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우해이어보] 21편

이번 <우해이어보> 현장 탐사에서 만날 녀석은 '양타'다. 책에 실린 어종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크다고 한다. 지금은 우해에서 녀석을 만나기 어렵다. 오늘 탐사는 양타를 잡아들이는 함정어로의 현장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담정 김려는 <우해이어보>에서 200여 년 전 우해 앞바다에 정치 함정어구인 어뢰(魚牢)가 바둑판처럼 설치되어 있다고 묘사하고 있다. 지금은 그 바다 어느 곳에도 그런 자취는 남아 있지 않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지워져 버렸다. 다만 지난 탐사 때 들렀던 소포에서 독살(석뢰·石牢)로 함정어로를 행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정도다.

<우해이어보>에서 양타는 달리 '가방어'라 했으니, 그 이름에서 방어와 같은 족속임을 드러내고 있다. 담정의 글을 보면 양타가 방어에 비해 주둥이가 뾰족하다는 게 가장 두드러진 차이다. 색이 푸른 것은 같으나 맛은 방어보다 조금 떨어진다고 했다. 성질이 차서 많이 먹으면 풍을 일으킬 수 있으며, 바다 생물 가운데 가장 커서 큰 것은 한 수레에 가득 찰 정도라 했다. 성질이 차서 많이 먹으면 풍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 것은 붉은 살 생선을 회로 먹을 때 왕왕 겪는 배탈과 같은 부작용을 염두에 둔 묘사인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민감한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고기를 회로 먹을 때 붉은 살을 떼어내고 먹기도 한다.

담정은 이 물고기는 바닷속에 있을 때는 잡기 어렵고 어뢰 안으로 들어온 뒤에야 잡을 수 있다고 했다. 다 자란 녀석은 몸길이가 2m를 훌쩍 넘고, 몸무게도 약 100㎏ 가까이 성장하는 대형 어류이니 당시의 어법으로는 그럴 만하다 싶다.

<우해이어보>에서 '가방어'라고도 칭한 양타는 방어와 비슷한 '부시리'를 이른 것으로 보인다. 다 자란 녀석은 몸길이가 2m도 훌쩍 넘는다고 했다. 사진은 1986년 제주 차귀도 해상에서 잡혔다는 1m 58㎝의 대형 부시리. /연합뉴스

어류도감에서 방어와 비슷한 종을 뒤져보니 잿방어와 부시리가 나란히 나온다. 이 가운데 잿방어는 대가리가 방어보다 크다고 했으니 담정이 '주둥이가 뾰족하다'고 말한 양타가 이 녀석은 아닌 듯하다. 또한 잿방어는 몸통도 방어에 비해 두툼한 편이라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방어와 부시리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대신에 잿방어와 부시리 가운데서 몸집이 방어에 비해 가늘고 큰 녀석을 고르라면, 많은 이들이 비정한 대로 가방어라 한 양타는 부시리를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부시리는 난바다와 연안의 바위 해안에서 살며, 멸치 고등어 등의 소형 어류와 오징어와 새우 등의 갑각류를 즐겨 먹는다. 이런 먹잇감을 따라 혼자 또는 작은 무리를 지어 연안으로 회귀하기도 하는데, 이때 어뢰에 들어 포획된 듯하다. 이 기록으로도 알 수 있지만, 부시리를 포함한 방어 등 전갱잇과의 어류를 포획 섭식한 것은 인류가 바다 자원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때부터다. 선사시대의 조개 더미에서도 이런 어류를 먹고 내다 버린 뼈가 나오니 말이다.

옛사람들이 이 녀석을 어떻게 잡았는지 살펴보자. <우해이어보>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바닷가 사람들은 바닷물이 여울져서 고기가 모이는 곳을 올(兀)이라고 말하는데, 올은 방언으로는 조(條)라고 한다. 그래서 이것을 어조(魚條)라고 부르며, 길에도 경로가 있는 것처럼 고기들을 쫓아가서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이곳 사람들은 조를 따라 길이가 10여 장이나 되는 큰 나무들을 집의 기둥처럼 조의 곁에다 나란히 세워놓는다. 양 기둥의 사이는 8척 10척의 간격으로 하되, 기둥은 빙 돌려서 활처럼 굽어지게 둘러친다. 그래서 조가 넓으면 100개나 되며, 조가 좁으면 그 수가 줄어들게 된다. 그다음 큰 대나무를 엮어서 성근 발을 만든다."

