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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스토리텔링] (20) 성스러운 이야기를 함께 만드는 여정

스토리텔링은 동사다

김태훈 지역스토리텔링 연구소장 webmaster@idomin.com 입력 : 2016-06-09 17:05:01 목     노출 : 2016-06-09 17:12:00 목

우리나라에서 '스토리텔링'이란 말이 근사한 이미지로 들리기 시작한 때는 대략 1990년대 후반부터였다. 좀 더 범위를 좁히면 1998년 2월에 개봉해 큰 인기를 모았던 <타이타닉>이 하나의 분수령이 됐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 경제는 그때 IMF라는 재앙을 맞고 심각하게 휘청거리고 있었다. 실정을 한 신한국당은 전년 대선에서 패했고, 새천년민주당의 김대중이 새로운 대통령으로 당선돼 막 취임을 앞두고 있던 참이었다.

영화 <타이타닉>은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세계 전체에서 20억 달러(약 2조 원)가 넘는 흥행성적을 올렸고, 국내에서도 197만 명이 영화관을 찾았다. 지금이야 천만 영화가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200만에 육박하는 관객수는 어마어마한 성적이었다.

영화 한 편으로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린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IMF로 궁지에 몰린 우리들 눈에 일종의 판타지로 보였다. 영화가 한창 흥행할 때 임기를 시작한 김대중 정부도 <타이타닉>의 흥행을 외면할 수 없었다. 새로 시작한 정부의 지상과제는 누가 뭐라 해도 'IMF 탈출'이었다.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무자비한 구조조정을 포함해 무슨 짓이라도 할 태세였다.

그때 김대중 정부가 앞세운 캠페인이 바로 '신지식인'이었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자산은 사람이기에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해서 난국을 이겨나가자는 메시지였다. 초고속통신망을 전국에 깔아 벤처 열풍을 일으키면서 동시에 <타이타닉> 같은 세계적인 흥행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문화산업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렇다면 <타이타닉>의 성공 비결이 무엇일까? 바로 '스토리텔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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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직후 우리나라에서 스토리텔링 담론을 확산시키는 데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해준 영화 <타이타닉>.

돈벌이용 스토리텔링의 한계

"스토리텔링이 좋으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믿음은 이렇게 시작됐다. <타이타닉> 열풍이 있고 꼭 1년 뒤 우리 영화인 <쉬리>(1999)가 터졌다. 곧이어 <해리포터>(2001)와 <반지의 제왕>(2002)이 극장가를 휩쓸었고, <실미도>(2003)와 <태극기 휘날리며>(2004)는 관객 천만 시대를 열어 젖혔다. 심형래를 신지식인 1호로 선정한 것은 결과적으로 패착이었지만, 우리 민족에게 탁월한 이야기꾼 유전자가 실제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이 재능을 잘 살리면 경제적인 도약도 이내 이룰 것만 같았다.

스토리텔링이 보여준 화려한 변화는 이내 다른 분야로 퍼져나갔다. 프리젠테이션을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서, 광고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수업의 효과를 높이려고, 설득력 있는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서 이른바 '스토리텔링 기법'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전국의 도시들도 이 도식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이때부터 모든 축제에 '스토리텔링'이란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이야기 거리가 되는 관광 자원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물론 이런 주장들에 근거가 없지는 않다. 사람의 행동은 정보나 논리보다는 감성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그 감성을 흔드는 데 최적화된 소통방식이 바로 이야기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좋은 이야기가 감성을 흔든다'는 명제가 '좋은 이야기가 그래서 돈을 많이 벌게 해준다'는 주장을 뒷받침하지는 않는다. 이야기는 역설적이게도 이해관계와 무관할(무관해 보일) 때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지자체들은 스스로 돈을 벌려고(경제활성화)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다 말한다. 목적이 뻔히 보이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이야기에 대중들은 과연 얼마나 반응할까? 스토리텔링을 거창하게 내세웠지만 막상 기대만큼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스토리텔링은 도시의 본질

