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를 추구하는 게 삶에서 가장 중요하죠"

경남대학교 법정대학 5층에는 학생들에게 '진벅스'라 불리는 교수 연구실이 있다. 연구실에서 은은하게 세어 나오는 커피 향은 5층 전체를 물들인다. 학생들은 드립 커피와 각자 싸온 도시락을 펼쳐놓고 마치 카페에 온 듯 수다를 떤다. 그곳엔 학생들과 친구처럼 이야기하는 '진벅스'의 주인이 있다. 바로 경남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진홍근(43) 교수다.

학생들과 어울리는 모습은 교수님이 아닌 나이가 '꽤' 많은 복학생 형 같아 보인다. 그를 만나기 위해 소문이 자자한 '진벅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렸을 때부터 꿈꿨던 '광고'

"어렸을 땐 굉장히 개구쟁이였습니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것을 하고 싶어 하는 그런 아이였죠. 예를 들면 초등학생 때 학교에 신문이 없었어요. 그래서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친구들을 모아 교내 신문을 만들기도 했었죠."

중·고교를 무난히 졸업한 후 진 교수는 대학에 진학했다. 학생회 활동과 데모를 하느라 대학생활은 눈코 뜰 새 없이 지나갔다.

"그 활동들이 제 삶에 방향을 제시해 주었죠. 지금도 그때 했던 생각들을 나름대로 실천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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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홍근 경남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박성훈 기자

사실 진 교수는 경제학과 출신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신문방송학과에서 광고학을 강의하게 되었을까?

"항상 '남들이 몰랐던 새로운 걸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게 '광고'라는 생각은 못 했어요. 제가 다닐 때만 해도 광고학과나 신문방송학과는 없었거든요. 숭실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지만 광고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중앙대학교 광고학 석사과정에 지원했죠. 그 당시 광고 전공은 중앙대가 제일 유명했거든요. 그리고 국민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았습니다."

진 교수는 앞서 여러 광고 회사에 재직했었다. 마지막 회사에서는 임원이란 위치까지 올랐지만 교수라는 직업을 좇아 경남대학교로 내려왔다.

"회사는 저랑 안 맞는 거 같았어요. 사람들과 편안한 관계를 가지고 싶은데 철저한 비즈니스를 해야만 하는 게 회사잖아요. 그때가 박사학위를 따고 몇몇 대학에 강사로서 출강을 나가던 시기였는데 때마침 '업무볼 때와 강의할 때 표정이 다르다'고 누가 그러더라고요. 그러다 우연히 사진에 찍힌 제 모습을 봤는데 정말 극명하게 달랐습니다. 강의할 때는 너무나 행복한 표정이었지만 회사에서는 괴롭고 힘들어 보였거든요. 그때 교수가 되어야겠다고 결심을 했죠."

도시락과 드립 커피 그리고 노란 '포스트잇'

진 교수는 점심시간이 되면 학생들과 자신의 연구실에서 각자 싸온 도시락을 먹는다고 한다. 그 모습이 머릿속에서 선뜻 그려지지 않았다.

"보통 교수 연구실이라고 하면 어렵고 딱딱한 이미지를 생각하잖아요. 학생들에게서 그걸 깨고 싶었죠. 그리고 또 학교 전체적으로 장기 결석을 하는 학생들이 문제가 됐었어요. 이런 친구들을 미연에 방지하고 그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는 기회를 만들 수 없을까 하는 즉흥적인 아이디어에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학과 창설 이후 처음 시도해보는 제도라 설렘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두렵기도 했다고 한다.

