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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는 창조요, 그 기쁨은 기적입니다"

[청춘은 바로 지금부터] (18) 하동 진교에서 무화과 키우는 신석진·박홍란 부부

임채민 기자 lcm@idomin.com 2016년 07월 25일 월요일

<나는 자연인이다>(MBN)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깊은 산 속에서 움막 같은 제 각각의 집을 짓고 약초 캐고 천렵하며, 있으면 먹고 없으면 없는 대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묘한 중독성(?)이 있다는 게 마니아층의 공통된 평가다.

하동 진교에서 무화과 농사를 짓고 있는 신석진(53)·박홍란(52) 부부가 3년 전 갑작스럽고 급하게 귀농을 한 계기 중 하나는 <나는 자연인이다>였다고 해도 무방하다. 물론, TV 프로그램 하나가 이 부부의 인생 행로를 바꾼 직접적이고 근원적인 계기였다고는 할 수 없다. 어쩌면 누구나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는 '농사꾼의 피'가 이 부부의 귀농을 앞당겼을 수 있다. 부부는 생명(농작물)을 키우고 보살피는 가운데 '인생 전반기'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충만한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나는 자연인이다>는 이들 부부의 행복 여정에 작은 에피소드적 사건이었다고 해두자.

◇농사짓자 결심한 계기는… = 신석진·박홍란 부부가 귀농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석진 씨는 잘나가는 세무공무원이었고, 홍란 씨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누구나 부러워할 법한 '공무원 부부'였던 셈인데, 삶의 풍랑은 어김없이 이들 부부에게도 찾아왔다. 홍란 씨가 자궁암 진단을 받으면서부터다.

수술을 받고 힘겹게 암을 극복하긴 했지만, 여성으로서 뒤따르는 우울증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때 홍란 씨가 하루종일 들여다보고 있었던 게 <나는 자연인이다>였다고 한다. 홍란 씨는 남편 석진 씨에게 "우리도 저렇게 살면 안 돼?"라고 한결같이 되뇌었고, 석진 씨는 그런 아내를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리게 된다.

3년 전 귀농해 하동 진교에서 무화과 농사를 짓고 있는 신석진·박홍란 부부. /임채민 기자

"좋다, 저렇게 산에 들어가서 사는 건 도저히 못 하겠다. 그러면, 우리 자연 속에서 농사를 짓자"는 게 석진 씨의 역제안(?)이었다. 그리고 그 제안은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가 된다.

일단, 결심을 하고 난 후의 실행은 빨랐다. 단 2개월 만에 터를 잡고 '시설 하우스'를 짓기에 이른다. 석진 씨가 시설하우스 재배를 하기로 한 건 일차적으로 수익을 위해서였다. 투자 대비 일정 정도의 수익이 창출되어야 안정적인 귀농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석진 씨와 홍란 씨는 전국 각지의 시설하우스 매물 정보를 살피는 한편, 농촌진흥청이나 농업기술센터 등 인터넷 사이트에 탑재된 각종 농사 정보를 틈틈이 익혀 나갔다. 귀농을 하기 위해 1∼2년씩 귀농학교에 다니며 장기적인 준비를 하는 이들도 있지만, 부부는 '논문을 보고 농사를 시작한 독학파'였던 셈이다. 귀농한 지 3년이 지난 지금 이 시점 석진 씨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논문 보고, 책 보고 농사를 시작한 것인데,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하죠."

◇농사 아무것도 아니네 했는데… = 진주, 사천, 고성 일대를 이 잡듯 농사짓기 좋은 곳을 찾아다니던 신석진·박홍란 부부는 하동 진교에 터를 잡는다. 시설 하우스 뼈대만 남아 있고, 잡초와 온갖 잡동사니들로 뒤덮인 곳이었다. 온 가족이 이 밭에 매달려 청소부터 하기 시작했다.

석진 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당시 장면이 담긴 사진을 게시해 놓고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우리가 해냈습니다. 농사일을 전혀 해 본 적 없는, 그래서 낫과 호미, 리어카가 너무나 불편한 우리. 왕게으름뱅이 우리 큰딸, 뽄쟁이 작은딸, 갱년기 우울증에 힘겨운 울 마눌, 저질 체력의 고개 숙인 가장…. 이 넷이서 가족이란 이름으로 이 불편하고 지루한 싸움에서 마음을 모았고, 결국 우리는 해냈습니다."

서서히 비닐하우스 꼴이 갖춰나가면서 곧바로 재배 작물로 무화과를 선택했다. 어린 시절부터 무화과를 좋아했던 데다 시장성도 충분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첫 시작은 논문에서 본 대로 따라하는 것이었다. 무화과나무를 땅에 심는 게 아니라, 상자에 심어 수분과 영양분을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공급하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신나고 재미있기만 했다. 시설을 갖춰놓고 보니 별로 사람 손이 갈 일도 없었고, 유유자적하는 재미가 쏠쏠하기도 했다.