구체적인 어로 방법은 다음과 같다.

"바닷물이 밀려올 때마다 배를 타고 조에 들어가서 대나무 발로 기둥들 사이를 막는다. 대개 대나무 발의 윗부분은 기둥의 뾰족한 곳에 묶으며, 아랫부분은 물밑 모래와 돌 속에 넣어 삼으로 만든 동아줄로 묶고 커다란 닻으로 중간 중간을 눌러 놓아서, 물고기가 충돌하거나 뛰어 도망가는 것을 막는다. 기둥 안에는 짚과 섶이나 억새 갈대를 쌓아 깔아주어 물고기가 잠자고 쉬며 놀 수 있는 곳을 만들어 준다. 이렇게 해 놓으면 물고기들은 모두 바닷물을 따라서 조 안으로 들어왔다가 바닷물이 빠져나가면 대나무 발에 막혀서 나갈 수 없고, 또 물밑의 대나무 발도 높아서 뛰어넘어 도망갈 수 없다. 미리 커다란 그물을 대나무 발의 바깥쪽 수백 보 떨어진 곳에다 설치해두고, 그물과 대나무 발 사이에는 큰 배도 다닐 수 있게 해 놓는다. 드디어 바닷물이 모두 빠져나가기를 기다렸다가, 곧 천천히 대나무 발을 거두어들이면 물고기가 크고 작은 것 할 것 없이 모두 그물 안에 들어온다."

함정어구의 명칭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이곳 사람들은 기둥의 안을 뢰(牢)라고 하는데, 뢰라는 것은 감옥에 갇힌 물고기와 같다는 것이다. 간혹 이것을 어살(어전·魚箭)이라고도 한다. 물 밖에서 기둥의 윗부분을 바라보면 가지런하고 촘촘해서 마치 화살이 살통에 들어 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또 기둥 밖과 그물 안을 뇌정(牢庭)이라고 한다. 어부들이 조수가 드나드는 것을 기다리며 아침저녁으로 묶고 쉬면서 노를 저어 왕래하면서 살피는 것을 조 보기(시조·視條), 발 보기(시박·視箔), 살 보기(시전·視箭)라고도 한다. 때에 따라 말하지만, 이름붙인 실상은 한가지다."

어뢰 위치, 소유관계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진해 바닷가에는 어뢰가 수십 곳에 있어 마치 바둑판처럼 어뢰를 두고 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이름과 표시를 가지고 있다. 표시하기로는 이를테면, 남뢰, 북뢰, 정뢰, 석뢰, 도내뢰, 동분뢰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중략) 어뢰에는 각각 주인이 있으며, 어족의 풍흉도 해마다 변한다고 한다."

▲ <우해이어보>에는 양타를 잡는 방법도 기록되어 있다. 바닷물이 여울져 물고기가 모이는 곳에 나무를 촘촘히 박아 감옥처럼 만들어 잡는 것으로 '어살'이라고도 한다. <단원풍속도첩> 속 어살 어업. /최헌섭

정리하면 위치에 따라 남뢰·북뢰, 소유에 따라 도내뢰, 소재에 따라 정뢰·석뢰·동분뢰 등으로 불린 것 같다. 이 가운데 석뢰는 기존의 해석은 석씨 소유의 어살이라고 보았으나, 소재가 돌로 된 것으로 이해한다면, 독살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우해이어보>에 따르면, 그가 진해서 유배생활을 하던 19세기 초엽(1801~1806년)에는 남해안 곳곳에서 어살을 이용한 함정 어로가 보편적으로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조선시대 전기에 간행된 <경상도속찬지리지>를 통해 지금의 김해, 진해, 마산, 고성, 사천, 남해 등 거의 남해안 전역에서 이러한 함정 어로가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최헌섭 두류문화연구원 원장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