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었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구기 운동에서 무술까지 이것저것 안 해 본 운동이 없다. 배드민턴도 그중 하나다. 1980년대 초반 내가 근무하던 대학에 여자 배드민턴부가 있었다. 여자 복식 부문에서 세계적 수준의 기량을 자랑하던 팀이었다. 당시 라켓과 셔틀은 협회를 통해 수입을 했는데 면세품이라 못 쓰는 것도 5년간 보관해야 했다. 우연한 기회에 선수들 기준으로는 못 쓰는, 내 기준으로는 최상급 라켓을 대신 보관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배드민턴을 시작하게 된 계기다. 어깨 너머로 배운 실력이지만 국가대표급 자세와 35년의 구력은 중국에서 통하고도 남음이 있다.

어느 날 선생님 중 한 분이 자기가 동네 골목에서 배드민턴을 제일 잘 친다고 자랑질을 했다. 말끝에 나도 왕년에 파리깨나 잡았다고 했더니 당장 한 판 붙자며 달려들었다. 지금 라켓도 없고 나는 실내에서만 친다고 했더니 핑계가 많니 뭐니 하면서 약을 올렸다. 방학 때 한국 가면 운동 장비를 가져올 테니 가까운 체육관이나 하나 알아보라고 하고 다음 학기에 라켓 2개와 신발을 챙겨 왔다. 가방에서 양말까지 전문용품 세트를 본 그는 갑자기 꼬리를 내렸다. 스무 살 차이인 그와 단식 경기를 했는데 결과는 실수로 내 준 2점이 전부였다. 골목에서 친 그는 줄곧 내가 받기 좋게 공을 넘겼고 나는 받기 어려운 쪽으로만 공을 주었으니 게임이 될 리가 없다. 지금은 5개국 9명의 제자에게 배드민턴을 가르치고 있다.

운동만큼 쉬운 소통수단은 없다. 어울려 땀을 흘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꽤 쓸 만한 정보를 많이 건질 수 있다. 나서기 좋아하는 중국인들이라 정보 제공에 그치지 않고 아예 해결까지 다 해 준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다보면 시야가 넓어진다. 중국인들도 처음 만나는 사람의 나이나 띠를 먼저 물어 본다. 내가 60세라고 대답하면 거의가 "부커능(不可能)"이라며 놀란다. 자기 나라 외모 기준으로 보면 40대 후반 정도기 때문이다.

중국에 와서 배드민턴 예찬론자가 되었다.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할 수 있는, 남녀노소가 모두 할 수 있는 유산소 운동이기 때문이다. 중년 아줌마 팬들도 꽤 생겼다. 코트 사용료는 1시간에 40원(7200원)이고 셔틀이나 장비도 대부분 수입품이라 한국과 비슷하다. 결코 적지 않은 돈이지만 주말이면 자리가 없다. 중국 경제 발전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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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배워 말글 써먹는다"는 말이 있다. 배운 걸 유용하게 잘 활용한다는 말이다. 물론 여건이나 기회가 돼야 가능한 일이지만 기회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미래도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자신을 믿고 좋아하는 일, 남보다 잘하는 일에 계속 매달리다 보면 반드시 쓸 기회가 오기 마련이다.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김경식(시인·중국 하북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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