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경남청소년문학대상 고등부 으뜸]조도영(김해외국어고등학교 1학년)

21세기에서 민족을 찾는다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이야기라는 비판을 받는다. 정보 통신의 발달로 이루어낸 세계화 세계에서 이제는 민족이 큰 변수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고, 세계 역사에서 민족과 특정 이념만을 강조한 국가들의 최후를 목격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태백산맥>을 읽으며, 나는 민족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았다. <태백산맥>은 조정래 작가님의 대하소설로 총 10권, 4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수·순천사건과 제주도 4·3사건을 발단으로 시작하는 <태백산맥>은 동족상잔의 비극 6·25전쟁까지 우리 민족 최대의 수난을 여러 가지 줄기를 통해 풀어간다.

<태백산맥>에는 무수히 많은 인물과 이야기와 그들의 한(恨)이 등장한다.

주요 줄거리는 광복 이후 좌익 세력인 염상진과 그의 부하들이 해방구를 만들고 세력을 확장하는 과정, 그리고 염상진의 동생이며 우익 단체에 가입한 염상구, 지주들과 염상진 세력의 갈등을 그린다.

그리고 전쟁에서 열세에 몰린 좌익 세력들이 시작하는 빨치산 생활에 관해 서술하고 그와 동시에 거창 양민 학살 사건, 보도연맹 사건, 거제도 포로수용소 사건 등을 다양한 인물들을 출연시켜 서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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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태백산맥-조정래 지음.

역사란 겪은 사람의 인생과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해석이 가능한 것처럼, 어떤 한(恨)을 기준으로 작품을 감상하는지에 따라 <태백산맥>은 죽는 순간까지 혁명에 대한 열정과 믿음을 놓지 않은 빨치산 대원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식민지, 친일 관료의 수탈, 전쟁이라는 참혹한 역사를 겪어야 했던 서민의 삶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 <태백산맥>의 등장인물이 담고 있는 개인적 갈등과 사회적 갈등을 통해 우리 민족이 겪은 근대사의 고통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태백산맥>은 해방 이후 이념차이로 인한 좌익과 우익의 갈등 속에서 희생되는 개인에 관한 이야기이고 작가는 수백 명의 등장인물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묘사한다. 내가 여기서 모든 인물을 언급할 수는 없지만, 작품의 주요 줄기를 이해하기 위한 인물들은 우리가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염상진과 염상구의 갈등은 10권 모두 등장하는 가장 핵심적인 인물 관계이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공산주의 운동을 시작한 염상진은 자신이 바라는 이상향과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인물이다. 마지막까지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수류탄으로 자살하는 그의 모습은 장엄하게 보이기도 하였지만, 이데올로기로 인한 민족 갈등의 가장 큰 피해자의 모습으로도 보였다.

그와 반대로 그의 동생인 염상구는 부와 명예를 위해 활동하는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사람이다. 가난한 형편에서 금전 지원을 겨우 받아가며 교육을 받은 형이 혁명을 부르짖는 모습을 보며 동생은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왜 빨갱이 짓을 하는가"라며 자신은 형과 반대로 우익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한다.

부모로부터의 편애 때문에 생긴 증오와 형제간의 갈등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 당시의 사회가 부당하다고 느끼는 분노와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을 노려 성공하기 위해 활동한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날마다 반복되는 보복과 학살은 민족의 극단적인 분열을 초래하였고, 그 분열 속에 휘말리어 가는 모습이 염상진과 염상구,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을 통해 표현되었다.

염상진과 대립하는 다른 인물로는 당시 지방의 지주들이 있다. 그중 정현동은 좌익 활동을 하는 정하섭의 아버지이자 대지주이다. 양조사업으로 부를 늘리고 땅을 사들여 지주 신분까지 오른 인물이며 당시 소작농을 착취하던 전형적인 지주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토지 개혁을 피하기 위해 평범한 밭을 염전으로 만들어 버리고는 천재적인 생각이라며 자축하는 그의 모습에서 당시 지주와 소작인간의 갈등을 엿볼 수 있었고, 소작농들이 그를 낫과 호미로 죽여 버리는 모습을 보며 농민들의 고통과 갈등의 정도를 알 수 있었다. 즉, 당시 계층 간의 갈등을 표현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계층 간의 분열이 아닌 역사의 분열 속에 휘말리는 인물로는 김범우와 손승호를 제시하였다. 김범우는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중도 좌파이다. 그는 공산주의를 지지하지는 않으며 민족주의자에 가까운 인물로 등장한다.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는 그이기 때문에 과거에는 친하게 지내던 염상진은 "자네를 포기하지는 않았네, 그러나 역사의 외침에 응답하게"라는 말로 소극적인 김범우의 행동을 비판한다. 그리고 월남 교사인 선우진에게도 강도 높은 비난을 받는다.

