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우해이어보]호사

24개의 다리를 가진 ‘호사’라는 바다 생물은 어떤 물고기일까.

김려의 <우해이어보>는 많은 종류의 물고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김려의 설명을 읽고도 도저히 알 수 없는 물고기가 몇몇 있다. 아마도 김려가 서울 양반이므로 물고기를 잘 몰랐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혹은 어촌 사람들의 설명을 오인했을 수도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고의적으로 사회를 풍자하거나 비꼬려고 그렇게 기술했을 수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호사’라고 하는 물고기이다. 물고기라기보다는 문어나 낙지 혹은 오징어의 일종이다. 설명으로 보아서는 연체동물일 것이 분명한데 다리가 24개라고 하니 도대체 무엇인지 모를 일이다. 그 설명을 보자.

“호사는 24개 다리를 가진 물고기이다. 그 형상으로 반을 접으면 대팔초어(大八梢魚)와 같은데 대팔초어를 세속에서는 문어(文魚)라고 하며 소팔초어(小八稍魚)는 항간에서 낙제(絡蹄)라고 하는 것이 이것이다. 이 물고기는 24개의 다리를 가졌는데 좌우에 각각 12개다. 각 다리에는 점성이 있는 빨판이 24점이 있다. 점(點) 즉 빨판의 앞뒤는 모두 안쪽으로 향한다.

머리는 중앙에 있고 눈은 머리 중앙부의 양옆에 있는데 나아가 다닐 때는 문어와 같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큰 게와 같다. 서서 머리를 들어 올리면 마치 흰 승복을 입은 중과 같고, 선 채로 머리를 숙이면 농가에서 탈곡을 할 때 벼를 때려서 터는 다리 높은 평상 즉 개상과 같다. 이곳 사람들은 이 물고기를 고제(高蹄)라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고족어(高足魚)라고도 부른다. 그 맛은 문어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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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서동진 기자.

어부들의 말로는 이 물고기는 달이 밝을 때 반드시 물 밖으로 나와서 놀러다니는데 모래벌판 언저리나 돌밭에 갈대숲이나 여뀌 무더기 사이를 배회하는 모습이 흡사 승복을 입은 중의 모양이다. 사람을 보면 놀라서 달리는데 그 달아나는 것이 매우 빨라 쫓기 어렵다. 막대로 그것을 긁어서 걸어도 넘어지지 않지만 소고삐로 옭아서 쓸어 당기면서 횡으로 때려치고 밧줄로 다리 아래쪽을 속박하면 똑바로 서지 못하고 땅에 넘어지는데 그 소리가 집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

(중략) 이곳 사람들의 말로는 ‘호사는 부처 같고, 문어(文魚)는 중 같고, 낙지는 사리 같다’고 하니 그 말이 매우 재미있고 우습다. 쇠갈고리로 찔러서 그것을 잡는다. 그러므로 팔초어(八稍魚)를 잡는 사람은 때때로 날것으로 먹을 수도 있고 혹은 삶은 후 포를 떠서 먹을 수도 있고 말린 포를 먹을 수도 있는데 모두 맛이 좋다고 한다. (중략) 다리가 머리 껍질 속 아래에 숨겨져 있어 그 다니는 모습이 엎어놓은 사발이 꿈틀거리며 가는 것 같다. 이 모두가 팔초어의 종류인데 요컨대 이들은 수충(水蟲)과 비슷한 것이므로 어족(魚族)과는 구분해야 한다.”

이러한 설명을 보면 문어나 낙지, 주꾸미나 꼴뚜기, 혹은 오징어나 갑오징어, 한치 등의 종류인데 이들 종류의 다리는 8개나 10개 정도다. 그런데 24개의 다리라고 하면 어떤 것이 있을까. 위의 설명들을 보면 사발을 엎어놓은 모양이고, 일어나 다닐 때는 승복을 입은 중과 같다고 했다. 김려는 도대체 무엇을 보고 이렇게 설명했을까. 그런데 이 글을 자세히 읽어보면 김려가 이 동물을 직접 본 것이 아니라 어부들의 말을 들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어부들이 설명한 24개의 다리를 가진 연체동물은 자료를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다. 어부들이 말한 24개의 다리를 가진 것이 어떤 것이 있을까. 만약에 어부들이 서울 양반인 김려에게 어떠한 것을 빗대어 설명한 것이라면 그것은 또한 무엇일까. 24개의 다리를 가진 것을 사람에 비유한 것은 아닐까. 사람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합치면 20개가 되고 팔과 다리를 합치면 4개가 되니 이것을 24개의 다리라고 한 것은 아닐까.

김려는 <우산잡곡>에서 ‘고제’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읊었다.

“고요한 밤 시냇물에 달빛 희미한데 / 나다니는 고제 그림자 이끼 낀 돌밭에 어지럽다. / 시골 소녀 정둔 중이 온 줄 잘못 알고 / 황급히 마루를 내려가 사립문을 열어보네.”

내용으로 보면 이곳의 어느 절에 있는 중과 어느 갯마을의 처녀가 정분이 난 것이 분명하다. 안동 하회탈놀음 셋째 과장에서 등장하는 파계승마당이 문득 떠오른다. 어떤 떠돌이 파계승이 부네(놀음에 등장하는 젊은 여인)가 오줌 누는 장면을 보고 본능을 참지 못하고 부네에게 접근한다. 그리고는 부네와 어우러져 춤을 추며 놀다가 초랭이에게 들키고 만다. 인간의 본능적 갈등을 풍자하고 있으며 당시 파계승들의 타락상을 엿볼 수 있는 탈놀이의 한 과장이다. <우산잡곡>에는 한밤중에 어느 절의 중이 갯마을로 몰래 내려와 그 마을의 처녀와 사랑을 나누고 돌아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주 그러는지 처녀는 밤이면 그 중을 기다리고 있는데 갯가를 배회하는 ‘호사’ 그림자를 보고 그 중인 줄 오해하고 사립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이러한 사실을 그 마을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을 사람들은 이처럼 밤에 찾아드는 중의 모습을 빗대어 ‘호사’라는 연체동물의 모양으로 표현했던 것이 아닐까.

마을 사람들은 달밤에 갯마을의 개울을 따라 이어진 모래밭이나 갈대와 여뀌가 핀 자갈밭을 몰래 헤치고 가는 중의 모습이 사람들의 눈에 ‘호사’라는 문어처럼 생긴 동물이 물가를 배회하는 것과 같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이곳의 마을 사람들이 이러한 형상을 한 ‘호사’를 불문어(佛文魚), 혹은 승낙제라고 한다고 했으니 ‘호사’를 무엇에 비유했는지 알 만하다.

김려는 이 ‘호사’가 일어나 머리를 들면 흰 장삼을 입은 노승과 같고 머리를 숙이면 그 모양이 농가에서 타작을 할 때 벼나 밀 등을 털어내는 개상과 비슷하다고 했다. 개상은 주로 가로 누인 통나무에 4개의 다리를 세워 만든 것이다. 문어가 다리를 세운 채 머리를 숙인 모습이 연상된다. 이 외에도 김려는 ‘단호사, 포고제, 쌍두낙제, 육각문어’ 등을 설명하고 있는데 정확하게 어떤 종류인지 불분명하다. 아마도 갑오징어나 주꾸미, 꼴뚜기 등을 설명하는 것으로 보이나 다리의 개수가 모두 16개 혹은 6개라고 하니 이 또한 알 길이 없다. 곤충이 아니면 6개 다리를 가진 바다 생물은 찾을 수 없다.

/박태성 두류문화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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