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평가절하된 '우리 미술'재인식부터

경남에서 전통 미술을 살리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옻칠 미술과 민화 분야에서 그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이지만, 낮게 평가돼 단절되기도 했던 이들 미술을 널리 알리고자 애쓰는 단체가 늘고 있다. 이들은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오히려 높게 평가하고 주목하는 옻칠과 민화의 의미를 제대로 전하고자 한다. 통영옻칠미술관, 밀양 바램연구소, 소천민화연구소 등이 그렇다.

◇옻칠 전통 잇는 노력 = 통영 용남면에 자리 잡은 통영옻칠미술관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미술관을 설립한 김성수(81) 관장은 지난 1951년 도립 경상남도 나전칠기기술원 양성소 1회를 졸업한 후 나전칠 공예에 입문했다. 그는 한국전쟁 중에 한국 전통 문화를 살리고자 만들어졌던 양성소에서 미술을 배우고 나서 삶이 바뀌었다. 옻칠의 세계에 매료돼, 한동안 단절됐던 옻칠을 제대로 이어가고자 하는 일을 계속해왔다. 경남에 사립미술관 1호로 통영옻칠미술관을 개관했다.

김 관장은 "옻칠이 버려진 낙후된 문화라는 인식이 크다. 또, 옻칠을 그저 나전칠기로만 생각하는 이도 많다. 옻칠은 옻나무에서 채취한 수액을 여과, 정제 가공해 도료로 사용하는데, 나전칠기뿐만 아니라 장신구, 회화 등의 입체, 평면 미술에 다양하게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김성수 통영옻칠미술관 관장이 1994년 제작한 옻칠 귀중품 함.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옻칠 유물은 기원전 2세기 창원시 의창구 다호리 유적에서도 발굴됐다. 조선시대에는 이순신 장군이 통영에서 12공방 중 상하칠방에서 나전칠기를 생산하게 하면서 통영이 나전칠기를 생산하는 본고장으로 널리 알려졌다.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 경판에도 옻칠이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전쟁 이후 가난으로 천연 도료인 옻칠보다 값싼 합성 도료가 인기를 끌면서 옻칠은 설 자리를 잃어갔다.

하지만 방수, 방충, 절연, 방부 등의 효과가 큰 전통 옻칠을 이용한 생활 공예품이나 예술 작품을 만드는 노력은 이어졌다.

통영옻칠미술관은 10년간 옻칠을 알리고자 전시 활동 등을 해왔고, 올해 8월에는 옻칠을 재료로 예술품을 생산하는 대표적인 나라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4개국이 참여하는 '2016 국제현대옻칠아트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한국은 '옻칠', 중국은 '대칠', 일본은 '우루시', 베트남은 '산마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재료를 이용한 예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통영옻칠미술관 김성수 관장.
통영옻칠미술관 외관.

김 관장은 "지난 2002년 미국에서 우리 전통문화인 옻칠을 알리고자 전시회를 열었다. 이때 미국인이 천연 도장 도료인 옻칠을 합성칠인 '래커(Lacquer)'로 낮게 인식하는 것을 보고 우리 고유 명사인 '옻칠(Ottchil)' 단어를 썼다. 중국, 일본 등도 마찬가지로 고유명사를 사용해 정체성을 알린다. 지금까지 65년간 귀한 옻칠을 알리고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미술관까지 열었다. 한국에서 옻칠 꽃을 피우고자 부단한 노력을 이어갈 것이다"라고 전했다.

김성수 관장의 '웅비'
김성수 관장의 '동행-2'

◇민화 우수성 알리는 이들도 늘어 = 옻칠과 마찬가지로 민화도 우수성을 알리고자 하는 움직임이 많다.

지난 5월 창원대 한국화 전공자들이 밀양시 초동면에 '바램연구소'를 설립했다. 이들은 연구소를 설립하기 전 2004년부터 바램연구회를 꾸려서 기반을 닦았다. 바램연구회는 한국 전통 회화 중 조선시대 실용화인 민화를 연구하는 단체로, 창원대 한국화 전공 대학원생들로 구성됐다. 강바램(63) 창원대 미술학과 교수가 연구회 회장을 맡아 실용화(민화) 알리기, 우리 문화 지키기, 일자리 창출 등을 목표로 활동했고, 연구소에서 이러한 활동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바램연구소 이사장인 강 교수는 연구소 활동을 대대적으로 알리고자 연구소를 구상하면서 지난 2009년 이름도 '바램'으로 개명했다고 했다. '바램'은 '(빛이)바래다'에서 따온 말로, 한국 전통을 뜻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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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램연구소 강바램 창원대 교수. /우귀화 기자

강 교수는 "일본, 프랑스 등에서 10년 넘게 공부하고, 창작 활동을 하면서 우리 전통 미술에 더욱 관심을 두게 됐다. 조선시대 서민들의 회화 작품을 일본인들이 '민화'라고 부르면서, 저급하다는 인식이 크다. 이름부터 조선시대 실용화로 바꿔서 불러야 한다. 워크숍, 포럼, 세미나 등을 거쳐서 조선시대 실용화의 우수성을 알리고자 한다. 민의 예술을 되살리면서, 상품화도 할 계획이다"라고 전했다.

손유경(47) 대진대 문화예술 최고위 과정 주임교수도 본인의 호를 딴 소천민화연구소를 창원에서 지난 2006년부터 운영하면서 민화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다.

5월 밀양시 초동면에 문을 연 바램연구소.

손 교수는 "민화는 고유한 민족성의 발현으로 나타난 그림이다. 조선시대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라며 "조선시대에 한정해서 살펴보면, 정월 새벽 궁중세화가 벽에 붙기 시작하면 일반 화가들이 줄을 지어 그 위에 종이를 덧대어 채본을 그렸다. 민화의 채본 사용으로 예술적인 부분이 격하되기도 한다. 하지만, 호작도(까치와 호랑이) 등의 작품을 보면 피카소의 작품에서 사용된 다시각적 관점이 적용돼 있을 정도로 우수하다. 최근에는 창작 민화 작품도 늘면서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민화 '호작도'. /소천민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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