그렇다면 '도시를 스토리텔링한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돈벌이에서 자유로운 스토리텔링이 도시라는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사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인류가 태고적부터 가지고 살아왔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들이 지구별을 지배하게 된 결정적인 능력을 바로 스토리텔링(허구를 이야기하기)에서 찾았다. 생존 또는 일상과 무관한 허구를 통해 놀랍도록 유기적인 대규모 협력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가 말한 유기적 협력이 물리적인 공간으로 표현된 것이 바로 '도시'다. 도시는 수많은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모여 고도로 협력해야 비로소 생존할 수 있는 곳이다. 사실 자연상태 속에서 수많은 개체가 한 군데 모여 사는 것은 이득보다 위험이 훨씬 많다. 특히 자연재해나 전염병 같은 재앙이 덮치면 몰살을 피하기 어렵다. 실제 인류는 페스트, 콜레라 같은 전염병으로 엄청난 희생을 치른 경험을 여러 차례 갖고 있다. 그러나 인류는 결코 도시를 포기하지 않았다. 대신 도시는 갈수록 규모를 키웠고, 더 정교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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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의 도시 차탈휘육(터키 코냐 지역)에서 발굴된 모신상은 우리가 흔히 아는 비너스의 할머니 뻘이 되는 것으로 당시 주민들이 믿고 공유했던 '이야기'를 상징한다.

기원전 7,5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인류 최초의 도시 유적 차탈휘육에는 적어도 4,000명 이상의 주민이 함께 산 것으로 추정된다. 일정한 무리수를 넘기면 갈등하고 분열하는 다른 고등 동물종들과 달리 인류는 어떻게 수천 명씩 모여 오랫동안 도시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바로 공통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통해 '우리'라는 정체성을 세우고 도시를 지키기 위해 협동해야 할 이유를 만들어낸 것이다.

유적지에서 발굴된 인류 최초의 모신상은 차탈휘육 시민들이 어떤 이야기를 믿고 살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차탈휘육의 모신(이야기)을 숭배하는 사람은 시민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외부인으로 규정된다. 모신 이야기에서 비롯된 규범은 공동체가 반드시 지켜야 할 규율과 질서가 된다. 그 질서에 도전하는 구성원은 제거되거나 추방된다. 자연재해든 전쟁이든 도시의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이 벌어질 때 구성원들이 목숨 걸고 저항하는 근거 또한 바로 이야기다.

요컨대 도시는 스토리텔링 때문에 비로소 존재하는 결과물이다. 도시의 본질이 바로 스토리텔링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도시의 스토리텔링 활동은 지금 우리가 흔히 쓰는 관광사업용 스토리텔링 사업들보다 훨씬 깊이 있고 폭넓게 이해될 필요가 있다. 도시가 도시로 살아가기 위한, 시민이 도시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근본적인 의제로 스토리텔링을 접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이야기'는 특별한 것이어야 한다. 흥미 있다고, 눈길 끈다고 도시의 대표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차탈휘육의 모신상처럼 공동체의 기원 또는 정체성을 규명해주는 '성스러운 이야기'여야 한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신화나 설화가 여기에 해당된다. 그렇다고 마냥 과거 이야기만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현대인들도 일상 속에서 만나는 매우 특별한 이야기나 존재에 신화라는 별명 붙이기를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시 스토리텔링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도시 스토리텔링이란 도시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결속을 다지기 위해 사용되는 '성스러운 이야기'를 공동체 내부에 확산하고 내면화하는 일체의 활동"이라고.

과거 신분 차별이 명확했던 사회에서는 지배자의 가문 이야기가 바로 공동체의 성스러운 이야기 노릇을 했다. 길가메시 서사시부터 단군신화에 이르기까지 지도자라면 하나같이 '반인반신'으로 설정된 것도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장치였다. 비교적 최근 사례로는 고려를 무너뜨린 이씨 가문의 정당성을 설파한 <용비어천가>도 있다. 그 가문의 뿌리가 깊고 샘이 깊기에 고려를 무너뜨릴 만했다는 것이다.

지배 세력은 이 성스러운 이야기를 공동체 전역에 전파하고 내면화시키기 위해 각종 제도를 정비하고 정기적으로 의례를 행했다. 세종이 정간보를 비롯해 궁중음악까지 손댄 것은 왕족으로서의 교양을 과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조선의 성스러운 이야기를 보다 완벽하게 전파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도시의 지배구조를 시민의 투표로 결정하는 민주 사회에서는 도시의 성스러운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더 이상 독점적인 지배계층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 어떤 이야기가 도시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성스러운 이야기로 대접받아야 할까? 이번 글로 연재를 마무리하면서 현대 도시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몇 가지 요소들을 다시 한번 정리해보자.

