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우해이어보] (22) 지금은 드물게 보이는 큰 미꾸라지 닮은 민물고기
'길조'라는 바다드렁허리는 정말로 있었을까

김려의 <우해이어보>에는 '용서'라는 물고기가 등장한다. 용서는 드렁허리, 두렁허리, 드렁이, 드랭이, 뚜랭이, 음지, 웅어, 선어 등 다양한 이름이 있다. 표준어는 '드렁허리'다 .

원래 드렁허리는 미꾸라지나 민물장어처럼 민물 습지에서 살면서 논두렁을 파 헤집는 물고기로 알려졌다. 여름철 논두렁에 구멍을 뚫어 장마 때 두렁이 무너지게 하는 반갑지만은 않은 물고기이다. 야행성으로 낮에는 진흙 속과 돌 틈에 숨어 있다가 밤에 나와서 작은 동물과 물고기를 잡아먹기 때문에 쉽게 볼 수 없다. 일반적으로 드렁허리는 민물고기로 알려졌다. 백과사전에도 '드렁허릿과에 속하는 민물고기'로 설명한다. 그런데 <우해이어보>에서는 바다에 사는 물고기의 한 종류로 소개하고 있다.

"용서는 선이라 부르는 드렁허리와 비슷하다. 드렁허리는 민간에서는 선어라고 하고 경기지방에서는 웅어(熊魚)라고 한다. 그리고 호남의 서남해안에서 농요어(壟腰魚) 즉 드렁허리고기라고 한다. 드렁허리는 도마뱀과 같이 안개를 뿜어낼 줄 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용서(龍壻) 즉 '용의 사위'라고도 하고 혹은 해석척 즉 '바다도마뱀'이라고도 하고 혹은 해선, '바다드렁허리'라고도 한다. 매일 해가 뜰 때에 한 줄기 파란 안개가 바다에서 생겨나 하늘하늘 위로 곧게 올라가는데 이것은 바다드렁허리가 안개를 뿜어낸 것이다. 바다드렁허리는 드렁허리에 비하면 옅은 금색이 있다. 어부들이 매번 배를 띄울 때 드렁허리의 안개줄기를 보면 길조(吉兆)라 여겼는데 대개 이무기의 종류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찬우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 사업지원팀장이 지난 2011년 9월 김해 봉하마을 주변 웅덩이에서 통발에 걸린 드렁허리(민물고기)를 찍은 것.

이런 설명으로 보면 바다에 사는 드렁허리가 따로 있는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는데 일종의 이무기와 같이 안개를 뿜어내는 능력을 갖췄다고 한다.

이무기는 한국의 전설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용이 되기 직전 상태를 이르는데 여러 해 묵은 구렁이를 말하기도 한다. 지상에서 1000년을 보내고 나서 용으로 변하여 여의주를 물고 폭풍우를 일으키며 하늘로 올라간다고 여겼다. 그러나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는 심술을 부리는 경우가 많아 가뭄이 들게 하는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비를 내리게 하는 구름은 산꼭대기에 있는 바위굴에서 나온다고 여겼다. 이 바위굴을 이무기가 막으면 구름이 생기지 않아서 가뭄이 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가뭄이 들면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각종 도구를 들고 산꼭대기로 올라가서 바위굴을 막은 이무기를 쫓아내고 연기를 피워 굴 안으로 불어넣었다. 한참 뒤 그 연기가 다시 밖으로 나오게 되면 마중물처럼 그 연기를 따라서 비를 내리는 구름이 따라나온다고 여겼다. 경상도 사람들은 이러한 심술궂은 이무기를 '깡철'이라고 부른다.

드렁허리는 이런 이무기와 같은 종류인데 파란 바다 안개를 뿜어내고 물안개와 같은 이 안개를 바닷가 사람들은 오히려 길조라고 생각하였다고 하니 심술 난 이무기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이다. 또한, 드렁허리를 '해석척' 즉 바다도마뱀이라고도 하고 용서(龍壻) 즉 '용의 사위'라고도 한다.

