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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블]한 잔 술·계곡물 소리·초록바람 함께한 매실따기

이우기 webmaster@idomin.com 2016년 06월 16일 목요일

하동군 횡천면 개인마을로 간 것은, 사흘 연휴 하루쯤은 녹색을 향하여 내 눈을 열어주고 싶은 데다 이 마을 이장댁 농장에 매실이 여물었다는 소식을 들은 덕분이다. 농군이었다가 언론인이었다가 시민단체 회원이었다가 종횡무진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장 형. 그의 집 옆 자그마한 계곡에 세워놓은 놀이터에 쌓인 송홧가루를 좀 떨어내야 할 때가 되기도 했다.

횡천에서 미리 고기를 사놓고 우리를 기다리는 형을 만난다. 굳이 필요치 않다는 소주, 맥주, 막걸리, 수박을 바구니에 담고 그리고 상추, 깻잎, 마늘, 쌈무를 곁들여 장을 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폐쇄된다는 횡천역을 지나 진주∼하동 국도 2호선 공사가 한창인 현장을 지나 어렵사리 목적지에 도착한다.

형은 집앞 텃밭에서 풋고추를 따고 민들레 보드라운 잎은 아무 데서나 뜯는다. 계곡 물소리는 지글지글 돼지목살 타는 소리에 절묘하게 어울리고 무엇을 쫓자는 것인지 달라는 소리인지 모를 개 짖는 소리는 조용한 시골마을을 더욱 정겹게 만든다.

하동군 횡천면 개인마을 매실농장. /이우기

매실 딸 일은 햇살 뒤로 미뤄두고 소주와 맥주를 섞고 아내들은 고전막걸리를 붓는다. 아삭거리는 배추김치는 불판에서 익어가고 우리의 이야기는 밤꽃 향기에 스며든다. 횡천강을 모천으로 하던 어린 피라미를 고고 제핏잎을 요리사로 지명하여 어탕을 끓이니 선계가 따로 없다. 아득하다. 이대로 시간이 멈춘다 한들 아쉬울 게 없고 그대로 쓰러져 잠든다 한들 나무랄 게 없다.

오후 4시를 넘어서야 비로소 느릿느릿 매실 밭으로 발길을 옮긴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그래도 어쩌랴. 불콰해진 술기운에 용기가 솟고 백일 뒤 맛볼 매실차 생각에 힘이 솟는다.

매실은 재래종이어서 씨알이 작다. 몇 년 사이 가장 흉작이라는 형의 너스레를 귓등으로 들으며 낮은 가지를 끄집어 당기고 높은 가지에 매달린다. 어깨가 아파져 오고 다리는 저리고 허리도 욱신거리는데 손에 잡히는 매실의 단단함에 매료되고 이따금 씹어보는 열매 맛에 침이 절로 샘솟아 그렇게 힘든 줄 모른다. 이 일로 밥벌이하라고 하면 나는 못하겠소라고 하고 말지 싶다가, 어느 해였던지 무람없이 매실 값을 후려치던 버르장머리가 기억나 죄스럽기도 하다. 매실 수확은 한 시간 남짓 걸렸는데 목표한 10㎏이 알뜰하다.

매실은 안 따고 고기부터 굽는다.

형은 기왕 이렇게 모였으니 뽈똥(보리수)도 좀 따자 한다. 뽈똥은 붉고 굵다. 수확을 하자는 것인지 따먹고 말자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입으로 많이 넣는다. 물컹하고 달달한 맛에 정신이 번쩍 든다. 약간 쓰고 새콤한 맛이 뒤를 받쳐주니 가히 일품이다. 간식이 될지 음료가 될지 모르겠으나 약이 될 것은 확실하다.

작은 나무 한 그루와 큰 나무 한 그루에 넷이 달라붙어 붉은 보약을 훑어 따고 나니 제법 어둑해진다. 서두를 때다.

비실거리기 대마왕인 내가 매실 10㎏은 어깨에 둘러메고 10㎏은 한 손에 꽉 쥐어 잡고 보무도 당당하게 본가 대문을 연다. 뒤이어 아내가 뽈똥 바구니를 들고 입장한다. 자식 배고플까 밥과 재첩국과 생선과 미나리나물을 미리 차려 내어 놓는 모정…. 옥상에 있던 장독은 수돗가에서 애벌 씻기를 마친 뒤 예쁘게 뒤집혀 있다. 그런데 웬걸, 장독이 작아 뵌다. 하는 수 없이 더 큰 놈을 다시 갖고 내려와 씻고 불 소독을 하고 그사이 매실을 고르고 하느라 정신이 없다. 나는 아직 취중이다.

매실과 설탕을 일 대 일로 담근 것은 석 달 뒤 매실 진액으로 재탄생하여 우리 가족, 처가 가족들에게 조금씩이라도 골고루 나눠줄 것이다. 뽈똥 진액도 몇 달 뒤 추억이 되어 우리 몸속에 스미어 있는 횡천강 바람을 되살려 줄 것이다.

물컹해도 달콤한 뽈똥(보리수). /이우기

미처 장독으로 직행하지 못한 매실 일부는 어머니가 장아찌를 담그거나 매실주를 담글 것이라 하여 좀 남겨 놓는다. 그래도 남아도는 매실은 우리 아파트 베란다에서 진액으로 담가볼 참이다. 매실이 풍년이다. 몇 달 뒤엔 매실주와 매실 진액, 그리고 뽈똥 진액이 풍년일 것이다. 하루 동안 쌓은 즐거움과 씻은 피로와, 그리고 수확한 매실과 뽈똥은 아주 오래도록 입가의 미소로 맴돌고 가슴속 추억으로 발효할 것이다.

술기운과 함께 수확한 매실.

/이우기(글 쓰는 삶, 생각하는 삶 blog.daum.net/yiwoo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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