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상도블로그]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보러 가는 길

작년 4월에 이어 지난 5월, 3박 4일 일정으로 지구 상에서 가장 나이 많은 삼나무로 추정되는 조몬스기가 있는 야쿠시마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후쿠오카 최남단 가고시마에서 배를 타고 3시간이나 가야 하는 곳입니다.

조몬스기는 야쿠시마라는 작은 섬을 세계에 알린 나무입니다. 이 나무에 일본 군국주의 혼이 담겨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최고 추정 수령 7200년을 자랑하는 조몬스기가 아니었다면, 굳이 그 먼 남쪽 작은 섬을 찾아가지는 않았겠지요.

야쿠시마까지 가는 데 꼬박 하루가 다 지나가버리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 다녀오는 사람들에게 여간 불편하고 아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후 5시만 되면 상점들도 문을 닫기 시작하는 작은 섬이라 오후 4시쯤 도착해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야쿠스기 자연관으로 달려갔습니다만, 오후 5시 폐관시간에 쫓겨 고작 30분 만에 관람을 마치고 숙소로 가야 했답니다. 작년처럼 오전에 후쿠오카에서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면 훨씬 여유로운 일정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떨치기 어려웠습니다.

이끼 가득한 야쿠시마 삼나무 숲.

작년에는 야쿠시마에서 2박 3일을 보내고 셋째 날 아침 일찍 가고시마로 나와서 1박 2일 보냈습니다만, 이번엔 3박 4일 일정을 모두 야쿠시마에서만 보냈습니다. 덕분에 작년에 못 가봤던 기겐스기와 야쿠스기랜드 그리고 센비로 폭포를 비롯한 야쿠시마의 여러 폭포와 바다거북 산란광경까지 보고 돌아왔습니다.

그중에 역시 길고 긴 역사의 시간을 품고 살아가는 야쿠시마 삼나무들이 사는 그 숲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려 합니다. 야쿠시마는 1년 365일 중 366일 비가 내린다고 할 만큼 비가 많이 내리는 섬입니다. 이 섬의 산속 강우량은 연간 8000∼1만㎜입니다. 1만㎜가 바다로 흘러가지 않고 그대로 고인다면 무려 10m 높이가 되지요.

작년 4월 2박 3일 동안 야쿠시마에 머무는 동안 단 한 번도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사흘 동안 비가 내렸습니다. 그 때문인지 작년보다 숲은 신비감이 훨씬 더하였고 특히 이끼들이 뿜어내는 생명력이 가득 넘쳐 났습니다. 비 때문에 조몬스기까지 가는 길도 훨씬 멀고 힘이 들었습니다. 아침 7시에 산행을 시작하여 오후 6시가 되어서야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 야쿠시마 삼나무 숲 어린 삼나무.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조몬스기까지 가는 숲길을 걸으며 들었던 또 다른 생각은 이 숲의 진짜 주인은 조몬스기나 수령 1000년 이상의 야쿠스기들이 아니라 바로 '이끼'더라는 겁니다. 온종일 추적추적 비가 내려 여간 불편하지 않았습니다만, 대신 숲을 가득 메운 이끼들은 빗물을 잔뜩 머금고 생기가 넘쳐나더군요. 숲 가득한 이끼들을 바라보며 11시간을 걷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바로 주인이 그들이라는 것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야쿠시마는 바닷속에 있는 화강암 바위들이 융기하면서 생겨났습니다. 심지어 이 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화강암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3000년이 더 지난 야쿠스기들이 사는 것도 다른 곳에 비해 토양이 척박하여 빨리 자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그야말로 흙 한 줌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섬이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 단단한 화강암 바위에 처음 자라난 생명체는 거대한 삼나무가 아니라 어쩌면 작고 약한 '이끼'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이끼들이 마치 흙을 대신하여 다른 생명체의 씨앗을 받아들이고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였을 것입니다.

요즘 말로 하자면 수경재배가 이루어진 셈인데, 그때 씨앗을 품고 생명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 것이 바로 이끼였을 거라는 겁니다. 그러니 야쿠시마 삼나무를 비롯한 생명의 기원은 이끼로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수만 년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이끼'들은 생명의 근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윤기(세상 읽기, 책 읽기, 사람살이 www.ymca.pe.kr)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