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동 현대 아파트 이웃 여러분 오랫동안 여러분의 이웃으로 지냈던 다빈이네 가족의 김재교, 윤은주, 김다빈, 다휘입니다. 집이 언제 팔릴까 걱정했는데 막상 이사를 가려니 서운하고 아쉽네요.

아이들이 어릴 때 이곳에 와서 무척이나 많은 추억을 만들며 참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 많은 아이들 어릴 때 추억들을 두고 가는 것 같아서 아쉽네요. 하지만 17년을 한 곳에 지내서 이제 떠날 때가 되었나 봅니다. 이삿짐을 싸면서 사진을 한 장 발견했습니다.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눈이 엄청나게 내린 겨울, 아주 꼬마인 두 아이가 눈사람 만들고 놀며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어느 사이에 세월이 이만큼이나 달음질쳐 갔는지 뒤돌아보았습니다.

엘리베이터 버튼에 손이 닿지 않아 발판에 올라가서 눌러야 했던 딸아이가 스무 살이 되었으니 참 오래 살았네요.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좋은 이웃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이제 우리 집에는 신혼부부가 이사 옵니다. 우리가 행복했던 것처럼 이 부부도 행복하게 살았으면 합니다. 여러분이 많이 도와주세요.

다시 한 번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601호 가족 드림."

이 편지를 아파트 엘리베이터와 게시판에 붙이니 비로소 실감이 되었다. 지난 토요일에 이사를 했다. 큰아이 여섯 살, 작은 아이 세 살 때부터 스무 살이 넘도록 살았더니 눈을 감아도 그곳의 모든 것들이 훤히 떠오를 만큼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새로운 삶을 찾아서. 더 좋은 일을 기대하며 집을 떠나면서도 오래 정든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이 자꾸 나를 끌었다. 남편이 추억을 두고 가는 것이 가장 아쉽다고 하기에 추억은 두고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보물 창고에 간직하는 것이라 말했지만 나 역시 자꾸 어렸던 두 아이의, 그리고 지금보다 훨씬 젊었던 우리 부부의 손때 묻은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 보았다. 내가 살았던 집이 마치 사람이라도 되는 양 두고 오는 것이 내내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남편은 우리가 좀 더 재테크를 해서 이사를 자주 다녔으면 돈을 벌었을 것이라 하지만 나는 이웃들과 정을 주고받으며 살 수 있었던 시간이 돈보다 더 소중하게 여겨진다. 은행 통장에 잔고가 느는 것도 좋으나 마음의 통장에 추억이 쌓이는 것은 더 좋은 일이라는 게 내 생각이기에 우리는 그곳에서 마음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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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을 들은 9층의 할머니가 추어탕을 끓여 들고 오셨다. 서운해하는 할머니의 눈빛에 뭉클, 가슴에 요동이 일었다. 할머니의 추어탕으로 그곳에서 마지막 밥을 먹고 가끔 놀러 오겠다는 인사를 남겼다.

삶은 늘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 이런 이별이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닐 것이다. 더욱이 유목민 같은 현대인의 삶에서 이사 한 번이 무어 특별하랴. 하지만, 이런 아쉬움을 가질 수 있는 것 또한 행복이리라. 새로운 삶, 마음의 통장에 또 어떤 추억이 쌓일까.

/윤은주(수필가·한국독서교육개발원 전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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