째로 들고 나와 다 널고 하나하나 살펴보았어요. 일단 육안으로는 없어 정리를 했지만 찜찜한 마음은 그대로예요.

한국인 아가씨 세 명도 같은 알베르게네요. 저보다도 먼저 와 있어 '어~! 벌써!' 하고 놀랐는데 알고 보니 한 명이 허리가 아파서 택시를 타고 온 거래요. 정말 얼굴도 퉁퉁 붓고 고통이 심한가 보더라고요. 여기서 일단 며칠을 있어 본다고 해요. 그러고 나서 계속 걸을지 생각해 본다고요, 참 걱정이네요. 걷는 동안 이런 일이 없어야 하는데…. 다행히 전 특별히 아픈 데가 없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요. 또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레온대성당

먼저 레온성당으로 갔어요. 가는 길 주변으로 카페가 들어차 있었고 구불구불 골목길로 되어 있어 길은 좀 헷갈렸지만 오래된 도시 레온의 골목이 아기자기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레온 대성당은 고딕양식의 걸작품이라더니 그것을 보려고 수많은 관광객과 순례자들이 모여 있었어요. 조금 둘러보다 시내를 도는 관광 열차가 있어서 그것을 탔어요. 스페인의 어디나 마찬가지이지만 도시 전체가 역사박물관 같아요. 레온시내의 볼만한 곳을 두루 돌아다니는데 영어설명이다 보니 또 답답함을 느끼며 눈으로 보는 것으로 만족을 해야 했지요. 1세기경 로마인들이 설계했다는 이 도시에서 눈만 호강을 하고 왔네요.

레온거리와 관광열차
관광열차에 올라

레온에는 한식 파는 데가 없고 중국 음식을 먹으면 된다고 해서 울 딸이 가르쳐준 중국식당을 찾아 물어물어 갔는데 아뿔싸~! 완전실망~! 8시30분에야 문을 연대요. 두 시간이나 기다릴 수가 다시 돌아오는데 날씨는 덥고 거리는 어찌나 먼지요. 왕복 한 시간 반이나 피곤한 몸을 이끌고 헤맸어요. 몸은 피곤하지만 레온의 구석구석을 누비다 왔네요.

돌아와서 어디서 밥을 먹을지 고민하고 기웃거리다 아까 지나온 골목의 바르로 가서 순례자 메뉴를 시켰습니다. 와~! 그런데 저기 프랭크 부자가 오네요. 밥 먹을 곳을 찾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거예요. 같은 알베르게래요. 참 자주 만나지죠?

식사하며 며칠 전 잠깐 함께 걸을 때 둘의 뒷모습을 사진에 담아 두었던 것을 보여 주었어요. 아버지와 나란히 걷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거든요. 맘에 들었나 봐요. 둘이 아주 좋아하면서 미국의 자기 와이프에게 이 사진을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부탁을 하더라고요. 나도 기꺼이 그러마 했지요.

레온 시내 중세골목

순례자를 위한 성당 예식

함께 식사 후 숙소로 와서 성당에서 하는 순례자와 함께하는 예식에 참석을 하였어요. 미사는 아니지만 모두 진지하게 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매일 오는 순례자들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맞아주는 이분들 참 멋지고 고맙죠?

어둑해져 가는데 한국학생 다섯 명이 들어오네요. 이렇게 늦은 시간에요. 다행히 아직 침대가 남아 있나 봐요. 이 친구들은 내일 이곳에서부터 걸으려고 한답니다. 알베르게에서의 첫날이라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모르기 때문에 내가 아는 만큼 안내를 해 주고 들어와 잠을 청해 봅니다. /글·사진 박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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