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벌용동 16통 김진렬 통장…새벽 5시 마을 위험지역 순찰, 목욕탕서 주민 목소리 청취

경남 사천지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데다 새로운 도심지로 급부상하면서 제1 행정구역으로 손꼽히는 벌용동.

이곳에는 9년 동안 통장을 맡은 김진렬(62) 16통 통장이 있다. 장기집권(?)의 비결은 뭘까. 바로 부지런함이다.

김 통장은 새벽 5시면 어김없이 눈을 뜬다. 동요 제목처럼 '동네 한 바퀴'로 하루를 시작한다. 두 발로, 때로는 자전거로, 승용차로 위험지구를 한 바퀴 돌아본다. 그리곤 목욕탕으로 향한다. 주민들의 소리를 듣고 행정당국에 전달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1년 365일 주민들의 가렵고 아픈 곳을 긁어주다 보니 김 통장의 장기집권은 너무나 당연했다.

사천 벌용동 김진렬 16통 통장. /장명호 기자

김 통장은 벌용동 토박이가 아니다. 삼천포시와 사천군이 통합되기 전 사천군 용현면 덕곡리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은 삼천포시 남양동에서 보냈다. 생계에 어려움을 느낀 김 통장의 부모가 어쩔 수 없이 이사를 하게 된 것인데, 김 통장은 이곳에서도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됐고, 먹고살 방도를 찾아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됐다.

그는 '어떤 일을 해 볼까' 고민하다 가축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외진 곳을 찾던 중 삼천포시 봉남동에 정착하게 됐다. 1983년 일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던 김 통장은 남들보다 2배, 3배 열심히 일하는 것밖에는 없었다고 한다. 2년 만에 농어업 후계자로 선정됐고, 한우는 40여 마리로 늘어났다. 이런 부지런함 때문인지 마을로 이사온 지 3년 만인 1986년부터 통장을 맡게 됐다. 그때 당시에는 최연소 통장이었다.

"토박이가 아닌데도 통장을 맡게 됐습니다. 젊은 사람이 워낙 부지런하게 뛰어다니다 보니 어르신들이 좋게 본 것 같습니다. 추대형식으로 통장이 됐고, 행정당국과 주민을 연결해주는 고리가 된 것입니다. 운명처럼 말입니다."

남의 일을 내 일처럼 여기는 부지런하고 야무진 통장으로 인정받았다. 사람에 대한 평가야 저마다 다르겠지만 일 잘하고 사람 좋다는 말은 누구에게서나 듣는다. 마을 어르신 챙기는 마음이 유난하다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김 통장은 3년 만에 통장을 그만두게 된다. '고기가 좋다'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삼천포 시내에 있던 50∼60개 정육점·음식점 가운데 절반 정도와 거래를 하게 됐고, 더구나 1989년부터 벌용동에서 음식점을 시작하게 된 때문이다. 통장이란 '늘 희생하고 봉사해야 하는 자리'라고 생각해 온 그로서는 큰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마을 어르신들의 적극적인 만류에도 스스로 그만둬야만 했다고 한다. 자신의 일에 전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통장을 맡다 보면 민폐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김 통장의 판단이었다. 이건 김 통장의 착각이었다.

벌용동에서도 김 통장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남의 일을 내 일처럼 챙기고, 부지런한 김 통장이 440여 명의 주민 눈에 안 띌 수 있겠는가. 특히 젊은 시절 통장 업무를 수행한 경험은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했으리라.

결국 지난 2008년부터 현재까지 통장을 맡고 있다. 그런데 김 통장이 주민들로부터 신망을 받을수록 한숨이 깊어지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김 통장의 아내다.

김 통장은 아내와 둘이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데 식당 일은 고스란히 아내 몫이다. 이러다 보니 집의 일이 잘 안 됐다. 아내의 불평·불만이 많았고, 얼굴 주름이 하나둘씩 늘어난다고 하소연이다.

특히 김 통장이 벌용동 통장협의회장을 맡은 데다 연임, 재연임 하면서 5년차에 접어들자 아내의 불평·불만은 거의 폭발 직전이다. 스트레스가 팍팍 쌓여 못살겠다고 연방 구박을 한다. 이에 김 통장은 잠자는 시간을 쪼개 아내의 일을 조금씩 돕기 시작했다. 완벽하게 장사 준비를 하는 것은 물론 밥 먹고 나서 설거지는 이제 일상적인 일이 됐다. 또다시 김 통장의 부지런함과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정의 평화가 찾아왔다.

김 통장은 아내를 위해 한 가지 더 선물을 준비 중이다. 내년 말 임기가 끝나는 통장협의회장은 희생과 봉사정신이 투철한 후배에게 물려줄 생각이라고 한다. 김 통장은 자신의 장기집권(?) 비결이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칭찬을 잘하는 사람이 후계자가 됐으면 좋겠다고 귀띔한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고, 단점을 자꾸 얘기하면 듣는 사람은 부정적인 사람이 된다는 게 김 통장의 생각이다.

"통장을 남편으로 둔 아내가 무슨 잘못이겠습니까. 내 몸이 부서지지 않는 한 최대한 아내를 도와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벌용동 통장협의회를 긍정적으로 잘 이끌어갈 수 있는 젊은 세대의 통장이라면 지금이라도 OK."

김 통장은 자연마을이 부럽다고 한다. 더 자세히 말하면, 자연마을에는 대부분 마을회관이 있는데, 이곳에 갖춰진 방송시설이 부럽다고 한다. 마을에 좋은 일이 생기거나 나쁜 일이 생겼을 때 방송시설이 있으면 쉽게 알려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재해 등 위급한 상황이 발생할 때에는 더욱 그러한 마음이 든다고 한다.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서라도 방송시설을 갖추고 싶다는 김 통장. 이 역시 주민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닐까.

/장명호 기자 jmh@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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