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목수 세상에서 살아남기] (5) 협치란

자영업을 시작한 지 4년째 접어들면서 나름 생각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끝이 보일까 했던 캄캄했던 긴 터널도 지나 "이제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호의호식하지는 못해도 그냥 이렇게 살다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사람일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상상하지도 못한 난관이, 마음 쓰지 않던 부분에서 뜻하지 않은 균열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인생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이라는 얘기도 하더군요.

아무튼, 여유가 생기니까 직장 다니던 때와는 달리 여러 가지로 '엉뚱한' 생각들이 떠올라 재미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눈치 볼 일 없이 사는 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구나"하기도 합니다. 이번에도 제 생활 얘기보다는 또 한 번 삐딱선을 타보고 싶습니다. 직장에서도, 친구와의 술자리에서도 하지 말라는 정치(政治) 얘기입니다. 긴장하지 마세요. 그저 그동안 막연히 느껴온 푸념 같은 것들입니다.

▷협치(協治)는 '협력통치(統治)'인가

20대 국회를 여는 4·13 국회의원선거 결과 더불어민주당(123석)과 새누리당(122석), 국민의당(38석)의 정립(鼎立) 형태가 만들어졌죠. 세 발 달린 솥 정(鼎). 가장 안정적인 다리 형태를 말하는 한자더군요. 현행 국회법에 의하면 특정 2개 당만의 합의만으로는, 법안 처리가 가능한 의석 수(180석)에는 미치지 못하는 절묘한 결과를 낸 것이죠. 결국, 3당 간 협력은 더욱 강조됐고, 그래서 협치라는 말은 '조정과 타협의 정치'를 뜻하는 '협력정치'의 줄임말로 관심을 끌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요? 성급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협력정치'는 말뿐이고 실상은 '협력통치'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것은 의심 많은 제 성격 때문일까요.

협치라는 말이 가장 먼저 들먹여진 것은 5·18 광주민주항쟁 기념일을 앞둔 지난달 13일 박근혜 대통령과 3당 원내대표·정책위의장의 회동에서 야당 측이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게 해야 한다고 거듭 요청한 것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집니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국론 분열이 생기지 않는 좋은 방안을 마련하라고 (보훈처에) 지시하겠다"고 답했지만 결국 제창은 이뤄지지 않았고, 보훈처장은 기념식에서 유족들에 의해 쫓겨나는 모습을 국민이 모두 보았습니다. 제창은 3당 원내대표와 정책위 의장들이 협치와 소통의 결과로 제안된 것인데 무산됐다는 야당의 비판을 일으켰죠.

또 지난달 30일에는 아직 인양조차 되지 않았고, 9명의 미수습자 가족들은 여전히 팽목항에서 돌아오지 못한 가족의 귀환을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는 상태에서 세월호조사특별법도 시한이 만료됐습니다. 몇몇 국회의원의 노력에도 정부·여당은 물론이고 입으로만 특별법 시한 연장을 들먹이던 야당들조차 뜨뜻미지근한 모습으로 실망을 주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광주민주항쟁이나 세월호참사는 무고한 국민의 엄청난 인명피해가 있었습니다. 유가족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가슴에 담고 힘겨운 삶을 이어가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잠수 후유증에 시달리다 지난달 17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세월호 수색 민간 잠수사가 지난해 9월 15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했던 말을 기억하십니까? "어떤 재난에도 국민을 부르지 마십시오. 정부가 알아서 하셔야 됩니다." 세월호참사의 수습에 무심했던 정부를 원망하던 그 모습을.

어떤 이유에서든 유가족을 비롯한 국민의 간절한 요구에도, 외면하는 정부·여당이나 어물쩍 넘어가는 야당 모두가 20대 국회 개원을 맞아 큰 기대를 한 국민을 실망시키기는 마찬가지라고 생각 듭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지도 못하고, 상처를 치료하지도 못하는 정치. 지난 2001년 발생해 30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뉴욕 세계무역센터 9·11테러 희생자 가운데 피해자 구조활동을 벌이다 사망한 뉴욕시 소방관과 경찰관이 500명이 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침몰하던 세월호 주변에서 우리 해양경찰은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 다들 알지 않습니까?

지금 정치권이 말하는 협치가 정말 '협력정치'가 맞나요. '협력통치'의 줄임말이 아닌가요.