"처음 시도하는 제도라 학생들에게 피드백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반강제적으로 약속을 잡았죠.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학과 전체를 대상으로 시행하게 됐습니다. 이 제도를 통해서 학생 개개인의 고민이나 학업, 경제적 어려움 등을 자세히 알게 됐어요. 이제는 학생들이 스스럼없이 연구실로 찾아옵니다. 또 학교생활 중 문제가 생기면

예전처럼 혼자 끙끙 앓는 것이 아니라 저를 찾아와 자문을 구하기도 하죠. 저는 이 제도가 저희 학과를 운영하는 '엔진'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시락에 이어 그는 직접 드립 커피를 나눠주고 있었다. 어김없이 기자에게도 커피를 권했다. 확실히 시중에 파는 커피와는 그 맛이 달랐다. 이 커피를 마시기 위해 온 학생들로 연구실은 항상 '문전성시'를 이룬다.

"커피는 도시락과는 좀 다른 차원이에요. 사실 서울에 살 때는 드립 커피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마산에 와서 드립 커피를 알게 됐고 커피 맛이 이렇게 다양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이 좋은 걸 나 혼자 먹긴 아깝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연구실을 찾는 학생들에게 꼭 커피를 내려주고 있죠. 몇 년 이렇게 하니까 졸업생 중에 첫 월급을 타서 커피를 많이 얻어먹었다며 원두를 사서 오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그 마음이 참 애틋하더라고요."

진 교수의 강의는 흔히 생각하는 방식과는 다른 형태로 진행된다. 학생들은 노란 포스트잇을 들고 교수에게 질문을 하거나 역으로 질문에 답을 한다. 질문이나 답을 한 학생은 플러스 점수가 부여된다. 또 혼자서 10분 내외의 자유주제를 준비해 발표하기도 한다.

"강의 방식에는 저만의 철학이 있습니다. 저는 인간의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질 때 그 시발점은 '말'이라고 생각해요. 생각만 해서는 안 돼요. 말로 뱉어야 행동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지죠. 특히 창의성을 요하는 학문은 더욱 그래요. 절대 정답이 없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말을 해선 안 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학창시절을 보냈어요. 결국 대학생이 되어서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죠. 그래서 학생들의 행동을 이끌어 내기 위한 출발 선상에서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확실한 철학 때문일까? 진 교수가 신문방송학과에 온 후 광고 분야의 취업 인원이 꾸준히 증가했다.

"산업구조가 바뀌다 보니 광고회사나 홍보회사의 수요가 좋아져 학생들이 그쪽으로 많이 지원을 해서 그렇지 저 때문은 아닐 겁니다.(웃음) 사실 저는 항상 '창의성'을 강조해요. 광고회사에서 신입사원 면접을 볼 때도 그 점을 강조했습니다. 지적 수준을 평가하는 것이 아닌 광고를 하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얼마나 창의성이 있느냐는 것에 초점을 맞췄죠. 창의성은 모든 업무의 '시발점'이거든요. 그 두 개가 잘 융합이 되다 보니 여러 광고회사에서도 우리 학생들을 원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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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홍근 경남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박성훈 기자

광고란 결국엔 '진정성'이다

진홍근 교수는 대한민국 옥외 광고계에선 손에 꼽을 만큼 유명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가지고 있는 광고에 대한 철학이 궁금해졌다.

"저는 광고란 '진정성'이라고 생각해요. 여러 가지 전략이 존재하지만 결국 소비자로 하여금 이 제품이 꼭 필요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은 결국 '진정성'입니다. 최근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그것을 절실히 보여주죠. 기업은 소비자를 우롱했고 광고가 큰 일조를 했어요. 광고는 소비자를 속이는 게 아니라 설득을 해야 합니다. 설득을 위해선 결국엔 'Back to the basic'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 기본이 바로 '진정성'이라는 거죠. 광고와 기업이 합심해서 '진정성'을 보여야만 고객은 그 제품을 받아들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산업구조의 변화로 마케팅, 광고홍보 분야에 몸담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진 교수는 광고 일을 하려면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봐야 한다고 충고했다.

