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따라 내 맘대로 여행] (84) 강원 동해시 무릉계곡·삼화사

더운 공기는 수분을 잔뜩 머금었다. 숨이 턱턱 막힌다. 온다던 비 소식은 감감하다. 무겁기만 한 하늘은 불쾌지수만 잔뜩 올려놓았다.

이쯤이면 계곡이냐 바다냐를 두고 고민하게 된다. 모래사장 한가운데서 강렬한 햇살을 마주할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서 청량한 바람을 맞으며 마냥 쉬고 싶다. 시원한 물소리도 함께라면 좋겠다.

"무릉이 어드메오. 나는 여긴가 하노라."

강원도 동해의 내로라하는 해변을 제치고 국민관광지 1호로 지정된 두타산과 청옥산 등반의 들머리에 자리한 무릉계곡을 찾았다. 신선이 노닐었다는 중국의 무릉도원에서 이름을 따왔다. 주차비(소형차 2000원)를 내고도 몇 분을 달리면 너른 주차장이 나온다. 매표소(성인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700원)에서 표를 구입하고 입구에 섰다.

강원 동해 무릉계곡. 반석에 음각으로 새겨진 선인들의 글씨에서 기개와 풍류가 느껴진다.

이내 힘차게 흐르는 풍부한 계곡물 소리가 먼저 마중나온다.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진다.

무릉계곡 초입에서 무릉반석 암각서를 만날 수 있다. 바위에 가로로 살아 움직이는 듯 힘이 있고 웅장한 글씨가 새겨져 있다. '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武陵仙源 中臺泉石 頭陀洞天)'이라는 암각서로 그 아래 '옥호거사서신미'라는 각서가 있다. 신미년에 옥호거사가 썼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릉선원은 도교 사상을, 중대천석은 불교 또는 유교사상을, 두타동천은 불교사상을 나타낸다고 한다

이 글씨는 봉래 양사언이 강릉부사 재직 기간에 전임 정두형 부사의 부친상 관계로 신미년에 광천(비천)을 방문했을 때 무릉계곡을 찾아 썼다는 설이 있고, 또 하나는 옥호자 정하언이 삼척부사 재직 중인 신미년에 무릉계곡을 방문해서 썼다는 설도 있다. 동해시에서는 이를 보존하고자 1995년에 모형 석각을 제작했다. 원형은 따로 보관해 놓았다.

무릉반석 암각서를 마주하고 거대한 너럭바위가 나타난다. 1000명이 앉아 쉴 수 있다는 무릉계곡 명물 '무릉반석'이 눈앞에 펼쳐졌다. 석장 또는 석장암으로 지칭하기도 했던 이곳 무릉반석은 5000㎡나 되는 넓은 반석이다.

더위를 피해 일찌감치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였다. 그저 발만 담그고 담소를 나누는 사람, 너른 바위를 미끄럼틀 삼아 장난치는 아이들, 이미 계곡물에 흠뻑 젖어 제대로 피서를 즐기는 이들이 저마다 신났다. 텐트만 치지 않으면 자유롭게 더위를 피할 수 있다. 사방은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푸르디푸른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반석 위에는 풍류가 흐른다. 선인들도 이곳에서 더위를 피하고 풍류를 즐긴 모양이다. 명필가와 묵객 등이 음각해 놓은 여러 글씨는 세월을 거슬러 현세와 이상향을 넘나드는 선인들의 기개와 풍류를 그대로 간직했다.

무릉반석을 지나 다리를 건너면 두타산과 청옥산을 병풍 삼아 아늑하게 자리한 삼화사가 있다. 신라시대 창건된 절로 알려진 삼화사 적광전에는 철조노사나불좌상(보물 제1292호)이 봉안되었고, 적광전 앞마당에는 오랜 세월을 견뎌온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삼층석탑(보물 제1277호)이 있다.

목탁소리와 불경 외는 소리만이 이곳을 감싼다. 잠시라도 고요함과 엄숙함 속에 정신을 모아본다.

흠뻑 땀을 내고 싶다면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트레킹을 시작해도 좋다. 여러 코스가 있지만 보기만 해도 시원한 쌍폭까지 한 시간 안팎 걸리는 트레킹 코스는 경사가 완만하고 평탄하다. 울창한 나무 터널은 뜨거운 햇볕을 가려 시원하고, 청량한 바람이 친구가 되어준다. 학소대, 장군바위, 선녀탕 등 가는 내내 명소가 이어져 지루할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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