선우진은 북한의 토지 개혁으로 인한 피해자를 대변하는 인물로 광적인 반공주의 이념을 소유한 인물이다. 언제나 말을 "지금 공산주의를 찬양하시는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라고 끝내며 논리보다는 자신의 증오와 분노에 따라서 행동하는 인물이다.

이렇게 한쪽을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역사의 흐름 앞에, 결국 김범우는 사회주의를 선택한다. 좌익인 염상진으로부터도, 우익인 선우진으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한 김범우가 결국 사회주의를 선택한 이유는 민족이었다.

OSS 특수대원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는 김범우는 당시에 당했던 인종차별과 전쟁을 하며 미군에게 민간인들이 피해를 받는 모습을 보며 분노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백범과 같은 민족주의자에 더 가깝고 김범우 자신도 자신을 좌익보다는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전향한 민족적 사회주의자로 정의한다.

손승호 역시 좌익 활동을 포기한 인물이었지만, 전쟁이 터지고 자신이 좌익 활동을 했었다는 이유로 고문을 당한 후 다시 입산하여 빨치산 생활을 시작한다.

끝까지 편을 선택하지 않고 가난한 소작농을 위해 무료 교육을 실시하고 집단 농장을 만들어 활동하는 서민영의 모습과 "죽어가는 사람 앞에 좌익이 어디 있고 우익이 어디 있는가"라고 말하는 전명환 의사의 모습은 이념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당시의 지식인들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의 최후는 비참했다. 좌익을 치료했다는 이유로 고문을 당하고 간호사와 함께 보도연맹에 가입된다. 그리고 간호사는 보도연맹 사건으로 목숨을 잃는다. 시대의 앞에서 이념을 선택하도록 강요받은 인물들의 고뇌와 갈등이 이념의 사이에서 고통받는 민족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표현하였고, 희생당하는 인물들을 보며 당시의 비극적인 시대적 상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태백산맥의 1, 2부는 이렇게 개인 간의 갈등과 좌익 세력의 세력 확장을 주로 다루었다. 그리고 좌익 활동을 시작한 인물들의 원인은 하대치와 정하선이라는 인물을 통해 드러낸다.

하대치는 지주로부터 핍박받던 당시 농민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밝고 친근한 성격이지만, 새로운 세상을 위한 열정은 누구보다 뛰어난 전사적인 모습을 띤 인물이다.

나는 그런 하대치가 역사에 휘말린 개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가난과 차별은 그가 정신력과 육체를 단련하는 이유가 되었고, 결국 좌익 활동을 시작하면서 격변의 시대로 뛰어드는 인물이 된다. "지주가 빨갱이 만들고 나라가 공산당 만드는 거 아니요!"라는 말 한마디가 당시 농민들의 심정을 가장 잘 표현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정하섭 역시 철저한 공산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좌익 활동을 하는 인물이다.

둘의 차이점이 있다면 하대치의 좌익 활동을 유발한 분노는 시대를 향한 약자의 분노라는 점이다. 하대치가 심심치 않게 뱉어내는 욕설은 단순히 전라도 사투리와 어울리며 해학적인 요소를 만드는 것만은 아니다. 그 안에는 그동안 겪어온 치욕과 분노가 담겨 있다.

이렇게 하대치가 서민층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면 정하섭은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자신의 신념에 따르는 좌익 지식인 계층을 대표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세상을 일원론적으로만 바라보는 닫힌 사람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인 소화가 지주와 우익세력에게 학살당한 사람들을 위한 굿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귀신을 믿지 않소, 유물론자에게 굿은 인민을 현혹하는 행위일 뿐이오"라고 말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의 행동에서도 그는 계급투쟁만을 연상하는 것이다. 그리고 농민을 위한 굿을 준비하는 소화의 모습을 보며 그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여러 가지 줄기를 통해 독자에게 접근하는 태백산맥에서 소화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데올로기의 여파로 발생한 분단과 전쟁, 소화는 좌익도 우익도 아닌 좌익 세력들의 남겨진 가족의 한(恨)을 슬퍼한다.

좌익 단체인 여맹에 가입하라는 권유를 받는 염상진의 아내 죽산댁이 "부부가 쌍으로 빨갱이질을 하면 집안은 어떻게 되겠소?"라고 말하며 가입을 거부하는 모습, 입산한 남편을 죽인 염상구가 강제로 임신까지 시키자 입산을 한 외서댁의 모습은 당시 마을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담아낸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절 어머니들의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소화를 무당으로 설정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들었다.

