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 흐드러진 능선 한달쯤 뒤엔 철쭉 볼만


하동군 옥종면에 옥산(614m)이 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산이다. 어느 정도냐면 길에도 표지판 하나 없을 뿐만 아니라 등산 시작하는 들머리에도 아무런 안내가 없다.
옥산은 멀리서부터 지리산이 뻗어 내려오는 마지막에 해당한다. 이를테면 낙남정맥의 남쪽 끝으로, 남쪽에는 그야말로 변변한 산 하나 없이 들판에다 언덕만 떨어뜨린 채 우뚝 멈춰 선 점이라고 할만하다.
옥산은 옥종면 정수리까지 내려와 동서로 넓게 퍼지듯 벌려 섰다. 지도에서 보면 지리산쪽으로 쭉 뻗은 지겟작대기 모습을 하고 있다.
지게를 받쳐 세우는 홈이 벌어지듯이, 동쪽에 가장 높은 1봉이 있고 가운데 2봉, 서쪽에 3봉이 나란히 서 있다. 2봉에서 북쪽 지리산으로 거슬러오르며 맺혀 솟은 데서는 사람들이 패러글라이딩을 한다.
하동 원점삼거리에서 옥종불소유황천 또는 마곡으로 가는 표지판이 붙은 갈래길로 간다. 조그만 암자인 수정암을 알리는 촌스러운 표지판이 나오는데 여기가 등산의 기점이다.
콘크리트길로 들어서서 옥산을 보면 마치 어머니가 치마폭을 펼친듯이 늘어서 있다. 치마 골을 따라 골짜기가 여럿 패어 있지만, 들판을 적시는 물줄기는 하나로 모여 흐른다.
등산길 군데군데 아무리 가뭄이 극심해도 마르지 않는다는 내옥샘이나 옥산샘이 있는 것도 이처럼 골짜기가 깊은 때문이지 싶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어린 새끼를 감싸 안으려고 날개를 양쪽으로 펼친 어미새 같다는 말도 한다.
옥산은 봄철 진달래와 철쭉이 진국이다. 마을 오른쪽 대숲 우거진 데 저수지 뒷길로 오르는 길이 등산객을 진달래 밭으로 곧장 데려가 준다.
널찍한 길을 20여 분 오르면 밤밭과 솔숲 지나 작은키나무들이 모여사는 데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진달래 군락이 시작된다.
진달래란 놈은 원래 철쭉과 달라 빽빽하게 촘촘하게 우거지지 않는다. 게다가 색깔까지 짙지 못해 번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사람들은 화끈한 맛이 없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진달래를 보는 맛은 바로 여기에 있지 않겠나. 아른거리는 모양이 남먼저 봄을 알리려다 그 차가운 기운에 시달리는 느낌을 주다 보니 참으로 애절한 것이다.
산은 한 번 꺾였다가 다시 이어진다. 꺾이는 데까지 쉬지 않고 오르면 20여 분 걸리고 여기서 숨을 고른 다음 10분이면 산마루에 닿는다.
산불감시초소 뒤편에는 요즘 보기 드물게 할미꽃이 무리지어 있다. 옆에 있던 한 아이가 반가워하며 달려들었는데, 한편으로는 옥산이 알려지면 할미꽃이 남아날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 오던 길로 되짚어나가도 되고 길 따라 계속 나아갈 수도 있다. 2봉을 향해 가려면 헬기장을 거쳐 솔숲 우거진 임도 따라 5분쯤 가다가 왼쪽에 있는 좁은 오솔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전혀 가파르지 않은 길 따라 슬금슬금 오르면 2봉이 나오고 왼쪽으로 계속 가면 3봉으로 이어진다. 대신 오른쪽으로 틀면 낙남정맥 줄기를 타는 셈인데, 패러글라이딩하는 데까지 가려면 빼곡하게 들어찬 철쭉을 헤치고 20여 분 가야 한다.
늦어도 한 달 뒤면 여기 이 철쭉이 무섭게 피어날 것이다.
황매산.화왕산 등 다른 산은 어디 할 것 없이 드넓은 평원에 붉은 철쭉을 자랑하겠지만, 여기 옥산 철쭉은 능선을 따라 수km 이어지면서 소나무.참나무와 어울려 봄산을 태울 것이다.



