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밀양 하남읍은 지금…들뜬 마음에 농사 집중 못하고 투기에 땅값 폭등했다 떨어져

국책사업은 늘 그런 식이다. 정치·경제 논리만 난무한다. 추진 과정에서 정작 해당지역 주민 목소리는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다. '김해공장 확장'으로 결론 난 '영남권 신공항'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 10년간 주민들 마음만 들쑤셔 놓고서는, 슬그머니 꽁무니를 뺀 격이 됐다.

지난 25일 영남권 신공항 후보지였던 밀양시 하남읍 일대를 찾았다. 사실상 백지화 결정에 대해 주민들은 저마다 처지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였다. 한결같은 반응은 있었다. '지난 10년간 마음만 들뜨게 했다'는 것이다.

하남읍 백산리 해동마을회관에서는 할머니 10여 명이 화투를 치다 "그거(신공항) 물어보러 왔구먼"이라며 판을 접고서는 말 보따리를 쏟아냈다.

"시집와서 60년씩 여기 살았는데, 농사일하면서 골병 다 들었다. 신공항 보상 받으면 아파트 같은 데서 살게 되나 했는데…. 지금 마음이 얄궂다."

하남읍 백산리 칠정리마을회관 앞에서 만난 주민들이 "이젠 의미없다"면서도 영남권 신공항 예정지 주변 지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대체로 나이 많은 사람은 아쉬움이 크고, 빌린 땅에서 농사 크게 짓는 젊은 사람들은 잘 됐다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고, 저마다 다르지."

영남권 신공항은 2006년 12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 지시로 추진됐으니, 10년간 이어진 얘기다. 마을부녀회장 등을 했다는 박화강(83) 할머니는 연도별 상황을 정확히 짚고 있었다.

"김해공항 확장이 안 된다 해서 신공항 얘기가 나온 거거든. 그래서 10년 동안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이렇게 됐으니, 이젠 희망도 없고, 미래도 없다. 우리 마음만 들뜨게 만들고…."

그러자 여기저기서 "맞다"는 말이 터져 나왔고, "그전까지는 박근혜 대통령 좋아했는데, 이젠 보기도 싫다", "국민 속인다고 욕봤다"고 했다.

박 할머니는 그럼에도 묘한 여운을 남겼다.

"김해공항 확장하는 데 4조 원 든다는데, 그럴 거면 여기에 새로 짓는 게 안 낫나? 지금은 대통령이 진정시키려고 김해공항 확장으로 정리했지만, 혹시라도 또 모를 수 있다."

하남읍은 37.09㎢ 되는 땅에 주민 8323명이 살고 있다. 이곳 주민들은 "박정희 정권 때 지금 창원공단이 여기에 들어서려 했지만 옥토를 훼손할 수 없다 해서 무산됐다"는 말로 이 땅을 설명한다. 감자를 비롯한 수박·고추·양배추가 주 재배 품목이지만 주민은 "뭘 심어도 잘 된다"고 한다.

밀양 하남읍 수산리에는 부동산중개사무소 13~14개가 몰려 있다. /남석형 기자

하지만 하남읍 명례리 도암마을회관에서 만난 노인들은 좀 시큰둥한 반응도 내비쳤다.

"옥토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농사로 먹고살기 힘드니까 이런 보상금에 눈 돌렸던 거지."

여기서는 땅값 이야기가 화두에 올랐다.

"신공항 얘기 나오기 전에 평당 5만 원 하던 게 지금 20만 원까지 올랐다 하데."

"외지 사람들 투기로 폭등했다가 이제는 떨어질 대로 떨어질 건데, 여기 본토 사람들도 피해 보게 됐다."

하남읍 수산리에는 공인중개사사무소가 13~14개 밀집해 있다. 한 사무소에는 신공항 백지화 전 올라온 '평당 22만 원' 매물 건이 붙어 있었다. 2011년 신공항 입지 결정을 앞뒀을 때 평당 15만 원하던 것에서 5만 원 이상 오른 것이다.

하남읍 백산리 칠정리 마을회관 앞에서 만난 박모(70) 할아버지는 "신공항 얘기 처음 나올 때 본토 사람들이 빚 갚는다고 다 팔았지. 평당 4만~5만 원 하던 걸 7만~8만 원 준다고 하니 좋다고 판 거야. 지금은 외지 사람들 소유가 60% 이상이라고 보면 되는데, 특히 인근 김해 사람이 많아. 내 아는 사람은 660억 원을 쏟아부었다고 하더라. 신공항 직전에 20만 원도 훌쩍 넘었는데, 이제는 10만 원 주고도 살 사람 없어"라고 설명했다.

옆에 있던 김광식(75) 할아버지는 "이젠 속 시원하다. 땅 투기꾼들 때문이라도 잘 됐다"고 했다.

5년 전에는 찬반으로 나뉜 마을 간 갈등도 심했다. 다만 이번에는 그 정도는 덜했다고 한다. 백산리 주민 장상곤(53) 씨는 이렇게 전했다.

"이번에는 자제하는 분위기 속에서 큰 갈등은 없었다. 다만 외지 지주들과 그 땅을 빌려쓰는 농민들 간에는 마찰이 좀 있기는 했다."

하남읍 명례리에서 만난 박모(66) 할아버지는 전반적인 이곳 분위기를 이렇게 정리해 줬다.

"10년간 이래저래 생각하느라 농사를 제대로 못 짓거나, 팔아야 할 땅을 못 판 사람도 있다. 나라에서 파헤쳐놓은 피해는 우리 몫이지…. 내년 대선 때 또 얘기 나오는 건 아닌지, 벌써 그게 걱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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