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업자 우즈벡 노동자 4명에게 주급 동전으로 줘…동전 뒤섞어버리고 짓밟는 등 '모욕'행위도

한 건축업자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밀린 급여 440만 원을 모두 동전으로 바꿔 지급하는 일이 또 벌어졌다. 무려 100원 짜리 동전 1만 7505개, 500원 짜리 동전 5297개였다.

경남의 한 소도시 건축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노동자 '존' 씨 등 동료 4명은 지난 9일 오후 5시 20분께 업주 장모 씨로부터 그렇게 밀린 급여를 받았다.

존 씨는 "사장님이 여러 개의 자루에 담아온 동전을 컨테이너 사무실 바닥에 모두 쏟아붓고 발로 밟으며 500원 짜리와 100원 짜리를 모두 뒤섞어버렸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모욕적인 말도 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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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인 노동자들이 합숙하는 방에서 동전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우즈벡 노동자 존 씨

이들 노동자는 바닥에 흩어진 2만 2802개의 동전을 다시 자루에 쓸어담고 라면박스에 담아 그들이 합숙하고 있는 원룸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밤새워 동전을 헤아리며 다시 분류했다.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하루 13시간을 일하며 번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달라고 했을 뿐인데, 왜 우리가 이런 모욕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날이 밝자 이들은 평소 단골로 이용하는 슈퍼마켓 주인에게 지폐로 환전해달라며 도움을 청했다. 슈퍼마켓 주인은 이들과 함께 동전을 승용차 트렁크에 싣고 인근 농협과 은행 지점 등 네 군데를 돌았으나 "동전이 너무 많아 환전해줄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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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인 노동자들이 급여로 받은 동전./우즈벡 노동자 존 씨

결국 창원에 있는 한국은행 경남본부까지 가서야 어렵게 환전할 수 있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우즈베키스탄 출신인 존 씨와 동료 3명은 최근 4년 간 경남의 소도시와 농촌지역 건설현장이나 농장에서 일을 해왔다. 현지 주민은 "동남아시아 노동자나 한국인과 달리 우즈베키스탄 노동자들은 근력도 훨씬 강하고 성실해 현장에서 많이 찾는다"고 전했다.

그러다 지난 5월 16일부터 건축업자 장 씨와 약 한 달 동안 일을 하기로 했다. 아침 7시부터 오후 7~8시까지 일하고 주급으로 급여을 받기로 했다. 그러나 업주 장 씨는 주급을 차일피일 미루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6월 7일 역시 주급을 주기로 한 날이었으나 급여를 주지 않았다. 8일에도 주급을 주지 않자, 존 씨 등은 9일 현장에 출근하지 않았다. 이에 업주 장 씨가 따지자 "급여를 주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9일 오후 장 씨가 그런 방법으로 급여를 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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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작업 중인 동전./우즈벡 노동자 존 씨

도대체 업주 장 씨는 왜 이런 일을 벌였던 것일까? 장 씨는 경남도민일보와 통화에서 "건축주의 공사대금 결제가 늦어지면 하루 이틀 밀릴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일을 펑크 낸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내가 그동안 술도 사주고 고기도 사주면서 잘해줬는데, 그런 짓을 하니 화가 나서 그랬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내가 오죽했으면 차를 몰고 은행지점 6곳을 돌면서 3시간 동안 동전을 바꿨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한국은행 경남본부는 업무마감시간인 오후 3시 30분 직전에 도착한 이들의 동전을 4명의 직원이 붙어 45분간 분류기를 통해 계산한 끝에 440만 원을 5만 원권으로 바꿔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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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행 직원 4명이 동전 분류기를 통해 분류작업을 하고 있다./김주완 기자

이 은행 환전 관계자는 "30년 넘게 은행 일을 하면서 이런 식으로 급여를 준 것은 처음 본다"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사연을 듣고 나니 너무 마음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한국은행은 이들 노동자에게 칫솔·치약세트와 물티슈를 기념품으로 전달하며 위로했다.

존 씨는 "우린 고기 안 사줘도 좋으니 급여를 달라고 했을뿐이에요. (한국인 업주 가운데) 이런 사장님은 처음이에요. 장 사장님과는 일을 안 하기로 했어요. (농장에서) 양파나 마늘을 할 거예요"라고 서툰 한국어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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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은행에 가져온 동전 박스./독자 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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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행 화폐 교환내역./임종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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