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어릴 때는 제법 책을 읽어주는 괜찮은 아버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아이들의 수준을 고려한 책 읽어주기는 아니었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소리 내어 읽어주는 것이 전부였지만. 아이가 알아듣든 말든 영어책도 신나게 읽어주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어느덧 큰 아이가 학교를 들어가면서 책을 읽어주는 것은 나와는 무관한 일이 되어버렸다. 둘째도 유치원에서 띄엄띄엄 한글을 익히자 어느새 나의 책읽기는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남아버렸다. 가끔씩 책을 들고 읽어달라며 오는 아이들에게 "책은 네가 마음껏 상상하며 읽어야지"라고 일단락 지어버렸다. 이제 독서란 아버지가 아이에게 하는 잔소리로 전락해버렸다.

십여 년 학원을 운영했다. 틀에 박힌 수업을 하며, 아이들의 능력을 점수로 환산하는 교육체계가 영 마음에 걸렸다. 신나게 놀면서도 늘 배움과 도전의 즐거움을 찾게 하고 싶었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작은도서관을 운영하는 나는 통합 교육의 일환으로 다양한 체험, 놀이, 이야기와 글쓰기를 함께 진행한다. 매번 새로운 교육 안을 짜내느라 머리를 쥐어짜는 게 다반사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자료를 찾아도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한 날이 있다. 국어선생으로 근무하는 처형이 중학생이 된 딸에게 책을 읽어준다는 동료 얘기를 떠올랐다. 중학생인데도 책읽어주는 엄마가 그렇게 좋다고 했다. 엄마의 목소리가 그렇게 다정하게 들리고, 책 내용도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고 했다. '오늘은 애들에게 책이라도 읽어주자.'

그렇게 시작된 책 읽어주기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다. 동시를 읽어주고, 짧은 전래 동화를 읽어주었다. 이제는 제법 호흡이 긴 책도 장별로 나누어 읽어준다. 처음엔 별 관심도 없던 아이들도 등장인물의 목소리에 감정을 담아 읽어주니, 어느새 내 등 뒤에 바짝 붙어 있었다. 그리고 각자가 분담해 책을 읽다 보면, 책에 대한 집중력도 높아지고, 내용 이해도 훨씬 잘 되었다. 한 장(章)씩 읽고 질문을 하면서 서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만다. 체험이나 놀이를 하고 나면 자신의 경험담을 글로 적어 서로에게 읽어준다. 자연스레 낭독은 자신만의 즐거운 배움과 기록을 남기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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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이 주는 혜택은 아이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직접 소리 내어 책을 읽다보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낭독의 즐거움을 찾게 된다. 그렇게 읽어도 기억나지 않던 내용들이 머릿속에 한가득 찬다. 눈이 주는 행복,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의 속삭임, 목소리가 주는 낭만이 나만의 이야기보따리를 함께 채워준다. 낭독을 하면 '책은 최고의 수면제'란 말이 어느새 바람을 타고 흘러가 버린다. 낭독은 온 몸을 일깨우는 알람시계다.

/장진석(아동문학가·작은도서관 다미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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