이야기로서의 도시 정치

과거의 성스러운 이야기가 지배자의 가문 이야기였다면 오늘날 민주화된 도시의 성스러운 이야기는 시민의 힘으로 새로운 권력체제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다루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특정 계급이나 신분에 예속됐던 권력을 해체하고 시민들이 도시의 주인으로서 명확하게 자리 잡는 과정을 다룬다면 공화국의 도시를 살아가는 시민에게 적합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예를 들어 마산과 부산의 부마항쟁 이야기, 광주의 민주화운동 이야기 등이 바로 현대 도시들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성스러운 이야기가 아닐까?

억압적인 국가 권력에 대항해 시민의 권리를 찾아오는 이야기만큼이나 중앙집중화되는 국가권력에게서 자치권을 확대해가는 과정도 현대 한국 도시의 중요한 이야기 과제다. 해방 후 우리나라는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 시대를 거치며 철저하게 지방자치를 억압받다가 문민정부에 들어서면서 부분적으로 자치권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제도적으로나 세제상의 문제로 자치의 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 시 예산의 상당 부분을 중앙정부에 의존하고 있어서 도시만의 독자적인 스토리를 만들어내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자치의 공간을 넓혀가려는 시도는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의 3대 무상복지정책인 '공공산후조리지원, 무상교복, 청년수당' 등은 여러 비판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성남시만의 독자적인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평가할 만하다. 올해 4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발표된 '시·군조정교부금 배분 방식과 법인지방소득세 개편 계획'이 지방재정을 파탄내는 개악안이라며 집단 반발한 경기도 6개 시(수원, 고양, 성남, 용인, 화성, 과천) 시장들의 집단행동도 자치를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다.

시민의 참여와 자치를 확대해가는 일련의 정치활동은 이처럼 현대 도시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핵심적인 자원이고 이야기의 원천이다. 따라서 그 중심에 선 정치인은 시민과 함께 도시의 성스러운 이야기를 창조하는 핵심적인 스토리텔러라는 자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의 사대부가 역사에 기록될 평가를 두려워하며 언행을 삼갔던 것처럼 현대 정치인은 도시공동체의 성스러운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는 저자의 사명감으로 정치활동에 임해야 한다.

예술과 체육은 도시 이야기의 용광로

도시 간의 갈등과 전쟁이 현저하게 줄어든 현대 사회에서 예술과 체육은 시민을 하나의 이야기로 묶는 효과적인 소재가 된다. 걸출한 엘리트 예술가는 정치인 못지않은 영향을 미치며 시민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될 수 있고, 합창과 공동체 춤 같은 참여형 예술활동도 공통의 경험과 이야기를 내면화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체육 활동도 시민 스스로가 공동체성을 각성하는 효과적인 채널이다. 프로야구나 축구 같은 인기 엘리트 스포츠를 통해서 도시 간 경쟁 구도와 영웅과 역적이 출몰하는 역동적인 이야기 구조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사회 체육을 통해서는 상당수의 시민들이 무대 위에서 주인공이 되는 소중한 경험을 체득하기도 한다.

이처럼 예술과 체육은 시민들에게 구체적인 경험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도시 스토리텔링에 없어서는 안 될 자원이라고 볼 수 있다. 바로 이런 특징 때문에 19세기 유럽에서 국민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 다양한 민족 각성운동이 전개될 때 예술과 체육이 핵심적인 프로그램으로 활용됐던 것이다.

이 점을 감안한다면 오늘날의 문화예술 및 체육 정책에 대한 관점 또한 상당 부분 보완될 필요가 있다. 예술복지, 건강증진, 문화향유와 같은 분야별 정책 목표는 여전히 유효하겠지만, 이 모든 활동들을 통해 시민들이 궁극적으로 도시의 공동체성을 각성하고 결속력을 다지는 결과를 내기 위한 보다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이야기의 주체가 되는 기업과 시민

아울러 도시 이야기의 주체로서 기업과 시민이 당당하게 자기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지역에 뿌리를 내린 기업은 단순히 지방세를 내는 수준에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도시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때로 창조하기도 하는 주체, 그리고 도시의 핵심 스토리텔러로서 자기 발견을 할 필요가 있다. 경제적인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현대사회에서 도시 내 기업의 역할과 비중은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시민의 발견도 중요한 과제다. 도시 공동체는 자치정부의 일방적인 행정이 아니라 시민의 협조와 때로 자발적인 헌신을 기반으로 유지되고 생존한다. 특히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에서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한 시민들을 기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공동체의 성스러운 이야기로 채택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기존의 과거지향적 향토사는 새로운 현실지향적 시민사로 보완될 필요가 있다.