민간에서는 도마뱀이 비를 내리는 동물이라고 믿었다. 조선 세종 때에는 가뭄으로 말미암은 흉년이 끊이지 않았다. 세종은 이를 극복하고자 백성의 세금을 감면해 주었고, 금주령을 내렸으며, 억울한 죄수를 사면해 주었고, 각종 토목공사를 중지하였으며, 궁궐 의례도 간소화하였다. 그리고 기우제를 지냈다. 하늘에 바람과 비를 부르는 제사를 지내고, 한강과 삼각산 등에서 비를 빌고, 또 각 종파 승려들에게도 비를 빌게 하였으며, 호랑이 머리를 폭포나 강에 넣기도 하였다.

그중 특이한 것은 경회루 못 가에서는 아이들에게 푸른 옷을 입히고 빈 물동이 안에 도마뱀을 가두어두고 버드나무 가지로 물동이를 두드리면서 '도마뱀아 도마뱀아, 구름을 일으키고 안개를 토하여 비를 주룩주룩 오게 하면 너를 놓아주겠다'는 노래를 부르는 '석척기우제'를 지낸 일이다. 도마뱀이 구름을 일으키고 안개를 토하고 비를 내리게 한다는 것은 예부터 민중들이 상상한 신앙적 심상이었다.

일종의 용어사전인 <설문>은 도마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석척은 용(龍)과 그 기(氣)가 서로 통하므로 비를 빌 수도 있고, 올챙이와 같이 생겼으므로 우박을 토해낼 수도 있다. 몸의 빛깔은 고정됨이 없이 하루에 열두 번씩 변하여 바뀐다 하니, 역(易)이란 그 변하는 것을 취한 것이다." 주역(周易)의 역(易) 자 어원을 도마뱀 '척'에서 찾은 것이다. 통상 역(易)은 해(日)와 달(月)이 밤낮으로 번갈아 뜨는 것을 설명한 것으로 통한다.

옛 사람들은 드렁허리가 뱀과 비슷하여 싫어하였다.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서는 <본초강목>(本草綱目)을 인용하여 "드렁허리의 일종은 뱀이 변한 것으로 이름이 사선인데 독이 있어 사람을 해친다"고 했다. 다른 책에서도 드렁허리는 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먹기를 꺼리고 먹으면 독으로 해를 입는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동의보감>에서 소개하는 드렁허리는 다음과 같다. "성(性)이 대온(大溫)하고 미감(味甘) 무독(無毒)하여, 습비(濕痺)를 다스리고, 허손(虛損)을 보하며, 번진(藩唇)을 다스리고, 부인이 산후에 임력(淋瀝)하여 혈기가 고르지 못한 것을 다스린다." 우리와 이웃한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는 고급요리 재료로 쓰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조혈제와 같은 약용으로 쓰이고, 일부에서는 정력제로 알려졌다.

근래에는 환경오염으로 미꾸라지가 급감하듯이 드렁허리도 보기 어려운 물고기가 되었다. 그러나 최근 다시 무농약 농법으로 전환하면서 전라도의 영산강 유역에서는 다시 드렁허리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이 때문에 농부들은 드렁허리가 구멍을 잘 뚫는 논두렁을 보호하려고 플라스틱 필름으로 논두렁을 막기도 한다는 소식이 신문에 실리기도 하니 반가운 일이다.

김려는 바닷가 아침 물안개가 피어나는 풍경을 '우산잡곡'으로 표현하였다. "아침햇살 영롱히 곱게 일렁일 때, 만이랑 붉은 물결 자줏빛 유리 같네, 홀연 그중에 핀 몇 줄기 푸른 안개는, 아마도 드렁허리가 뿜어내었나 보다." 진동 앞바다의 이른 아침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헤치고 노를 저어가는 어부의 모습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박태성 두류문화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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