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목수 세상에서 살아남기] (6) 나의 생체시계는 몇 시?

◇이사, 월세 압박은 벗어나지만

요즘 이사철입니다. 저한테는요.

두 달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제 동생이 먼 출퇴근 거리를 감수하고, 제 곁으로 사무실을 옮겼습니다. 불효자인 저와는 달리 효자 그 자체였던 동생은 많이 허전한가 봅니다. 그보다 한 달 전 아버지와 어머니를 가끔 집으로 모시려고 집수리를 하고 짐도 옮겼죠. 그리고 지금 동생과 함께 창동 한복판에 마련하는 80년대풍 다방(茶房) '소굴'에도 짐을 옮겨야 합니다.

여기다, 2013년 1월 1일 0시. 마산합포구 오동서1길 11-1번지(중성동 148번지)에 차린 창동목공방. 지난 43개월, 3년 반을 잘 지내온 이곳도 떠나야 합니다. 아주~ 멀지 않은 곳으로. 최단거리를 재어보니 3800㎜. 즉, 3.8m 떨어진 오동서1길 12번지로. 살짝 골목 안으로 꺾어져 들어간 곳입니다. 이곳은 공방을 연 뒤 2년 전까지 제가 저녁밥을 먹던 식당이었습니다. '지리산 한방숯불갈비'. 간판 3개가 여전하지만, 지난 2년 지리산은 빈 가게로 있었습니다. 갓난쟁이 아들을 포함해 1남3녀의 엄마가 혼자서 열심히 운영하던 식당자리. 아마 제 얘기가 신문에 찍혀 나올 때쯤에는 한창 이삿짐을 옮기고 있을 겁니다. 오뉴월 염천에 살 좀 빠질 것 같습니다. 이사하면서 상호도 바꿀까 궁리 중입니다. '황 두목의 모꽁 소굴'. 어떻습니까. 요즘 맛 들인 '두목놀이'에 맞춰 새로운 상호를 만들었습니다.

지난 3년 6개월 동안 즐겁게 '농성'한 창동목공방.

옮기는 곳은 창원시가 조성한 창동예술촌에 포함된 곳이어서도 좋습니다. 이제 정말 입주작가가 된 것인가요. 저는 스스로 '입주 잡가'라고 부릅니다. 서툰 목수가 만드는 가구를 스스로 작품이라 말하기는 낯 간지럽습니다. '상품', '제품' 정도가 적당한 표현이어서, 입주작가라는 말을 쓰기는 부끄럽습니다. 창원시 담당 실무부서의 과장, 계장 등 관계 공무원들이 성의껏 도와줬습니다. 특별히 이재영 주무관의 진심 담긴 협력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공방 이전 문제는 절묘하기도 하고, 좀 속상하기도 하고, 골치 아프기도, 고맙기도 해서 깨알같이 제 속내를 털어놓기는 아직 때가 아니라 참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사와 관련돼 다시 한 번 말씀드릴까 합니다. 정작 오늘 드릴 말씀은 이사 문제가 아니라 '사람마다 다른 생체시계'에 대해섭니다.

◇매달 꼬박꼬박 돌아오는 것들

월급쟁이 통장은 카드 이용대금이 스치듯 잠시 머무르는 공간일 뿐이고, 월급날은 기다려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첫사랑 같은 것이죠. 반면 사장님의 직원봉급날은 그 반대라고 합니다. 이번 달 봉급 맞춰주고 한숨 쉴까 하면 다음 달 봉급날이 다시 등짝을 두드리고 있다고 합니다. 저와 같은 세입 자영업자는 월세 내는 날이 바로 그렇습니다.

월세와 주차비에다 전기, 수도, 인터넷, 전화요금, 아내에게 바칠 생활비 등이 순서대로, 어김없이 저를 찾아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부담이 큰 것이 월세죠. 생활비야 많이 줄 수 있다면 더욱 좋은 것이죠. 부모로서 내 새끼 목구멍으로 밥 들어가는 모습이 가장 흐뭇한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이니 제쳐놓고요. 여기다 7월과 12월에는 부가가치세, 5월에는 종합소득세도 내야 하니. 매달 급여에서 각종 세금이 사전 공제되기 때문에 느낌이 좀 약한 월급쟁이들과는 달리 자영업자로서 느껴지는 일상은 '지출과의 전쟁' 같습니다.

