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비호·두둔하는 무리 판쳐…특권층만을 위한 정책 펴는 정부

고위 공직자들의 잇단 망언(妄言)이 논란이 되고 있다. 여론은 들끓고 민심은 분노하고 있다. 그러나 속수무책이다. 응징을 하자니 마땅한 법이 없고, 두고 보자니 속에 천불이 날 지경이다. 게다가 한 개인의 일탈로만 볼 수도 없어 답답할 따름이다.

1953년 10월 6일. 도쿄 일본 외무성에서 제3차 한일회담이 열렸다. 평화선 문제, 재일교포의 강제퇴거 문제 등으로 회담이 결렬된 지 6개월 만이었다. 주 의제는 재산청구권 문제. 일본 측 수석대표 구보타(久保田貫一)와 한국 측 김용식 수석대표가 악수를 교환한 후 회담이 시작됐다. 재산청구권 문제를 두고 양측이 공방을 벌이던 중 구보타가 돌연 목소리를 높이고 나섰다.

"일본은 산림녹화, 철도건설, 토지개량 등 36년 동안 한국인민에게 많은 이익을 주었다. 한국이 36년 피해보상을 요구한다면 우리는 한국에 남겨두고 온 일본의 재산반환을 요구하겠다."

소위 '구보타 망언'이다. 앞서 1961년 제1차 한일회담 직전 당시 요시다(吉田茂) 일본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이민족인 소수민족은 뱃속의 벌레로서 일본이 이것을 갖지 않게 하는 것이 한일회담의 목적"이라며 한국인을 '뱃속의 벌레'에 비유했다. 이로부터 시작된 일본 정치권의 대한(對韓) 망언은 50차례가 넘는다.

비단 정치권만이 아니다. '새역모 교과서' 집필자 가운데 한 사람인 가쿠슈인(學習院)대학의 사카모토(坂本多加雄) 교수는 2001년 4월 우익잡지 <세이론(正論)>에 기고한 글을 통해 "위안부 역사를 기술하는 것은 화장실 구조에 관한 역사를 쓰는 것과 마찬로 교과서에 실을 만한 가치가 없다"는 망발을 늘어놓았다. 이는 2차 대전 당시 일본군 병사들이 위안소를 '공중화장실'이라고 불렀던 사실을 연상시킨다.

비난을 퍼부을 대상은 비단 이들만이 아니다. 어쩌면 두 손가락으로 우리의 눈을 찔러야 할 판인지도 모른다. 뉴라이트 계열의 자유시민연대 공동대표를 지낸 한승조 전 고려대 명예교수는 <세이론> 2005년 4월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실었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 지배는 오히려 매우 다행스런 일이며, 원망하기보다는 오히려 축복해야 하며 일본인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또 일본 통치 35년간 일본에 저항하지 않고 협력하는 등 친일행위를 했다고 꾸짖거나 규탄, 죄인 취급을 해야 할 이유는 없다."

위안부 논쟁을 촉발한 세종대 박유하 교수의 책 <제국의 위안부>는 '결함투성이'임에도 일본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호평을 받았다. 지난해 한일 양국정부의 졸속적인 '위안부 협상'을 계기로 이 책은 더 주목을 끌고 있는데 급기야 국내외에서 종합 비판서가 출간되는 등 학계의 위안부 논쟁이 4라운드에 접어들었다.

재일교포 3세인 메이지가쿠인대학 정영환 교수는 최근에 펴낸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를 통해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군 '위안부' 제도에 대한 일본의 국가 책임을 최소화하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자의적으로 왜곡·전유하고 악용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전후보상' 실상을 과대평가했다고 비판했다. '학문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위안부 할머니들이 또다시 농락당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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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책연구기관의 간부가 회식 자리에서 '천황폐하 만세'를 삼창한 데 이어 교육부 고위 간부가 "민중은 개·돼지" 운운하는 망언을 쏟아내 온 나라가 죽 끓듯 하고 있다. 이들의 망언도 망언이지만 이들의 망언을 배태시킨 우리 사회의 현실이 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친일을 공공연히 비호·두둔하는 무리가 판치고 '1%'의 특권층만을 위한 정책을 펴는 정부하에서는 제2, 제3의 이정호, 나향욱은 언제든지 또 나타날 것이다.

여론의 질타에도 이정호 센터장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향욱 정책기획관은 동석했던 기자들이 해명 기회를 주었으나 끝내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의 망동은 '한순간의 실수'라기보다는 '확신범' 차원 같다. 그렇다면 대기발령이 아니라 파면이 맞다. 마땅히 일벌백계로 징치(懲治)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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