△가볼만한 곳 - 포은 정몽주 선생 기리는 옥산서원

옥산에 오르는 들머리는 정수리 정수마을이다. 마을 앞뒤로 아주 큰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보통 시골 마을 대숲은 기와집 하나 정도 감싸안을 뿐이지만 여기 대숲은 마을을 통째로 두를 정도로 크다.
그 바로 옆 영당마을에 옥산서원이 있다.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47호로 지정됐는데 태종 이방원에게 맞아 죽은 고려의 충신 포은 정몽주를 기리려고 영일 정씨 집안에서 1830년 세운 서원이다.
포은의 학문과 덕행.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곳답게 규모가 상당한 편이다. 1965년 지금 자리로 옮겼는데 서원 안에는 제사를 지내는 사당과 영정을 모신 영각은 물론 가르침과 배움을 주고받은 강당, 유생들 숙소인 동재.서재도 있다. 또 장판각에는 포은의 문집 판각 500여 판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보다 집 뒤에 있는 휘어진 소나무 몇 그루가 더 눈길을 끈다. 멋지게 굽은 소나무 왼쪽으로 대숲이 이어지는데 바로 이웃 정수마을을 감싸는 대숲과 이어진다. 이 사이에 조그만 연못이 있는데 오가는 이들 눈에 띄지 않아 호젓하기만 하다.
식구들끼리 나왔으면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으니 잠시 쉬었다 가거나 산책을 즐겨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하동 옥종의 자랑은 또 있다. 바로 불소유황천으로 옥산 바로 아래 있다. 수온이 28도로 알맞고 유황과 불소.게르마늄이 섞여 있어 노인질환과 피부병에 좋다는 평을 받고 있다. 개발된 지 14년밖에 되지 않았으며 마을 이름이 청수(淸水)일 만큼 물이 맑고 깨끗하다.
길이 25m에 4레인 크기 불소유황 수영장도 갖춰져 있고 먹을거리나 놀거리도 있어서 옥산 등산을 마치고 들러 쌓인 피로를 풀기에 안성맞춤이다.
하동군 홈페이지에도 소개돼 있는 옥종불소유황천의 주인은 낙남정맥꾼이기도 해서 옥산 등산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나 정보를 미리 얻을 수도 있다.

△찾아가는 길

자가용으로 하동 옥종 옥산에 가려면 고속도로를 타거나 국도 2호선을 타야 한다.
먼저 마산.창원에서 동마산 나들목으로 들어가 남해고속도로에 올린다. 순천 방향으로 들어가 진주.사천을 다 지난 다음 곤양 나들목으로 빠져나오는 것이다.
나온 다음에는 곤양 다솔사가 있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꿔 계속 내달린다. 곧장 마주치는 원전삼거리에서 직진하면 마곡 마을과 세종.단종 태실지를 지나 왼쪽 수정암을 알리는 푯말이 나온다.
여기서 왼쪽 안으로 쑥 들어가서 알맞은 장소에 차를 세운 다음 오른쪽 마을 대숲 뒤쪽으로 해서 올라가면 된다. 들판에는 쑥이나 냉이말고 쑥부쟁이와 씀바귀도 많으니 재게 발을 놀려 일찍 내려와 캐 담는 것도 괜찮겠다. 아니면 아스팔트길에서 가는 방향으로 조금 더 나가 옥산주유소에서 차를 세워도 된다.
물론 국도 2호선을 타고 가도 된다. 마산 진전면과 진동면이 갈라지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들어 달리는 것이다. 오밀조밀한 풍경들과 가깝게 내려앉은 집들이며 정겨운 맛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이처럼 고속도로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새로운 기분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시간이 더 걸리는 단점이 있다. 경상대학교 근처이긴 하지만 도심을 다시 거쳐야 하는 것도 갑갑하다.
다음으로는 시외버스를 타는 것이다. 진주에서 옥종까지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40~50분마다 차가 다닌다. 진주시외버스터미널(055-741-6039) 아저씨는 1시간 남짓 걸릴 것이라고 하는데 글쎄, 거리로 봐서는 넉넉잡아도 40분 안쪽일 듯 싶다. 마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는 5분마다 한 대씩 진주로 가는 차가 있다는 것은 다 아실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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