월세는 목돈이기도 하고, 이런저런 지출내용 가운데 가족생활비 다음으로 큰 금액입니다. 세어보니 모두 43번의 월세를 어김없이 꼬박꼬박 송금했습니다. 날짜 어기지 않았으니 스스로 대견합니다. 목공소에서 저랑 소주잔을 나눈 몇몇 분은 제 이런 '구라'를 기억할 겁니다.

"출입구 대들보에 쓰인 글귀가 보이는가? 목공소를 운영하는 나의 첫 번째 원칙이다. 착한 사람들에게만 보인다!"

'황 두목의 모꽁 소굴'이 들어설 창동예술촌 '르네상스 아뜰리에'.

대들보에 저는 이렇게 새겼습니다. "월세를 잘 내자!" 실제로 새긴 것이 아니라 제 마음에 새긴 거죠. 2013년 12월 19일. 꼭 그 날짜에 맞춰 개봉한 영화 <변호인>에서 주인공 송강호가 젊은 시절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막노동하면서 지었던 그 아파트 대들보에 새긴 "절대로 포기하지 말자"는 글귀를 보면서 어떤 심정이었는지 공감했다면 과장입니까?

이런 사연이 있습니다. 계약을 위해 집주인 아들(임대인)과 세입자(임차인)가 대화를 합니다. 두 사람이 내놓은 카드의 금액 차는 20만 원. 선뜻 임대인이 10만 원을 양보합니다. 그리고 임차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장님! 더 깎지 마이소. 울 어머이 생활빕니더." 임차인은 그 순간 살짝 감동합니다. "가게 임대수입으로 늙은 어머니를 부양하는구나. 이런 마음씨를 가진 아들을 둔 어머니는 참 좋겠구나. 어머니가 아들을 정성과 사랑으로 키웠으리라." 교섭은 쉽게 결론에 도달하고, 임차인은 한 번도 월세 날짜를 어기지 않았습니다.

창동목공방의 집주인 할머니는 임대일자가 끝난 지난 10일. 제게 와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날짜가 좀 지나도 괜찮으니 찬찬히 짐 옮기소. 7월 말까지만 비워 주모 돼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고맙습니더. 20일까지 무조건 비아 드리겠습니더. 살았던 흔적 안 냄기고 깨끗하게 치아 드리겠습니더." 아무튼, 좋은 인상으로 만나 아무 탈 없이 지내다 꼬랑지 남기지 않고 옮겨갈 겁니다.

창동예술촌 입주로 당분간 월세의 부담에서 벗어나게 됐습니다. 이번 이사로 제 생체시계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가족들을 위한 생활비에 좀 여유가 더 생길까요. 아니면 부담이 줄어든 만큼 마음도 느긋해지고 게을러져서 수입이 더 줄어들까 걱정도 합니다. 각자 처지마다 다르게 느끼는 생체시계는 환경변화에 따라 달라지겠죠.

이 지면을 할애받아 제 소소한 일상을 쓰는 글쓰기도 마찬가지더군요. 속에 쌓아둔 내공이 빈약한 탓에 2주마다 돌아오는 원고 마감은 여전히 부담이 됩니다. 평소 메모하는 습관도 없는 데다 즉흥적인 성격 덕분으로 그때그때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하다 보니 마치 월세 내는 날 돌아오듯 금방금방 저를 압박하네요.

◇휴식 없는 나의 숙명

저는 평소 이런 생각을 합니다. 행복한 사회란 부부 가운데 한 사람만 일해도 충분히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사회. 아이들이 배우는 문제, 아플 때 치료하는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늙어서 폐지 주우러 다니지 않아도 되는 인간적인 품위를 잃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 낮에는 일하고, 해지면 가족과 친구들과 즐길 수 있는 사회. 휴일에는 충분히 휴식하고, 일 년 중 한 달쯤은 휴가를 보낼 수 있는 사회. 이런 사회라면 세금을 좀 더 내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창동 한 구석에서 자영업을 시작한 이후 아주 잠깐 가족여행을 빼면 단 하루도 쉬지 않았습니다. 추석, 설날에도 문을 열었고, 토·일요일에도 공방을 엽니다. 그것을 자영업자의 숙명 같은 것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간신히 먹고사니까요. 그래서 제 생체시계는 항상 낮 12시쯤에 바늘이 서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글·사진 황원호(창동목공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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