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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이 잠든 그 바다…잠들어 돌아온 그 땅

[남해 바래길에서 사부작] (12) 13코스 이순신호국길 1부-관음포 이충무공 전몰 유허 ∼ 노량마을 7.8㎞ 2시간

이서후 기자 who@idomin.com 2016년 06월 24일 금요일

호국의 달, 6월이 가기 전에 서둘러 이순신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3코스 이순신호국길은 남해군 고현면 차면마을 관음포 이충무공 전몰 유허에서 시작해 설천면 노량마을까지 이어진다. 바래길은 지난 2012년 남해군이 마련해 놓은 '이순신 호국길'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이순신호국길은 그야말로 이순신에서 시작해 이순신으로 끝나는 길이다. 또한 거북선에서 시작해 거북선으로 끝나는 길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이순신의 '마지막 가는 길'이기도 하다. 이 코스는 거리가 짧고 마을이 몇 개 없기에 길과 마을을 따로 하지 않고 뭉뚱그려 이야기하려 한다.

◇대자대비의 물결, 관음포 = 남해군 고현면 차면리 앞바다를 관음포라 부른다. '관음'은 불교에서 말하는 관음보살(觀音菩薩)의 그 관음이다. 관음보살은 대자대비로 중생을 구제한다는 불교 성자다. 기록에서는 고려말 왜구를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운 정지(1347~1391) 장군의 '관음포대첩'으로 처음 등장한다. 그래서 고려시대부터 관음포로 불렸던 것 같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지역은 불교과 관련이 깊다. 학자들은 고려시대 위대한 역사(役事), 고려대장경 판각(나무에 새기는 일)을 관음포 일대에서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혹시 우리나라 3대 관음 성지 중 하나인 남해 금산 보리암과도 어떤 관련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옛 관음포는 뭍으로 깊숙이 들어온 바다였다. 일제강점기 많은 갯벌이 매립됐는데 관음포도 그런 곳 중 하나였다. 적어도 지금 고현면 탑동마을 앞까지는 바다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락산 첨망대서 본 관음포

◇7년 전쟁의 끝, 노량해전 = 이 관음포에서 정유년(1598년) 11월 18~19일, 조선과 명나라 연합 수군 그리고 일본 수군 사이에 치열한 해상 전투가 벌어졌다. 노량해전이다. 임진년(1592년)에 시작해 7년간 이어진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이자 가장 치열한 전투였다. 일본군은 임진왜란을 시작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철군을 계획한다. 조선 수군의 총지휘관 이순신은 굳이 돌아가려는 일본군의 퇴로를 막는다. 조선을 짓밟은 원수들을 단 한 명도 살려 보내기가 싫었다. 노량해전에 앞서 이렇게 기도한다. "이 원수들을 다 없앤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노량 앞바다에서 조명 연합 수군에 막힌 일본 수군은 남쪽 큰 바다를 향해 배를 돌린다. 하지만 그들이 큰 바다로 생각했던 건 바로 관음포였다. 관음포에 갇혀 궁지에 몰린 일본군은 결사적이었다. 이 와중에 이순신이 유탄을 맞고 쓰러진다. 그의 최후였다.

◇이충무공 전몰 유허 = 관음포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나간 등성이를 이락산이라 부른다. 이순신이 유탄에 맞아 숨진 후 뭍으로 옮겨졌다고 추정되는 곳이다. 등성이 초입에 이락사가 있다. 그리고 입구 옆에 유난히 우뚝 솟은 큰 비석에 다음과 같은 한자가 새겨져 있다. "戰方急 愼勿言我死(전투가 한창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마라)". 쓰러진 이순신이 유언처럼 남긴 마지막 말이다.

▲ 戰方急 愼勿言我死 전투가 한창 급하니、내가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마라. 남해군 이락사 초입에 있는 이충무공 유언비.

이락사는 한자로 '李落祠'라 쓰는데 '이순신이 순국한 것을 기리는 사당' 정도로 보면 되겠다. 이는 1832년 이순신의 8세손 이항권이 통제사로 부임해 유허비와 비각을 세운 후 이름 지은 것이다. 이락사는 아담하고 단정한 사당으로 묵직하고 단단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입구의 키 큰 소나무 대열은 굵고 우직했던 이순신의 성정을 상징하는 듯하다. 현판은 '이락사'와 '대성운해(大星隕海·큰 별이 바다에 떨어지다)' 두 개가 있는데, 모두 박정희 대통령이 적은 것이라 한다.

이락사 오른편으로는 솔숲 사이로 첨망대(瞻望臺)로 가는 길이 나 있다. 이는 이락사가 있는 등성이 끝에 있는 망루로 지난 1991년 세웠다. 망루에서는 노량해전이 벌어졌던 관음포 일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500m 남짓 걸어 첨망대로 가는 길 자체도 호젓하고 깔끔해 좋다. 이락사에 있는 이충무공 유허비와 비각, 이충무공 전적비, 첨망대 등 이락산 일대를 '관음포 이충무공 전물 유허'라 하는데, 국가 사적 제232호로 지정돼 있다.

이락사

◇첫 번째 거북선 - 이순신영상관 = 이락사와 첨망대까지 보고 돌아 나오면 왼편으로 커다란 배 모양 건물이 보인다. 용머리가 없어 판옥선인가 했는데, 상판이 덮인 모습이 귀선(龜船), 즉 거북선이다. 남해군이 지난 2008년 12월 개관한 이순신 영상관이다. 영상관 내부 전시관은 이순신의 삶과 임진왜란 전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다. 특히 노량해전 상황 중 학익진 장면을 재현한 모형이 인상적이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위 이순신 영정도 눈여겨보자. 현재 이순신 표준영정은 1953년에 장우성 화백이 그린 것으로 조복(朝服·조선시대 문무관이 조정에 나아갈 때 입던 옷)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영상관에 있는 영정은 구군복(具軍服·조선시대 무관이 입던 복장)을 하고 있다. 이는 서양화가 정형모 화백이 1978년 그린 것이라 한다. 당시 정 화백은 장군의 본관인 덕수 이씨 50대 남자를 수없이 관찰해 얼굴을 그렸다고 전한다.

이순신영상관

이순신영상관 이순신 영정

이 외에도 영상관에 있는 138석 규모 돔형 입체영상관에서는 노량해전 당시 상황을 실감 나게 경험할 수 있다. 평일과 주말 상영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미리 알아보고 찾아가는 게 좋다. 영상관을 나오면 관음포 방향으로 넓게 덱이 만들어져 있어 바다를 보며 노량해전 당시를 상상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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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후 기자

    • 이서후 기자
  • 문화체육부에서 문학/영화/연극/출판 등을 맡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