그리고 소화의 다른 특징은 정하섭과 연인 관계라는 것이다. 소화는 무당으로서 누구보다 한(恨)의 개념을 잘 이해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녀가 적극적인 좌익 활동가라고 보기는 어렵다. 막연히 피지배 계층을 향한 동정심만을 가지고 있을 뿐, 사실상 소화는 남편을 생각해서 여맹에 가입하고 집을 잃은 하대치의 아내와 자식을 돌보아 준다. 극단적인 유물론자인 정하섭과 가장 관념적인 개념인 굿을 관리하는 소화의 관계는 모순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하섭과의 아기를 지키기 위해 염상구의 고문에도 정보를 주지 않는 소화의 모습은 투철한 공산주의자의 모습이 아닌 누군가의 아내이자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3, 4부에서는 전쟁이 일어난 후 한반도의 상황과 빨치산 활동의 몰락을 담고 있다. 여기서는 양효석, 김미선과 같은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여 기존 인물들과 함께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거창 양민 학살에 가담한 군인으로 나오는 양효석은 좌익 세력에 의해 몰락한 집안에서 자랐다. 그런 그이기에 누구보다 좌익 세력에 대한 적개심이 가득했고, 다시 성공하고자 하는 욕구도 강했기에, 그는 거창 양민 학살에도 관여하고 죽어가는 주민들을 보며 침묵한다.

이 사건을 작가는 "한 줄의 사람들이 일어났다. 총소리가 울렸다. 사람들이 구덩이 속으로 쓰러졌다. 총소리가 울렸다. 사람들이 구덩이 속으로 쓰러졌다. 다음 한 줄의 사람들이 일어났다. 총소리가 울렸다. 사람들이 구덩이 속으로 쓰러졌다. 다음 줄은 없었다"라고 표현한다. 화려한 수식어나 미사여구의 활용 없이 단순히 일어난 일만을 그대로 쓴 문장이지만, 어느 문장보다도 섬뜩했고 가장 효과적으로 전쟁의 참혹함을 표현하였다.

좌익 신문기자로 일하던 김미선 역시 가족의 안전을 위협하는 협박으로 인해 대북방송을 작성한다. 그녀가 작성한 방송 멘트는 "어서 가족과 함께 자유 대한의 품에 안기세요"라는 말이었다. 우습지 않은가.

양효석과는 다르게 전쟁의 모순점에 대해 걱정을 하는 군인도 있다. 그는 심재모라는 인물로 염상진이 무장투쟁을 시작하자 벌교로 파견된 군인이다. 그는 공산주의로부터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의식은 있지만, 지배계층의 부패에 낙담하고 민중들이 고통받아온 역사를 알아간다. 하지만 염상진과 어떤 일반인 부부의 개인사를 해결한 일을 꼬투리 잡혀 그는 좌천당한다. 나는 그를 대한민국에 남아 있는 양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양심을 지킨 그의 최후는 전쟁 최전선으로 부대 이동을 명령받는 것이었다.

태백산맥은 대한민국의 부패와 미군의 횡포를 적나라하게 묘사하였다는 이유로 출판 당시 몇몇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똥을 비료로 해서 음식을 키운다니? 미개한 원숭이들"이라는 말과 "중국, 일본보다 한국인 여자가 제일 좋다"라는 말은 전쟁이라는 거시적 관점이 아니라 서민들의 입장에서 미시적으로 역사를 봐달라는 작가의 외침이라고 생각한다. 좌익 세력들이 토지를 분배해주자 좋아하던 농민들이 절반이 넘는 세금 징수와 낱알을 하나하나 세어 기록하는 그들을 보고 등을 돌리는 모습 역시 서민의 입장에서 바라본 역사를 서술한 것이다. 태백산맥은 특정한 이념을 옹호하는 소설이 아니다. 민족의 수난을 그린 소설이며 그 갈등과 수난을 다양한 인물들을 이용해 절묘하게 작품으로 승화한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고 벌교지역이 인공 치하가 되었을 때, 염상진의 어린 아들인 염광조는 자신의 아버지가 군당위원장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닌다. 그러나 인천상륙작전 이후 전세가 불리해지자 학교에서도 마을에서도 광조는 폭행과 욕설에 시달린다. 인공 치하에서는 인공기를 걸며 "인민군 만세"라고 외치던 사람들이 다음날 지역을 탈환한 국군들이 오자 태극기를 걸고 "대한민국 만세"라고 외치는 모습은 결코 비열해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은 당시의 시대가 얼마나 살벌한 시대였는지를 보여주었다.