▷사실상 사유화인 민영화 … 정치의 말장난

정확하지는 않지만 80년대 후반 주식시장이 새롭게 재테크의 수단으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그런 분위기에서 국영기업이었던 포항제철이 민영화라는 이름으로 국민주를 공모했습니다. 그때부터 민영화라는 용어는 국민에게 막연하게 '긍정적인 용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실제로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만 인천공항도, 수서발 KTX도 '민영화'라는 용어로 민간매각이 추진되기도 했습니다. 인천공항을, 수서발 KTX를 국민주 공모로 민영화하려 했을까요. 실제로 추진되지 않았으니 알 도리가 없지만 아마도 거대자본에 넘기려 했다는 의심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추진됐다면 '민영화'가 아닌 '사영화' 또는 '사유화'라는 말이 정확한 것이겠죠.

최근에는 전기와 수도를 '단계적 민간 개방'이니 '공공기관 기능 조정'이니 하는 '아리송한 용어'로 민영화, 아니 사유화를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을 언론을 통해 듣습니다. 지난 2000년 세계은행(IBRD)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해 미국 등 다국적기업에 수도를 팔았던 남미 볼리비아. 매각 1주일 만에 물값이 4배로 올랐고, 수돗물을 마시지 못한 국민의 저항을 불러일으켜 대통령이 하야하고, 물은 사유화할 수 없다는 법을 새로 만들었던 일이 있었더군요. 우리나라에도 다국적 물기업이 벌써 들어와 있다고 합니다.

이런 아리송한 용어의 틀 속에 담긴 '무서운 얘기들'을 정치권에서는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습니다. 언론도 마찬가지이고요. 이런 것도 '협치'인가요?

▷이재명 성남시장 "공직자는 시민의 머슴"

'지방재정 개편안' 저지를 위해 지난달 7일부터 11일 동안 광화문에서 단식투쟁을 벌인 경기도 성남시 이재명 시장이 단식투쟁 중 격려차 방문한 성남시 중앙지하상가 상인들에게 먼저 큰절을 했다.(위 사진) 면담을 마친 후 상인들이 이 시장에게 절을 하자 이 시장이 함께 맞절을 했다. 이 시장은 "내가 (시민들의)머슴인데 주인(시민)이 머슴에게 큰절 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했다. /이재명 성남시장 페이스북 페이지

지방정부의 자치권을 약화시키는 정부의 '지방재정 개편안' 저지를 위해 지난달 7일부터 11일 동안 광화문에서 단식투쟁을 벌인 경기도 성남시 이재명 시장은 단식투쟁 격려차 방문한 성남시 중앙지하상가 상인들과 맞절을 하는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상인들이 단식장을 방문하자 시장이 감사의 큰절을 올리며 맞았습니다. 면담을 마친 상인들은 단식장을 떠나면서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시장을 향해 단체로 큰절을 하자, 화들짝 놀란 시장도 일어나 맞절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를 지켜본 사람들이 왜 맞절을 하느냐고 묻자 이 시장은 "내가 (시민들의)머슴인데 주인(시민)이 머슴에게 큰절을 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말합니다.

저는 공직자, 즉 공무원의 자세가 이것이라고 봅니다. 대통령부터 미관말직의 9급 공무원까지 모두 공직자입니다. 한자어로 공복(公僕)이라고 하죠. 여기서 복(僕)은 하인, 종, 마부를 뜻한다고 사전에 나옵니다. 영어로는 'public servant'라고 한답니다. 'servant'도 하인이라는 뜻이고요.

요즘 청년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공무원이라고들 합니다. 왜일까요? 왜 자기 자식들이 국민의 종이 되길 바랄까요? 사명감, 봉사의식 때문인가요. 아니면 직업의 안정성과 퇴직 후 연금 등이 이유인가요. 만약 9·11테러 때처럼 가장 위험한 현장에 목숨을 걸고 뛰어들어야 하는 의무를 지닌 사람들이 공무원이라면 스스로, 또는 자기 자식들이 공무원이 되기 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협력정치를 하는지 협력통치를 하는지 모르지만 국회의원도 모두 선출직 공무원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헌법 제7조 1항에는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황원호(창동목공방 대표)

※이 기사는 경남도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주민참여사업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