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관계망 유지하며 각자 삶 사는 방식…틀 얽매이는 것보다 행복한 선택 아닐까

올해 70세인 부모님은 하루가 멀다하고 늘 티격태격한다. 자식들도 다 독립하고 두 분이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별것도 아닌 것에 다투는 일이 잦다. 나는 그것이 정(情)이라고 느끼지만 당사자는 다른 것 같다. 예전에 많이 힘들어하는 엄마에게 이혼을 권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은 여전히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고 여전히 스트레스도 받고 있다.

최근들어 '해혼(解婚)', '졸혼(卒婚)'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결혼(結婚)이 부부의 연(緣)을 맺어주는 것이라면 '해혼'은 혼인관계를 푸는 것이다. 갈등과 불화로 부부가 갈라서는 것이 아니라 결혼 역시 하나의 과정으로 보고 그것을 완료하고 자유로워진다는 뜻의 '해혼'은 인도에서는 낯설지 않은 문화라고 한다. 같은 현상으로 최근 일본에는 '졸혼'이 늘고 있다. '졸혼'은 부부가 이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 일정기간 떨어져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부부는 시간을 정해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각자의 삶을 사는 것이다. 결혼의 틀은 유지하되 각자 자유롭게 사는 방식인 셈이다.

사실 부부나 가족은 너무 가깝기에 서로에 대한 기대도 크고 그래서 실망도 크고, 그 과정에서 매우 일상적으로 상처를 주고받는다. 특히, 퇴직해 갑자기 생활환경이 바뀌고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서로 불편해지고 없던 갈등이 생겨난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 황혼 이혼 비율은 지난 2012년 신혼부부 이혼 비율을 추월하였으며, 2010년 23.8%에서 2014년 29.9%로 매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그 이유는 평균 수명이 연장되면서 뒤늦게라도 '내 인생을 살겠다'는 노년 부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20~30년 정도였던 결혼생활은 이제 길게는 70년까지 늘어나고 있다. 2013년 기준 60세를 기점으로 남성은 22년, 여성은 27년을 더 살게 되고 결국 적어도 22년을 부부 둘이서 지내야 한다. 그러니 불행한 가정을 유지하기보다 행복을 찾아가는 황혼이혼은 늘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졸혼'이 어쩌면 황혼이혼의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우리가 '졸혼'이라고 명명하지 않았을 뿐 현실적으로 '졸혼'의 형태를 유지하는 부부는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남편은 농촌에, 아내는 도시에 따로 거주하면서 평소 각자 생활을 하다 집안에 대소사가 있을 때만 보는 부부도 있고 손자 양육을 핑계로 아내가 자식 집에서 거주하는 부부, 한 집에 살아도 서로 독립적으로 지내는 소극적인 '졸혼'도 적지 않다.

물론 '졸혼'에 대한 비판도 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함께 살면서 서로의 생활에 깊숙이 개입하는 기존의 결혼에서 벗어나 자녀가 독립한 뒤 한 달에 한두 번 정기적으로 만나 안부를 묻는 '졸혼'은 가족이라는 관계망을 유지한 채 따로 각자의 삶을 향유하는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우리 부모님처럼 이혼을 하기에는 그간의 정이 무섭고, 자식들도 있고, 이혼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 여전히 신경 쓰인다면 나는 '졸혼'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또 그렇게 떨어져 지내다가 서로 애틋한 감정이 생길 수도 있다. 얼마 전에 끝난 <디어 마이 프렌즈>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신구와 나문희의 삶이 '졸혼'의 한 방식이라고 본다면, 그렇게 떨어져 지내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오랜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결국 이혼이라는 극단적 선택에 앞서 부부 갈등을 해결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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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틀에 얽매여 억지로 결혼제도를 유지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30~40년 살면서 결혼의무를 다한 부부가 각자 따로 살며 서로 친구처럼 지켜보는 것도 좋은 관계일 수 있다. 부부가 좋은 감정이 유지된 채, 서로의 행복을 찾기 위해 전통적 개념의 결혼을 살짝 내려놓는 '졸혼'을 나는 우리 부모님께 권해드리고 싶다. 부모 세대들도 자신을 둘러싼 수만 가지의 규범과 의무에서 벗어나 이제는 자기 삶을 찾아 행복하게 살아봐도 되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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