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장님] 통영시 산양읍 가는개마을 신성안 이장

통영시 산양읍 가는개(세포마을)마을 신성안(69) 이장은 2000년대 초 농사를 짓고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주민은 퇴직한 그를 공직 경험이 있고 젊다며 1년을 설득해 이장으로 추대했다. 10년이 더 흐른 지금, 마을 선택은 탁월했다.

신 이장은 이장이 된 후 가장 먼저 마을 청소를 했다. 물론 처음에는 혼자였다. 하지만 얼마 뒤 그를 따라 빗자루를 든 이가 하나둘 늘어났고, 청소하는 날이면 많은 주민이 밖으로 나왔다. 2000평 마을 땅에 꾸지뽕과 매실을 심어 마을 수입원으로 만들자는 논의도 자연스레 뒤따랐다.

가는개마을은 숨겨진 비경이란 것 외에 큰 특징이 있는데, 주민들이 대극장에서 직접 연극을 하는 배우란 점이 그렇고, 점심밥을 대부분 마을회관에서 함께 먹으면서 공동체를 실현하는 게 그렇다. 주민 중 대부분이 시인이고 많은 이들은 합창에 빠져 있다.

그가 이장이 되고 얼마 뒤 한 공무원이 '농어촌체험마을' 신청을 권유하자 그는 밤낮을 고생해 신청 서류를 완료하고 체험마을이 되게 했다.

통영시 산양읍 가는개마을 신성안 이장. 신 이장은 늘 공동체가 살아 있는 마을을 꿈꾼다. /허동정 기자

이어 '색깔과 이야기가 있는 공동체문화마을' 지정도 일궈냈다. 특히 이 사업을 통영 연극단체 극단 벅수골과 함께하면서 '문화 콘텐츠 발굴' 목적에 따라 주민들은 느닷없이 연극배우의 길을 걷게 된다.

농사짓고 고기 잡던 주민들이 연극을 한다는 것은 황당한 것이었다. 신 이장은 먼저 친인척에게 부탁 또는 강요(?)해 배우를 시켰다. 나머지 주민을 설득하는 데도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주민은 그를 따랐고 그도 주민을 믿었다.

'팔자에도 없는 배우가 된 주민들'은 밤낮 걱정하며 대사를 외거나 연기 연습을 했다.

공연한 연극 〈쟁이마을 할미요〉는 관리들의 수탈에 맞서 임금께 꽹과리를 울려 고발한 마을 '영세불망비' 전설을 극화했다. 임금 역을 맡은 사람이 마을 75세 노인이었고 주인공 쟁이 할미는 마을 부녀회장이었다. 신 이장은 할미의 남편으로, 그의 말마따나 "반 주연"으로 출연했다.

2012년 통영국제음악제에서는 주행사장이기도 했던 통영시민문화회관 대강당에 서는 일도 있었다.

다행히 주민은 '연습보다 실전'에 더 강한 모습을 보이며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 냈다. 이에 힘 받은 이들은 지난해까지 두 번 더 다른 연극을 선보이며 마을 이야기를 다시 온몸으로 풀어냈다.

신 이장과 주민이 써 내려간 추억과 변화는 무대뿐만이 아니었다. 가는개마을은 옛 통영군과 충무시의 경계에 있고, 옹기장이·대장장이·삿갓장이·소반장이·기와장이·챙이장이·소달구장이 등 지역에서 온갖 장이가 모조리 모여 살던 가내수공업 단지다.

주민들은 이 '장이'를 주제로 마을 노래를 만들고 장이들의 삶과 이야기에 대해 직접 시를 쓰고 글을 써서 곳곳에 걸었다. 시집 〈가는개마을의 노래〉를 출간하고 단체로 시인 데뷔까지 했다.

TV 보고 화투치던 마을회관은 달라졌고, 주민은 삶을 재미있어했다. 젊은이들이 돌아와 갓난아이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라며 마을 입구에 솟대를 세우고 육지 속으로 깊고 가늘게 들어온 가는개 바다가 보이는 곳에 항아리 거리를 만드는 성과도 거뒀다.

이런 변화를 인정한 농림축산식품부는 가는개마을을 '전국농촌현장포럼' 전국 우수마을 평가에서 1위로 선정했다.

지난 4일 함께 점심밥을 먹고자 마을회관으로 주민 30명이 몰렸다.

식사를 한 주민은 5일 경남도청에서 열리는 '행복 마을 만들기 콘테스트'를 위해 마을 노래 합창 연습을 오후 늦게까지 이어갔다.

한 부녀회원은 "우리 마을은 진짜 소개할 만한 공동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마을 주민들은 매일 대부분이 회관에서 점심을 먹고 함께 노래도 부른다"고 했다.

신 이장 취임 후 마을은 10년 동안 장수마을 선정, 금연마을 선정, 창조농촌포럼 개최, 공동체문화마을 등으로 지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마을의 새 전성기가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주민은 "신 이장이 많은 일을 했다. 아주 훌륭하게 일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럼에도 신 이장은 여전히 이루고픈 꿈이 많다.

가는개마을은 공동생활홈을 만들어 노인들 무료급식과 취미활동을 지원하는 등 공동체로의 큰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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