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경남청소년문학대상 수상작]김하늘(창원 범숙학교 3학년)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지만 아빠는 엄마 몫까지 해내시며 홀로 우리를 키우셔야 했기에 나와 동생이 바라는 많은 것을 다 해주지 못하셨고, 우리 또한 바랄 수 없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과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항상 혼자 연습해보거나 인터넷을 찾아보며 배우는 것에 익숙했다. 하고 싶거나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늘 곁에서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그 과정을 지켜봐 주는 부모님이 있는 친구들이 하나둘 늘어날 때쯤, 난 혼자 배우는 그 익숙함이 싫어졌다. 그래서일까 난 유독 또래 친구들보다 경쟁심이 많았고, 내가 잘하는 무언가를 나보다 더 잘하는 친구가 있으면 부럽기보다는 질투심이 느껴졌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정말 친한 친구 한 명이 생겼다. 누구보다 좋았고, 누구보다 아껴주고 싶은 친구였다. 항상 붙어다니며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갔다. 학교를 마치고 친구 집에 갈 때면 "우리 하늘이 왔어? 저녁 먹고 천천히 놀다가~" 상냥하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엄마라는 존재가 늘 집에 계시다는 것…. 성적도 항상 상위권이라는 것도…. 그 친구는 늘 나에겐 부러우면서도 이기고 싶은 존재였다. 그래도 예체능 분야에서는 그 친구보다 내가 늘 뛰어났다. 하나라도 그 친구보다 잘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고, 지지 않으려 무던히 노력했다.

어느 날 나의 마음에 이름 모를 검은 손님이 찾아왔다. 그 손님은 정말 온다는 예고 없이 찾아와 말도 없이 새하얗던 나의 마음을 새까맣게 물들이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손님이 가고 난 후, 걷잡을 수 없이 내 안의 검은 연기가 날 감싸 안았다. 정말 싫었지만 난 저항하지 못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난 그 손님이 남기고 간 검은 연기가 무엇인지, 또 나에게 어떤 해를 끼칠지 그 어떠한 것도 알지 못했다.

시험 성적이 나오기로 한 날, 거뭇거뭇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은 마치 내 기분을 대신 나타내주는 듯했다.

몇 달 전부터 여전히 학교 우산꽂이에 있는 내 빨간 우산. 혹시나 우산 없이 학교 가다 비를 맞고 감기나 걸리지 않을까 아빠의 괜한 걱정에 오랜만에 아빠 차를 탔다. 차창 밖에는 많은 사람이 색색의 우산을 손에 쥐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전화를 하며 바쁘게 걸어가는 아저씨, 똑같은 교복을 입고 옹기종기 모여 등교하는 학생들, 아침부터 한가득 유모차에 폐지를 담아 끌고 가는 할머니. 각자 자기의 색을 지니며 바쁘게도 걸어간다.

생각도 잠시, 벌써 학교에 도착했다. 아빠를 향해 손을 흔들고 빠르게 교실로 향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교실 문을 열어 반 친구들에게 인사를 했지만 뭐가 그렇게 바쁜지 아무도 나의 인사를 보지도 듣지도 않는다. 잠시 후, 선생님이 들어오시자 마치 모두가 짠 듯 조용해졌다. 선생님은 책상 위에 성적표를 올려놓으시고는 한 사람, 한 사람 번호순대로 이름을 부르신다. 내 이름은 언제 불릴까 조마조마해하며 애꿎은 손톱을 뜯고, 다리를 덜덜 떨며 내 번호 18번이 불리길 기다린다. 드디어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18번 김하늘."

떨리는 마음을 붙잡고 교탁 앞으로 가 아무렇지 않은 듯 성적표를 받아 얼른 내 자리로 돌아간다. 다른 점수는 눈에 보이지 않고, 오로지 예체능 점수에만 눈이 간다. 음악 95점, 미술 90점, 체육 80점. 점수를 보고는 나름 잘 쳤다 생각하며 다른 과목 점수에도 눈을 돌린다. 그때 내 다음 번호 19번이 불린다. 그 친구의 번호이다. 친구의 이름이 불리자 친구는 교탁 앞으로 나갔고, 선생님께서는 모두 축하해주자며 예체능을 포함한 모든 교과목 점수에서 올백을 맞았다고 말씀하신다. 정말 행복한 표정으로 교탁 앞에 서 있는 그 친구의 얼굴, 축하한다며 박수쳐주는 아이들…. 유일하게 이겼던 예체능 점수까지도 그 친구에게 지다니…. 나에게 너무 화가 났다. 아니, 그 친구에게 느끼는 질투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난 우울하게 1교시 수업을 마쳤다.