태백산맥에서 주요 소재로 사용되는 빨치산 활동 역시 이념이 불러온 민족의 수난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전쟁의 상황이 역전되며 시작된 빨치산 활동은 다시 입산하게 된 손승호가 관찰하는 시각으로 주로 서술된다.

철도를 끊고 지주들의 식량을 빼앗아 오는 소규모 전투부터, 지리산과 주위 산들을 전투지역으로 하여 경찰 사단과 벌이는 대규모 전투까지, 빨치산 생활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세력을 확장하고 승리하는 전투가 많아지면서 빨치산 대원들의 사기는 높아지지만 손승호와 특별히 친하게 지내던 솥뚜껑의 죽음과 동계 토벌 작전을 시작으로 분위기는 악화되어간다. 그런 와중에 북한에서 내려온 이해할 수 없는 명령들과 빨치산들을 향한 비판, 당과 군이 합쳐지는 상황 속에서 손승호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부패의 냄새를 맡는다.

작품이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면서 빨치산들의 괴리 역시 심화되어 간다. 그리고 그 괴리감은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가슴이 먹먹해져서 페이지를 넘기기 힘들게 만들었다.

총 10권이나 되는 분량의 책에서 각자 희망을 품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싸우자고 외치던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눈 덮인 지리산 바닥에 피를 흘리며 허무하게 쓰러지는 모습이 씁쓸했다. 총탄에 박힌 후 "평생 개, 돼지 취급만 받던 내가 산 생활 2년 동안 처음 글이라는 것을 배워 좋았습니다"라고 유언을 남긴 솥뚜껑, 먹고 살아갈 땅이 없어 입산한 천점바구와 그를 사랑한 김혜자가 논두렁에 처박혀 죽어가는 모습, 잠입 활동을 위해 하산하다가 목을 축이던 도중 총을 맞아 죽는 손승호의 모습, 동계토벌작전에서 살아남기 위해 눈을 뭉쳐서 배를 채우는 대원들의 모습이 나는 너무 허무했고 착잡했다.

그중에서 이해룡과 김범우라는 인물을 대조하면서 빨치산들의 최후를 인상적으로 표현함과 동시에 작품의 주제인 민족의 슬픔 역시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이해룡은 염상진의 선배로 오랜 좌익 활동가이다. 경찰서를 습격하여 식량과 무기를 얻은 후 친일 활동 경력이 있는 경찰만 직접 사살하는 그의 모습과 습격 과정에서 죽어간 동지들을 생각하며 "우리는 동지의 살과 피를 마시며 연명하고 있구나"라고 말을 할 정도로 민족주의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성향을 나타내는 인물이다. 그러나 휴전 협상이 체결되고 상황이 힘들어지자,

이해룡은 자신들을 휴전 협상을 통해 북으로 송환시켜 주지 않은 당에 대한 의심을 가지게 된다. 반면에 김범우는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을 기점으로 활동한 좌익 활동가로 사상과 원칙에 엄격하고 당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버리지 않는 인물이다. 그런 김범우에게 이해룡은 마침내 그동안 참아온 질문을 쏟아 붓는다. 자신이 믿었던 이상과 정의가 사실은 권력자의 놀이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격정으로 터져 나오며 그는 질문을 던진다. 그는 "우리는 서울이 함락되었을 때 박헌영 만세 대신 김일성 만세를 외쳤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철저한 교육도 했고 같은 동지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는 당을 믿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아라, 박헌영은 간첩죄로 숙청을 당했고 우리는 휴전 협상에서 이야깃거리에 오르지도 못했다. 당을 위해 싸우고 당을 위해 죽은 우리들은 바로 그 당에게 배신을 당한 것이다. 우리는 믿어왔던 당과 혁명, 새로운 세상에게 버려진 사람이다"라고 그는 울분을 토해낸다.

새로운 세상, 만인이 평등한 세계는 구호에 불과했다. 결국 당은 인민을 위한 혁명의 지도자가 아닌 또다른 지배세력이었고, 자신들은 그들의 권력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혁명가의 처절한 외침은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김범우는 절망한 혁명가에게 웃으면서 말한다. 그는 웃는 얼굴을 통해 "그것 또한 혁명이다. 박헌영이 죽은 이유는 당이 새로운 혁명을 시작하기 위해 책임을 질 사람이 필요하였고, 박헌영은 영광스럽게 당을 위해 죽은 것이다. 이제 역사 투쟁이 시작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나는 저 말을 듣고 정말 무서웠다. 역사 투쟁이란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혁명과는 다른 혁명이다. 현시대에서의 혁명은 힘들다고 판단, 일시적으로 혁명을 중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항복하지 않는다. 죽을 때까지 역사의 발전을 믿으며 투쟁하고 후대의 혁명가들을 위해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라고 염상진은 역사투쟁을 정의한다. 그리고 그들은 역사 투쟁을 위해 죽었다. 

