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 없이 떠난 유럽 여행플라멩코 공연·깜짝 무대 등 비운 만큼 채우고 돌아와

올해 초 유럽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스페인 세비야(Sevillia)는 더는 형언할 필요가 없는 완벽한 여행지였습니다.

아름다운 풍경, 친절한 사람들, 맛있는 음식과 술, 마음 맞는 친구, 그 친구가 내어준 내 집같이 편안한 숙소, 매혹적인 플라멩코, 매일 밤 이어지는 타파스(스페인 요리 중 하나) 투어. 무엇 하나 꼬집어 특별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특별했고 즐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마리오, 고마워요.

플라멩코를 세 번 보았습니다. 38유로짜리, 17유로짜리, 7유로에 음료 포함. 감동으로 따지면 7유로에 음료 포함이 최고였습니다. 나머지는 관광객을 위한 무대였다면 7유로는 우연히 거리 공연을 보다가 전단을 보고 찾아간 공연이었습니다.

허름한 술집에 차려진 소박한 무대에 몇 안 되는 관객이었지만 기타리스트, 가수, 무용수의 숨소리와 땀방울이 그대로 느껴지는 공연이었습니다.

스페인 세비야에서 깜짝 공연을 하며.

공연 끝엔 관객 속의 숨은 고수들이 무대로 올라와 다 같이 뒤풀이 공연을 했는데 그 또한 감동적이었습니다. 플라멩코는 춤만이 아니라 노래와 기타가 얼마나 중요한지, 특히 그 노래가 얼마나 마음을 울리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울 뻔했습니다.

매일 밤 타파스 투어의 마지막에 가는 펍(pub·술집)이 있었습니다. 가끔 플라멩코 가수들이 공연도 하는, 숙소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곳에 갔다가 깜짝 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들고 간 땅콩기타를 보더니 그 집 주인이 공연해보겠느냐고 해서 술김에 오케이 해버리고 바로 무대에 섰습니다. 겨우 두 곡이었지만 그곳 사람들이 어찌나 신기해하고 좋아하던지요. 잠깐이었지만 한류가수였습니다.

저에게 포르투갈 리스본(Lisbon)은 파두의 고향이었고 '리스본행 야간 열차'의 노란 트램(노면전차)이 달리는 도시였습니다.

사실 그 두 가지만 알고 무턱대고 리스본에 도착해 하루, 이틀은 멍청히 지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여행이 '노트를 비우고 계획 없이'가 계획이었기 때문입니다. 거리 음악가들도 많아서 잠시 길을 멈추고 서 있기도 하고 무작정 28번 트램을 타고 한 바퀴 돌기도 하고 한적한 주택가 빵집에 앉아 커피와 에그타르트로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어디를 가나 관광객으로 넘쳐나니 저도 관광객인 주제에 사람 없는 곳으로 자꾸 찾아다니게 됩니다. 그래도 만약 기회가 된다면 다시 가고 싶습니다. 가슴을 적시는 파두와 맛있는 에그타르트가 있으니까요. /글·사진 권정애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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