쉬는 시간, 반 아이들은 다들 그 친구 자리에 우르르 모였다. 아이들 사이에 둘러싸여 빼꼼히 보이는 그 친구의 행복한 표정이 너무 미웠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엎드렸다. 쉬는 시간이 끝나기 3분 전, 누가 내 어깨를 조심스레 툭툭 건드려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내 앞에는 그 친구가 서 있었다. 친구는 나에게 이번 시험에 올백 맞은 것을 빨리 집에 가서 엄마 아빠에게 자랑하고 싶다고 하며, 이번 주말 우리 집에서 맛있는 걸 먹자고 했다. 그 말에 나는 부러움이었을까? 아니면 질투였을까? 잘난 척 좀 그만 하라며 소리쳤다. 나의 거친 목소리에 반 아이들의 시선은 모두 나와 그 친구에게 향했고, 그 시선들이 너무 부끄러웠지만 내 안에 숨겨두었던 마음들을 모두 그 친구에게 내뱉었다. 반박은커녕 그 친구는 한 방울 두 방울 눈물을 흘리다 끝내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친구의 우는 모습을 본 반 아이들은 그 친구를 감싸 안으며 힐끗힐끗 나를 째려보며 화를 냈다.

내 좁디좁은 속마음이 모두에게 다 들켜버린 것 같아 교실 문을 쾅 닫고 교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밖으로 나오자 거뭇거뭇한 하늘에는 어느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마치 그 비는 내 마음 구석에 차있는 눈물 같았다. 정처 없이 비를 맞으며 걷고 또 걸어 어느새 집 앞에 도착했다. 비 맞은 생쥐 꼴이 되어 집에 들어갔을 땐 여전히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이었고, 싸한 공기만이 나를 반겼다. 젖은 교복도 갈아입지 않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한참을 울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퉁퉁 부은 얼굴로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어제 일은 아빠에게 이야기하지 못한 채, 무거운 마음으로 학교에 도착했고 교실로 들어갔다. 내 걱정과 달리 반 아이들은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며 나를 반겨주었고, 난 그 모습을 보고 조금은 안심하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 마음은 잠시, 반 친구 중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와 편지 한 통을 건네며 말했다.

"하늘아 걔 어제 전학 갔어…. 이거 너 꼭 전해주래."

나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싶어 편지를 펼쳐 보았다. 사실 아빠의 일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며 주말에 우리 집에 함께 가서 맛있는 것도 먹으며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가게 되어서 미안하다는 말…. 그리고 너무 보고 싶을 거라는 말….

그 친구의 편지를 다 읽고도 다시 접지 못하며 한참을 읽고 또 읽었다. 나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왜 내 마음을 그렇게 새까맣게 만들어 마지막까지 친구를 웃으며 보내주지 못하게 했는지 그 검은 손님이 너무 미웠다. 다시는 그 손님이 나에게 오지 않았으면 했다. 그 뒤로 난 중학교에 들어가 새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지만 기억 저편에는 항상 그 친구 생각을 숨길 수 없었다.

그렇게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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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 년이 흐른 지난 일이지만, 언젠가 한번 그 친구와 연락이 닿아 마음을 담아 용서를 구할 기회가 오겠지 희망을 품고 그 친구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전하고 싶다.

'난 이제야 알았다고…. 내 안에 왔던 그 검은 손님은 나에게 질투심보다 너의 진심과 소중함을 알려주고 싶었던 거 같다고, 내 마음이 새까맣게 변했던 건 너에 대한 나의 애정과 질투가 너무 강해 다시 하얗게 돌아오기에는 내가 내 마음을 빨리 보지 못해 걷잡을 수 없었다고…. 너무 미안하다고….'

꼭 내 목소리로, 내 마음으로 그 친구에게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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