신석진·박홍란 부부가 키운 무화과.

"너무 재미있는 거라요. 그래서 밤마다 낚시하러 다녔죠. '농사 아무것도 아니네'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곧바로 초보 농사꾼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처음 심은 무화과나무에서 열매가 열린 걸 보니 원래 염두에 두고 있었던 품종이 아니었던 사실을 알게 된다. 착과된 무화과나무 700그루를 뽑아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나머지는 버리다시피 했다. 품종에 따라 크기나 맛에 차이가 많이 나고, 시설 하우스 재배 적합 여부도 따져야 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첫 번째 시련이 어이없는 실수에 의한 것이었다면, 두 번째 찾아온 시련은 초보 농사꾼의 한계를 절감하게 하는 것이었다. 원인 모를 병에 걸리면서 잎이 떨어지더니 과일 맛도 뭔가 조금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과일 향도 사라졌다. 정상적인 과일과 미세한 차이가 나지만 그래도 먹을 만한 것 같아 그 과일을 판매하고 보니 당장 소비자들로부터 항의가 들어왔다. 그래서 과일 두 트럭을 폐기처분해야 했다. 직접 키운 과일을 버리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보증을 서서 돈을 떼였다면 그렇게 억울하지 않았을 거 같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더라고요."

아직 국내에서는 보고된 적이 없었던 '원인 모를 병'을 잡기 위해 친환경 농법으로 밀고 나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해충의 공격을 받게 된다. 이때 홍란 씨는 "우리 망했다"고 남편에게 하소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해충을 잡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농약을 사용하긴 했지만, 그 이후 재배 과정에서 세심한 신경을 쏟으면서 농산물 우수 관리 인증 마크인 GAP를 받고, 잔류농약 검사에서도 불검출 판정을 잇따라 받게 되었다.

안심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무화과가 신석진·박홍란 부부가 운영하는 '무화과 사계절 농장'에서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농사는 창조하는 일 = 신석진·박홍란 부부는 약 3300㎡(약 1000평) 밭에 비닐하우스 2동을 설치하고 1400여 그루의 무화과를 가꾸고 있다. 또 2640㎡(약 800평)의 노지에서 1000그루의 무화과나무가 자라고 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생활이다. 특히 지금 한창 무화과를 수확하는 시기라 더욱 그랬다.

나무 아래쪽에서 익은 과일을 따는 동안 그 윗가지에서는 과일이 계속 익어간다. 그래서 7월부터 12월까지 매일 매일이 수확 철인 셈이다.

저장이 용이하지 않은 과일이어서 수확하자마자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 인터넷, 도매시장, 로컬푸드 판매장을 이용하고 있는데, 인터넷 판매는 고급화 전략을 선택하면서 호응이 높다고 한다. 재구매율이 높은 게 특히 희망적이다.

그리고 로컬푸드 판매장이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로컬푸드 판매장은 농민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그때그때 판매장에 내놓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생산자나 소비자 모두 만족도가 높다.

박홍란 씨는 "온실 안 자투리땅에 각종 채소를 재배해 로컬푸드 매장에 내놓으니 그때그때 바로 팔리더라고요. 경매를 거치면 소비자들이 구입하는 가격도 올라가지만 신선도도 떨어지는 법인데, 로컬푸드 매장은 아침에 거둔 채소를 소비자가 몇 시간 후에 바로 구입하게 되는 거니까 서로서로 좋더라고요. 그날그날 재배한 것들을 파는 재미도 있고요"라며 로컬푸드 매장 예찬론을 펼쳤다.

신석진·박홍란 부부는 이 같은 로컬푸드 매장이 더 많이 생기게 되면 도시 소비자들이 여행과 신선 농산물 구입을 위해 더 많이 농촌을 찾게 될 것이고, 그러면 여러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석진 씨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올해는 무화과 농사가 안정기에 접어들 것 같다고 한다. 그러자 홍란 씨가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라며 웃는 얼굴로 맞장구쳤다.

신석진 씨는 농사를 "창조하는 일"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흙투성이가 되어서 일하는 농민들을 보면 힘들어 보이죠? 힘든 건 맞죠. 그러나 매 순간 창조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겨울 지나고 봄에 싹이 돋으면 정말 미칩니다. 그런 기적이 또 없어요. 육신이 피곤하다고 불행한 건 아니에요. 열무김치가 얼마나 맛있는지, 갓 딴 강낭콩을 넣고 지은 밥이 얼마나 맛있는지를 저는 여기 오기 전에는 몰랐으니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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