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은 바로 지금부터] (17) 밀양 산내면 영지농원 김철현 씨

게릴라성 호우를 뿌리던 장맛비가 주춤한 날을 택한 것이 과수농사에 바쁜 일손들을 붙잡은 셈이 됐다. 밀양시 산내면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김철현(48) 씨 영지농원을 찾았다. 사진도 찍고 사과밭을 둘러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기엔 비가 오지 않는 게 좋지만 농민들에게는 이 반짝 맑은 날이 더 바쁜 시간이었다. 저마다 농약치는 기계를 몰고 철현 씨 집으로 모이는 이웃 주민들의 "약 안 칠 거냐?"라는 지청구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이맘때면 외래해충인 선녀벌레가 창궐하는 시기입니다. 선녀벌레는 새로 나온 잎 뒷면이나 가지에서 수액을 빨아 먹어 고사시키는데 비가 안 올 때 방제하려는 것이죠. 워낙 이동력이 좋아 동시에 방제해야 효과가 있는데 오늘은 항공방제가 안 된다고 하더니 다시 가능하다네요. 그것 때문에 부랴부랴 주변에서 모이는 겁니다."

그런 말을 들으니 더 미안하다. 내 마음을 가볍게 하려는 듯 철현 씨가 한마디 더 보탠다.

"당장 비가 내리지 않을 것 같으니 괜찮습니다. 저 두 분은 전직, 현직 이장님이신데 수시로 우리 집에 모이곤 합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이야기라도 나누도록 놔두고 우리가 창고 사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밀양시 산내면 원서리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김철현 씨가 농장에서 나무를 돌보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부산서 보험업하다 아버지 권유로 귀농 =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철현 씨는 귀농 9년차라고 했다. 보험업을 했는데 그다지 비전이 보이지 않았단다.

"17∼18년 보험업을 하면서 나름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도시 생활이라는 게 그렇지 않습니까? 귀농 직전 법인 대리점 운영할 땐 직원이 10명 가까이 있었습니다. 직원 월급에 사무실 임대료 등등을 맞추려면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많았습니다. 회의도 생기고 비전이 없어 보이더라고요. 그런 갈등을 겪는 와중에 아버지께서 농사를 물려받는 게 어떠냐고 하시더군요."

2008년 마음을 정한 철현 씨는 1년 동안 부산과 밀양을 오가며 사과나무를 가꾸었고, 2009년 10월 부모님 집으로 완전히 귀농했다.

"아버지 사과밭이 3000평이었는데 전업을 하기엔 부족했습니다. 옛날에는 '얼음골사과' 명성으로 그만한 규모이면 수익이 괜찮았는데 요즘은 워낙 사과를 재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재배한계선마저 북쪽으로 올라가 이전 같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6500평 정도로 키웠습니다."

철현 씨는 재배면적이 늘어났다고 수익이 비례해 늘어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이전엔 3000평에서 1억 원 수익을 올릴 수 있었는데 지금은 5000평은 지어야 1억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6500평에 약 2300그루 사과나무가 있습니다. 매출로 2억 정도 되고, 인건비에 수수료 등 기타 경비를 제하면 1억 2000만∼1억 3000만 원 정도를 순수익으로 보면 됩니다."

사과농사가 별 재미 없다던 철현 씨의 이야기는 엄살이었다.

그런데 과수농사는 농번기가 없이 1년 내내 바쁘다고 했다.

"과수농사 대부분은 '잎 농사'입니다. 봄, 여름 잎 농사를 잘 지어야 10∼11월 열매농사가 잘됩니다. 요즘은 과일 솎아주기 작업과 풀베기, 약치기, 필요없이 양분만 소비하는 가지를 잘라내는 게 일이죠. 이렇게 잎 농사, 열매농사를 지어도 여전히 판매가 문제로 남습니다. 그냥 공판장 등에 내다 팔면 되겠지만 가격이 낮아 개인 주문판매를 해야 합니다. 이게 겨울까지 이어진다고 보면 됩니다. 최상의 조건 속에서 잘 관리해야 해 1년 내내 제대로 쉴 틈이 없는 게 과일농사입니다."

철현 씨도 처음엔 70~80%를 공판장 등지로 보내 팔았다. 애써 수확한 사과를 헐값에 넘기지 않으려고 개인 판매망 확보에 주력한 결과 귀농생활 7∼8년 만에 개인 택배물로 3000~4000개를 판매한다.

◇생활 불편함 견디니 마음의 여유 만끽 = 철현 씨는 귀농 후 마음이 제일 편안해졌다고 했다.

"물론 경제적으로도 훨씬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 여유란 것이 단순히 돈을 많이 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여기는 도시와 다릅니다. 도시에서는 피우던 담배가 떨어지면 집 밖에 나가면 해결됩니다. 여긴 그게 불가능하죠. 담배 사려고 불 꺼진 동네 구멍가게 문을 두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밀양 시내까지 담배를 사러 나가겠습니까? 결국 참을 수밖에 없죠. 우스운 이야기지만 돈을 쓸 시간이 없습니다. 웬만한 것은 자급자족하고, 불필요한 지출이 없으니 도시에서 살 때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습니다."

생활의 불편함에 순응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것이다.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익숙해지면서 조바심보다는 오히려 여유가 더 생겼다는 것이다.

그런 철현 씨가 갑자기 한 2년 정도 더 일찍 귀농했더라면 더 나았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낸다.

"그때는 귀농귀촌 바람이 불기 전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당연히 땅값도 오르기 전이라 좀 더 편안하고 풍요하게 농촌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을 것이란다. 내가 귀농을 경제적인 관점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더니 철현 씨 대답이 엉뚱하다.

"사실 그 2~3년이 저에겐 제일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게 법인 대리점을 운영했던 시기였거든요. 그래서 대리점을 운영하지 않고 귀농했더라면 마음고생 덜 했을 것이란 얘깁니다. 하하."

◇'인생은 60부터' 맞춰 심은 사과나무 = 철현 씨는 미래 계획도 꼼꼼하게 세워 뒀다고 말한다.

"올해 새로 집을 짓고 있습니다. 새집엔 외국인 부부를 일꾼으로 들일 계획입니다. 수확철이나 열매솎기 작업 때를 제외하곤 혼자서 주로 일을 했는데 이젠 정기적인 일손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그런 용도로 사용하려고 집을 짓고 있습니다."

그는 과일 농사를 마라톤에 비유했다. 한 해 농사 잘 지었다고 성공한 게 아니며, 그런 만큼 한 해 농사를 잘 못 지어도 주저앉는 것도 아니란다. 마라톤처럼 꾸준히 농사지으면 가격변동에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귀농하면서 인생 계획을 60세에 맞췄습니다. 그때까지 온 정성을 쏟아 사과농사를 할 생각입니다. 60세 이후엔 편안하게 농사를 지어야죠. 한 1000평 정도.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문화적인 생활도 누려보고…."

철현 씨는 새로 마련한 1000평이 그런 의미라고 했다. 그곳엔 4년생 사과나무가 자란다.

"어린 사과나무일수록 사과의 아삭함이 강하고 수령이 오래되면 부드러운 맛이 납니다. 맛이 연해지죠. 보통 7~8년차에서 수확이 가장 많은데 그보다는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열리는 게 다릅니다. 20년 된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많이 달리기도 합니다. 사람도 꾸준히 건강관리를 하면 젊어지듯 사과나무도 똑같습니다. 10여 년이 지난 뒤에도 저도 사과나무도 젊음을 유지하며 이곳에서 건강하게 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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