도시를 스토리텔링할 때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은 바로 지금 우리가 우리 도시의 성스러운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특정 이야기를 포장하고 유통시키는 것이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지금 시민과 기업들이 한 마디 한 마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도시 스토리텔링이라는 사실이다. 시민과 기업이 도시 이야기를 만드는 스토리텔러이기에, 그들의 선택과 행동은 엄중할 수밖에 없다. 그 도시만의 성스러운 이야기를 함께 만들며 완성하기를 원하는 공동체가 바로 바람직한 도시 공동체 아닐까?

성스러운 이야기를 구현하는 축제와 랜드마크

최근 지역 축제가 벌어지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잡음이 많이 들려온다. 지난해에는 진주 유등축제가 가림막으로 시끄럽더니 올해는 27년간 지속된 거창국제연극제가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이들 갈등의 밑바탕에는 축제를 하나의 사업으로만 보는 시각이 자리 잡고 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처음 스토리텔링이란 말이 확산되며 'IMF 탈출'이란 경제적인 목표에 결부된 것처럼 지역 축제 또한 돈벌이용 상품으로 변질된 것이다.

축제가 고유의 성스러운 가치를 버리고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할 때 이해를 달리하는 집단 간에 벌어지는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축제를 통해 만들어진 금전적 이득을 더 많이 차지하려는 다툼은 자연스러운 행동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공했다고 유명세를 탄 축제일수록 다툼의 정도는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진주 유등축제와 거창 국제연극제는 그 점에서 비슷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랜드마크에 대한 욕심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도시와 차별화된 자기 상징을 가지려는 욕구는 당연하다. 그러나 자기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부족할 때 도시 정부가 추구하는 랜드마크는 대부분 물리적인 크기와 규모 혹은 '최초'에 집착한다. 그런데 이런 랜드마크는 자충수가 될 확률이 높다. 설령 최초와 최대를 달성하더라도 머지않아 그 자리는 다른 도시에 뺏길 수밖에 없고, 그래서 고유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유행을 쫓는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축제든 랜드마크든 도시공동체의 성스러운 이야기에 집중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른 도시에 없는, 도시 정체성의 골간을 이루는 바로 그 이야기에서 축제의 의미도 찾고 랜드마크의 상징도 발견해야 한다. 다시 말해 도시의 성스러운 이야기를 정기적인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킨 것이 축제이고, 물리적인 조형으로 표현한 것이 랜드마크여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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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팎으로 성공적인 축제라고 높이 평가 받았던 남강유등축제와 거창국제연극제는 최근 축제의 주체가 누군지에 대한 갈등이 불거지며 이해를 달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사진은 진주유등축제 모습./경남도민일보DB

스토리텔링은 동사다

우리나라 도시들은 제법 긴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유의 자기 정체성과 독자적인 문화를 가진 곳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일제시대와 내전이라는 극심한 단절과 지방자치를 짓누르며 오랫동안 지속된 독재정치, 그리고 수출주도형 중공업을 육성한다는 이유로 편중됐던 지역 발전 등의 문제가 누적되면서 지역 스스로가 '자기 이야기'를 만들어갈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허약한 기반 위에서 어렵게 시작된 지방자치는 25년 가까이 조급증에 시달리고 있다. 4년이라는 짧은 임기에 눈에 띄는 성과를 내려다보니 대다수 도시의 문화 정책들이 근시안적이거나 표피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토대 위에 만능열쇠처럼 등장한 스토리텔링은 너무 쉽게 '돈벌이 수단'으로 오남용됐다.

스토리텔링, 즉 이야기하기는 말 그대로 동사여야 한다. 과거 어느 시점과 인물에 고정된 명사가 아니라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만들어가야 하는 그 어떤 것이어야 한다. 도시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성스러운 이야기를 함께 완성해가는 그 모든 여정이 바로 도시의 스토리텔링이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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