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목수 세상에서 살아남기] (7) 배려가 계속되면 권리라고 착각한다?

◇'낭만 목수' 박주용

지난 2012년. 인생 마지막 직업을 찾아, 지치고 병든 몸에다 자포자기 심정이 뒤섞인 채로 찾아들었던 청도 한옥아카데미에서 만난 박주용 교수. 첫인상은 별로였습니다. 좀 까칠해 보이는데다, 세상사에도 시큰둥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마에는 쭈끌쭈글 주름살이, 눈매도 저처럼 떴는지 감았는지도 모를 정도로 눈꺼풀이 두툼해서 쉽게 호감이 가는 인상은 아니었죠. 귀동냥으로 들은 얘기로는 법학도 출신으로, 다시 대학에서 토목을 전공했으나 공무원과 원청업체 등의 갑질에 염증을 느끼고 한옥 목수가 됐다더군요. 그것도 그뿐으로 당시에는 별로 친하지 않았습니다.

저 혼자 생각인지 모르지만 정작 친해진 것은 페이스북을 통해서였습니다. 한옥 아카데미 시절에는 몰랐던 모습들을 봤습니다. 대구라는 엄청난(?) 동네에서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을 위한 활동에 참여하는 모습과 세상을 보는 그의 생각들, 그리고 목수에 대한 직업관 등등을 엿보게 되면서 호감을 느끼게 됐습니다. 한옥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나서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마음으로는 오래된 친구같이 느껴집니다. 나이도 비슷하니까 친밀감이 더하군요.

▲ 다양한 예술공간이 들어선 창동예술촌 골목. /경남도민일보 DB

그랬던 그가 다시 한옥 일판으로 돌아갔습니다. 7월 초 페이스북에 "녹슨 연장을 다시 벼린다~"는 말로 현장 복귀를 선언한 그는 끝에 이렇게 얘기합니다.

"원망이나 미련도 없다, 구차하거나 찌질하기 보다도 당당하게 세파 속으로 나아가리라. 변화가 나를 단련시키리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리라."

가만히 그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월급이 많든 적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안정되고 수월하게 사는 것일 텐데…. 스스로 밝혔듯 12년 동안 거들먹거리고 지냈던 교수생활을 접기가 수월하지 않았을 텐데…. 자존심, 정체성, 직장생활에 대한 염증, 가족부양 의무감 등등. 아니면 '지랄병' 재발? 저도 이러구러 20여 년의 직장생활을 한 경험을 통해 정리된 생각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입니다.

"일은 힘들어도 버틸 수 있다. 더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고, 며칠이고 밤을 새우면서 일해도 된다. 하지만, 사람 힘든 것은 단 한 순간도 견디기 어렵다. 직장을 때려치운다면 그것은 일 때문이 아니라 사람 때문이다."

그래서 걱정도 살짝 됩니다. 그의 경력으로 볼 때 단순하게 일당받는 목수는 아닐 겁니다. 자신도 연장 들고 일하면서도 무리를 지어 사업을 벌이거나, 최소한 현장을 총괄하는 '먹잡이' 정도의 역할을 할 것인데. 사람 스트레스를 잘 소화하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연장을 벼린 만큼 나무는 말을 듣겠지만, 사람은 그렇다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 골목에서 열리는 다양한 행사들. /경남도민일보 DB

저도 목공소를 차리면서 "이제부터는 무조건 혼자 일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혼자 살아가기가 쉬운가요. 자연스럽게 또는 필요에 의해 이러저러한 단체에도 참여하고 역할도 맡아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여기서도 사람 스트레스가 생깁니다. 늙지도 젊지도 않은 입장이어서 어지간하면 양보하고 배려하는 생각이 많습니다만 쉽지 않네요. 특히 제가 욕심을 부린다고 생각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때는 참기 어렵습니다.

좋아하는 말은 아니지만 누군가가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배려가 계속되면 권리라고 착각하게 된다." 이 말은 주로 권력자나 기득권자가 상대를 얕보면서 도전을 받을 때 주로 써먹는 말이어서 아주 싫어하는데. 왜 자꾸 이 말이 떠오르는 건지. 저는 권력이라고는 얼굴이 좀 잘생긴 것밖에 없는데….

