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그림도 따뜻하게 안아준 '우리 선생님' 칭찬·용기 아낌없이 주던
엄마 기억 속 미술 선생님 훌륭한 은사로 영원히 회자

엄마는 잔뜩 상기된 얼굴이었다. 말투는 평소와 다르게 차분했다. 엄마는 그날 아침 우리 신문 1면에 나온 '진해 출신 고 김주석 화백 일제강점기 친필 수기 공개' 기사를 읽었다고 했다.

엄마는 마산여자중학교를 다니던 학창 시절 김주석 선생에게 미술을 배웠다고 했다.

항상 차분하고 단아했던, 광대뼈가 툭하고 튀어나와 '괴암'이라는 호가 무척이나 어울렸다는 김 선생님. 엄마는 기사를 보고서는 옛 추억에 잠긴 듯했다.

그러니까 1955년생인 우리 엄마는 1970년께 마산여중을 다녔다. 본인 스스로 공부를 잘했다는데, 놀라울 만큼 뛰어난 기억력을 보자면 거짓말은 아닌 듯하다. 그랬던 엄마에게 미술은 꽤나 어려운 과목이었다. 미술에는 원체 소질이 없었던 것 같다.

엄마 기억 속 김 선생님은 독특한 사람이었다. 미술시간에 그림을 설명할 때면 무척이나 열정적이었다고 한다. 한 날 김 선생님은 하얀 도화지에 화분을 그리고는 거기에 거꾸로 뒤집힌 사람 다리를 더했다. 다리에서 잎이 나는 그림이었다. 어느 때는 순수한 점과 선, 면을 그리고 학생들에게 색을 채워넣게끔 했다.

엄마의 마산여중 졸업앨범 속 괴암 김주석 선생 모습. /최환석 기자

김 선생님은 미술 시간 학생들에게 독특한 그림을 그리도록 하면서도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친절하게 설명했다고 한다. 특히 그림에 자신이 없던 엄마에게 김 선생님이 건넨 말은 환갑이 된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된다.

"그림에 자신이 없어 위축된 나한테 선생님이 그림 잘 그린다고 칭찬을 하는 거라. 선생님한테 그림이 자신 없다고 하니까, 그림은 정해진 틀이 없다고 하시더라고. 내 생각을 도화지에 그대로 투영하는 그 자체가 잘 그린 그림이라는 말씀이셨지. 미술 수업과 관련해서 김 선생님한테 받은 칭찬은 내 삶에 처음이라 그래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

독특한 외모에 누구에게나 친절했던 김 선생님이 형무소에 수감됐었고, 일제 헌병에게 고문과 심문을 당했으며, 항일결사단체 결성에 함께 했다는 사실은 엄마에게 꽤 충격이었나 보다.

1927년 진해 출신인 김 선생님은 1943년 1월 경성전기학교 학생들과 함께 항일결사단체 '학우동인회'를 결성했다. 1944년 진해헌병대에 체포됐고 모진 고문을 받은 후 부산형무소에서 수감 생활을 했다. 해방 이후에 엄마와 같은 학생들을 가르치며 46년간 미술교사로 지냈다. 초대 마산미술협회 사무국장 등 미술인 활동에도 참여했던 김 선생님은 지난 1993년 별세했다.

고 김주석 선생. /전점석

엄마는 우리 신문 기사가 아니었다면 그저 좋은 선생님으로만 그를 기억했을 것이라 했다. 먼지 쌓인 마산여중 졸업앨범을 꺼내들고 엄마는 다시 한 번 김 선생님을 떠올렸다.

"기사를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그 선생님이 그렇게 훌륭한 일을 하셨다는 게 믿기지 않더라. 그저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해주고, 미술과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줬던 고마운 선생님인 줄로만 기억했는데…."

괴암 김주석 선생님 친필 수기는 그 자체로 소중한 지역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그를 거쳐간 수많은 학생들에게 김 선생님은 영원히 훌륭한 은사로 회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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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암 김주석 선생의 친필 수기. 항일결사단체 '학우동인회' 주요 계획이 담겨 있다. /전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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