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연일 기상 관측 이래 최고 기온이 경신되고 있다는 말이 실감된다. 온 국민이 바다로, 계곡으로, 또 해외로 향하는 통에 도로는 체증에 몸살을 앓고 인천공항 이용객 수도 공항 개설 이래 최고치를 갈아치웠단다. 끝없이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의 행렬에 더위가 더해지는 기분은 나만의 느낌일까? 이것은 피서가 아니라 더위를 쫓아가는 것 같다.

더위를 피했는데 더 큰 더위가 기다리고 있는 이 아이러니와 달리 지난 두 주간 나는 진짜 피서를 즐겼다. 시원한 명곡여자중학교 도서관 에어컨 아래서 똘망한 눈망울의 여중생들과 함께 즐긴 두 주간의 독서 캠프는 나와 아이들에게 행복한 시간이었다. 방학 시작과 함께 열린 독서 캠프 첫날, 밀린 잠에 게으름을 부리고 싶은 마음이 컸을 텐데 아이들은 거의 빠짐없이 캠프에 참석했다. 올해 경남독서한마당의 중학생 대상 도서인 <꼰대아빠와 등골브레이커의 브랜드 썰전>과 <소년이여 요리하라>. 두 권의 도서를 선정해 책 읽고 글쓰기, 요리책 만들기 등 수업을 진행하고 하동으로 가족 문학기행도 다녀왔다.

책이 진짜로 재미있어지는 방법은 책 속의 이야기를 삶속으로 끌어오는 것임을 나는 오랫동안의 독서교육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소년이여 요리하라>는 독후 활동으로 글쓰기보다는 요리책 만들기를 택했다. 우리집, 자신만의 레시피와 그 요리에 얽힌 추억을 정리하여 펴낸 세상에서 하나뿐인 수제 요리책 <소녀여 요리하라>는 기발하고 재미났다. 아이들은 자신만의 요리책에 비법 레시피를 아낌없이 공개했고 그에 얽힌 추억담을 재미나게 풀어놓았다. 요리책 만들기에 참여한 소녀들은 아마도 이 책 속의 요리를 일생 못 잊을 추억의 맛으로 기억할 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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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캠프의 백미는 뭐니뭐니 해도 가족 문학 기행이었다. <역마> <지리산> <토지>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학 작품의 무대인 하동으로 여중생 딸과 엄마가 함께 떠난 이 여행에서 참가자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하동을 보았노라고, 그리고 가족에 대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노라고 말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책과 기념품을 상품으로 걸고 펼쳐진 기행문 쓰기 대회에서 '피곤해서 누가 글이나 쓸까?'하는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거의 모든 참가자가 추억을 글로 써냈다. 기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 아이들은 분명 떠날 때와 달라져 있었다. 물론 엄마들이 더 많이 달라졌지만.

피서 의미, 달라지면 좋겠다. 산업화가 확장되던 시절 하나같이 튜브 끼고 바다로 계곡으로 가는 것이 여가의 완성이라 여겼던 그 집단의식을 이제 그만 좀 벗어났으면 좋겠다. 이 여름 도서관에서 시원한 책 읽기 어떨까? 독서삼매경에 빠지는 순간 더위쯤은 저 멀리로 물러나 있을 테고 즐거움과 재미는 덤으로 얻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삼조 아닌가. /윤은주(수필가·한국독서교육개발원 전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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