그러나 김일성의 독재체제 강화와 연안파, 소련파의 숙청으로 그들의 죽음은 무(無)가 되었다. 그 사실을 모른 채 역사의 발전을 위해 죽은 사람들, 그러나 역사는 단 한 번도 민중의 편에 서주지 않았다. 끝까지 믿었던 당의 진실을 알게 된 이해룡이 김범우에게 당 비판을 시작하며 울먹이는 모습은 페이지를 넘기려던 나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나 태백산맥에서 나의 가슴을 관통한 문장은 혁명가가 아니라 어린 아이의 말이었다. 아이가 말하는 "아버지는 몸에 빨간 곳이라고는 없는데 왜 사람들은 아빠를 빨갱이라고 부르며 미워하지?"라는 대사를 통해 누구를 위한 전쟁, 희생, 고통이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지독한 가난과 차별이 싫어 끝까지 혁명을 포기하지 않고 싸우다가 수류탄으로 자살한 염상진의 모습은 자신의 신념과 이상에 따른 진정한 혁명가의 모습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배신당한 죽음을 맞이한 피해자의 모습이기도 하였다. 나는 태백산맥을 통해 한국의 근대사를 지배당한 피해자의 입장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 아래에서 보낸 35년간의 식민지의 역사는 우리 민족의 피부와 정신에게 씻을 수 없는 잔혹한 흉터를 남긴 치욕의 역사이다. 그러나 일제로부터 광복을 맞이한 이후 우리의 역사는 민족의 가슴에 씻을 수조차 없는 그을려지다 못해 가슴을 태워버리는 내상을 입으며 흘러갔다.

시대는 사회주의, 자본주의를 공산주의, 민주주의를, 왼손을 들기 위해서는 오른손을, 오른손을 들기 위해서는 왼손을 잘라버려야 했던 이분법만이 존재하던 시대가 되었다. 각 사상을 대표하는 강대국인 소련과 미국은 35년 만에 광복을 맞이한 작은 반도 민족의 터전을 아무런 가책 없이 그들의 사상 전쟁의 전쟁터로 만들었다. 반만년 동안 단 한 번도 끊어지지 않은 채 지켜온 우리의 영토는 그렇게 총소리 한 번 없이 허무하게 분단되었다. 그리고 분단을 시작으로 우리 민족 역시 사상 전쟁, 냉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통일된 하나의 국가라는 꿈은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산산조각으로 부서졌고 우리는 지금까지 분단 국가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사상을 따지기 전에 같은 민족이고, 더 나아가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형의 목이 '악질 빨갱이 염상진 사살'이라는 문구 아래 전시되는 모습을 본 염상구는 "살아서 빨갱이지, 죽어서도 빨갱이냐"라고 외친다. 결국 우리는 한 뿌리에서 흘러온 민족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한 남자의 절규를 우리는 너무 오래동안 잊으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작품의 마무리는 염상진의 부하들이 그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산으로 들어간다. 죽음을 받아들이며 산으로 들어가는 그들의 모습은 전혀 비참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태백산맥의 문은 닫혔고, 그들은 사라졌다. 남쪽에서도, 북쪽에서도 인정받지 못한 그들과 그 시절의 모든 가족들의 한(恨) 역시 희미하게, 소리 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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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과의 관계가 다시 악화되었다. 개성공단 폐쇄와 연속되는 핵 실험 앞에서 우리는 다시 하나의 민족으로 빛날 수 있을까.

산맥은 하나의 산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바위가 많은 산도 있고, 평평한 산도 있고, 거칠어서 걸어갈 수 없는 산도 있다. 하지만 결국 서로 다른 산들의 정상들이 이어져 산봉우리를, 산봉우리가 모여서 산맥을 이룬다. 바위가 많은 지역과 평평한 곳이 있기에 산을 타는 맛이 생기는 것이고, 거칠어 걸어갈 수 없는 산은 주위 산을 통해 돌아가며 인간의 나약함을 느끼도록 한다.

산맥이라는 것은 서로 다른 산들이 모여 산맥만의 특징을, 정신을 형성한다. 허리가 잘려버린 우리의 산맥은 언제쯤 다시 이어질 것인가, 하나로 이어진 산맥이 뿜어내는 고고한 높이와 자태를 우리는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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