아무튼, 지난 28일 박주용 교수, 아니 박 목수가 경북 어느 일판에서 잔뜩 힘이 들어간 표정으로 나무각재를 바라보는 사진을 올렸습니다. 이 염천에 부디 다치고 않고 쉬엄쉬엄 일하시길. 시간이 돈인 일판에서 느긋함이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목수는 뛰지 않는다'고 스스로 가르친 얘기를 기억하시고. 저는 '서툰 목수'지만 그가 자기에게 지어준 별명은 '낭만목수'입니다. 낭만 찾기 어려운 일판에서 부디 낭만을 찾으시길 기원!

▲ 최근 문을 연 마산예술인 사랑방 '백랑'. /경남도민일보 DB

◇임대료…. 청춘바보몰 불편, 결국은 인간의 욕망 탓

저는 이달부터 세금으로 임차료를 지원받는 창동예술촌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임차료 부담에서 벗어난 것은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부담감도 적지 않습니다. 폴 새뮤얼슨이라는 경제학자의 '공짜점심은 없다'는 말을 떠올립니다. 제 생각도 세상에 공짜는 없는 것이니 지원받는 것에 상응하는 대가를 반드시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당연히.

며칠 전 신문 1면에 인근 부림시장 지하에 들어선 청춘바보몰에 에어컨이 없어서 손님맞이에 불편을 겪고 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다음 날 신문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즉시 설치를 지시한 창원시장의 얘기가 실리고, 관련 부서 관계자들이 몰려와서 호들갑을 떨며 장사가 잘되도록 유명 프로스포츠 구단의 방문을 요청하겠다는 등등의 얘기들. 저는 퍼뜩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더워지면 당연히 에어컨 없이 장사할 수 없을 것인데 왜 지금까지 설치를 미뤘을까요. 구체적인 사항을 알지 못하니 장담할 수 없습니다만 시가 약속을 해놓고 예산 확보 등의 문제로 손 놓고 있었던 것일까요. 또 입주한 '청춘들'은 왜 그냥 기다렸을까요. 정작 손해는 자기들이 볼 텐데 적지 않은 비용이 부담돼서 그저 시에서 설치해줄 때까지 버틴 것일까요. 시의 약속 이행만 촉구하면서 마치 '하늘에서 감이 떨어지기'만 기다린 것인가요.

바보청춘몰은 오랫동안 폐가로 방치된 곳에 젊은이들이 들어와 먹을거리 장사를 시작하면서 비교적 좋은 반응을 얻었던 곳인데…. 이 대목에서도 저는 공짜점심은 없다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입주한 청춘들이 더 적극적으로 자구책을 모색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창동예술촌 조성 덕분인지 최근 제가 있는 창동 뒷골목은 제법 모양새가 갖춰지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빈 점포도 거의 없어 골목 안에는 점포를 구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창동거리 큰 길에는 빈 점포가 오히려 느는 모습입니다. 점포가 비는 속도만큼 행인들의 발걸음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특히 옛날 시민극장이 있는 자리 부근 1층에는 임대 안내문이 붙은 점포가 꽤 늘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 제 짐작에는 임대료 때문일 겁니다. 언론을 통해 창동이 도심재생의 모범적인 모델로 크게 홍보가 되면서 건물주들의 기대심리가 높아진 탓일 겁니다. 여기다 중개를 하는 부동산 소개소들도 한몫하는 느낌입니다. 상권이 형성되면 자연스럽게 임대료가 오르겠지만 적정성을 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창동예술촌이 조성돼 있고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한 골목 안으로는 생기가 도는 반면 도로를 낀 중심부는 점점 썰렁해지는 대비가 짙어지고 있습니다. 몇 년 전인가요. 인디 카페나 소규모 점포로 상권이 형성되자 건물주 욕망과 기획부동산의 농간으로 임대료가 폭등하면서 세입자들의 목을 졸라 상권 자체가 몰락한 서울 홍대 앞이나 가로수길, 삼청동 등등의 기억이 뚜렷하지 않습니까.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는 것일까요.

/황원호(창동목공방 대표)

※이 기사는 경남도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주민참여사업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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