"광고를 업으로 삼고 싶다면 많은 경험을 해봐야 합니다. 아이디어의 절반은 경험에서 나오거든요. 물론 데이터나 자료에 의해서 만들어질 수도 있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자신이 경험한 것을 묘사하는 것과는 차원이 틀려요. 그리고 항상 관찰을 열심히 하세요. 끊임없이 관찰하고 탐구해야죠. 결국 이 두 개는 이어져 있어요. 관찰은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겁니다. 주의 깊게 살피다 보면 경험이 쌓이죠. 이런 경험을 통해 좋은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진 교수에게 현재 화두가 되고 있는 '지방대학 위기론'에 대한 견해를 물어봤다. 현재 62만 명인 고졸자는 2023년 39만 명으로 급감한다고 한다. 2023년에 고졸자 전원이 대학에 진학해도 16만 명이 모자라는 실정이다. 특히 지방대학은 학생도 교수도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이 물음에 진 교수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리고 이내 입을 열었다.

"정말 큰 위기입니다. 지금도 인구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습니다. 특히 수도권에는 70~80%의 역량이 집중돼 있어요. 20~30%의 시민은 지방에 살고 있지만 그들 역시 절반은 끊임없이 수도권 진출을 꿈꾸죠. 미래에 16만 명이 모자란다고 하지만 여전히 지방대학 인원이 줄어들지 수도권 대학은 그대로 일 겁니다. 그래서 전 지방대학이 지방의 산업이나 문화를 일으키는 중심적인 요소가 되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것도 우리나라의 지배적, 정치적 구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은 힘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현실에 학생들은 '청년실업'이란 덫에 허덕이고 있다. 학생들에게 교수가 아닌 인생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을까?

"물론 있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남과 비교하는 생각에서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7포'니 '9포'니 하는 것은 남보다 수입이 적기 때문에 그것을 얻기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산다는 겁니다. 사회가 전반적으로 그걸 조장하고 키워왔죠. 인생은 절대 마라톤이 아닙니다. 출발점도 없고 종착점도 없습니다. 사람이 5000만 명이면 5000만 개의 길이 있는 거고 그 길이 다 보장되는 삶이 좋은 사회가 아닐까요?"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사람'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많은 학생들이 연구실을 방문했다. 저마다의 고민과 걱정거리로 문을 두드리는 학생들을 호탕한 웃음으로 반겼다. 그런 진 교수는 어떤 교수로 기억되고 싶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사람? '좋았다'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 교수님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면 족합니다. 조금만 더 욕심을 부리면 '재밌었다' 정도로 생각해주면 좋겠네요."

개구쟁이 같은 모습이지만 그 내면에는 학생들을 생각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런 그가 이루고 싶은 꿈이 궁금해졌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요. 교수로서 그것을 이루기 위한 작은 밑거름이 될 생각입니다. 제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성장해 사회의 중심이 되고 나와 얘기했던 생각들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이 사회가 조금이라도 변화되지 않을까요?"

그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 어떠한 일에 있어서도 항상 '재미'있어야 한다는 점을 얘기했다.

"저는 무슨 일에도 '재미'를 중시해요. 재미가 없으면 모든 것은 '의무'가 되거든요. 학생들도 공부가 재미있어야지 공부를 해요. 재미 다음 단계는 보람이죠. 그다음 단계는 기쁨이고. 보람과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재미가 있어야죠. 헌데 스스로가 너무 재미있는 일이 있는데 그것을 업으로 삼지 못한다? 왜? 실패하면 완전히 나자빠지니까. 요즘 젊은 친구들이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입니다."  

숨을 고르고 이내 말을 덧붙였다.

"만약 중간에 실패하면 재기할 수 없는 사회구조 때문에. 정말 우울한 사회죠. 전 그래서 싸이를 존경합니다. 자신이 정말 원하는 일을 꾸준히 하면서 살고 있잖아요. 정말 자신이 재밌고 하고 싶은 일이라면 일단 한번 가보는 거죠. 싸이를 꿈꿨지만 안 되더라도 그 경력으로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훌륭한 재목이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진로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거든요. 고로 재미를 추구하는 삶이 대단한 삶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꼭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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