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언론계 선배 세 분이 마산에 왔습니다. 여기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7주기 추모제에 참석하는 일정이었습니다.

한나절 동안 마산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곳이 어딜까 고민하다 첫 행선지로 3·15의거 국립묘지를 택했습니다.

분향대에서 묵념을 하고 김주열 열사를 비롯한 희생자들의 묘를 둘러봤습니다. 모두들 잘 왔다고 칭찬해주었습니다.

참배를 마치고 기념관에 들렀습니다.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와 이에 항의하는 마산시민, 그리고 3월 15일 1차 항쟁과 경찰 발포 및 학살, 4월 11일 마산 중앙부두에 떠오른 김주열의 참혹한 시신, 분노한 시민의 2차 항쟁, 4·19혁명으로 이어지기까지 과정 등을 잘 관람했습니다.

또한 대개 이런 기념관의 전시물이 시위대의 희생과 무용(武勇)을 강조하지만, 가해자에 대한 단죄는 빠져있는데, 3·15의거기념관에는 가해자들의 명단과 죄상이 기록되어 있는 것도 칭찬을 받았습니다. 거기 적혀 있는 가해 기록이 제가 쓴 글이라며 자랑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이었습니다. 마지막 전시 패널에 정말 황당한 내용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3·15의거 이후 우리나라의 발전상'이란 제하의 글은 이랬습니다.

"시대적인 변화를 바탕으로 박정희 정부는 1962년부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여 '한강의 기적'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우리 경제는 고도성장을 이룩하여 오늘날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되었으며, 여기에 더하여 파독광부와 간호사, 베트남 파병으로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한 것도 큰 역할을 하였다.

3·15의거가 우리나라 민주발전의 씨앗이 되어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꽃피웠으며, 박근혜 정부를 맞아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단절과 갈등, 분단의 70년을 마감하고 신뢰와 변화로 북한을 끌어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통일기반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

부정선거에 항거한 3·15의거와 4·19혁명에 박정희와 박근혜가 무슨 관계가 있으며, 파독 광부와 베트남 참전은 또 웬 말이란 말입니까.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다들 한 마디씩 욕지기를 하며 전시실을 나서는데, 출구 벽면을 다 채울 만큼 커다란 박근혜 대통령 사진이 붙어 있는 게 아닙니까? 일행 중 한 분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아니, 부정선거에 항거한 3·15기념관에 어떻게 대통령 낯짝이 떡 하니 붙어 있을 수 있어!"

마산 사람으로서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화가 났습니다. 제가 작년 1월 거기에 갔을 땐 저게 분명히 없었습니다. 그 사이 국가보훈처가 현직 대통령에게 아부하기 위해 저런 견강부회를 저질렀을 겁니다. 후안무치한 일입니다. 저런 전시물 설치에 동의한 3·15의거기념사업회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염치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이렇듯 염치 없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행정을 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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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온 손님들을 배웅하면서 제가 쓴 책 <별난 사람 별난 인생 그래서 아름다운 사람들>을 선물했습니다. 돌아가는 기차 속에서 그걸 다 읽었던 모양입니다. 이런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습니다.

"3·15기념관에서 잡쳤던 기분, 별난 사람 별난 인생을 읽으며 마음의 위로를 받았소.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발굴해줘서 고맙소."

어쨌든 그랬다면 다행이지만, 3·15기념관 안의 생뚱맞은 전시물과 사진은 하루빨리 철거해야 합니다.

편집책임 김주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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