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아가씨 어찌 그리 예쁜가요? 아가씨 그윽한 그 향기는 뭔가요? 아~ 아카시아 껌'

광고 음악으로 더 유명해진 아카시아 껌은 1976년에 처음 출시되어 '여성은 향기로 말한다'라는 문구로 20·30대 젊은 여성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동시에 사람들에게 아카시아 향기의 존재를 제대로 각인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그 시절 새파랗게 젊은 여성이었던 '청초한 아가씨'들은 이제 60·70대가 되었다. 1976년은 대한민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이 탄생한 해다. '레슬링 양정모, 민족의 숙원 이룩!' 캐나다 몬트리올 하계 올림픽 소식이다. 새마을 운동이 일어난 지 6년쯤 후의 일이다. 1976년에 있었던 대한민국 최초의 역사적 사건은 또 하나 더 있다. 우리나라가 산유국이 된 것이다. 포항에서 원유가 나온다는 기자회견도 열렸다. 주가는 폭등했고 전 국민은 열광했다. 강대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의 미래상을 그려 보며 꿈에 부풀었던 시절이었다. 그것이 비록 조작질로 인한 거품으로 끝날지라도… 그러고 보니 조작질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게 자행되고 있다. 그래서 역사는 간혹 우리를 슬프게 한다. 변하지 않는 건 나무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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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책로의 아까시나무. /윤병렬

1970년대 시골은 아직도 절대 빈곤에 허덕이던 시절이었다. 학교를 마치면 아이들은 해 질 녘까지 들로 산으로 정신없이 쏘다녔다. 먹을 수 있는 열매는 죄다 따서 먹었다. 칡뿌리를 캐서 껌처럼 씹어 먹기도 했다. 그때 그 시절. 오월 어느 날 배고픈 아이들 간식거리 중 하나가 바로 아카시아 꽃이었다. 상큼 달콤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약간 비릿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간혹 벌레가 나오기도 했지만 배고픔을 해결하는 게 먼저였다.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폈네. 하이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 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보며 생긋. 아카시아 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 길.'

박화목 작사, 김공선 작곡의 동요 '과수원 길' 가사다. 사람들에게 아카시아의 존재를 확실하게 기억시킨 노래다.

그런데 우리가 아카시아로 기억했던 그 아카시아는 진짜 아카시아가 아니라 가짜 아카시아였다. 진짜 아카시아는 오스트레일리아가 원산지다. 열대 지방에 사는 나무다. 꽃도 노란색이고 독성이 있어 먹을 수도 없다 한다.

반면 우리에게 익숙한 가짜 아카시아는 북아메리카가 원산지다. 온대 지방에서 살아가는 나무다. 본명은 아까시나무다. 아카시아와 아까시나무는 콩과 식물이라는 것 빼고는 전혀 다른 나무다. 지금까지 아카시아로만 기억했던 그 추억 속의 나무가 가짜 아카시아였던 것이다. 아까시나무의 종소명 '슈도아카시아(Psue-Doacacia)'는 '가짜 아카시아(False Acacia)'란 의미다. 아까시나무의 일본 이름은 '니세아카시아'다. '니세'는 '가짜' 또는 '거짓'이란 뜻이다. 일본 말 니세아카시아를 다시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아카시아로 부르다가 그냥 아카시아로 이름이 정착되었다는 것이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땐 꽤나 당황스러웠다.

어쨌든 여러 학자들 견해에 따르면 아까시나무는 구한말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도입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무렵부터 가짜 아카시아를 진짜 아카시아인 것처럼 부르게 된 것이다. 일본식 이름을 달고 있는 식물이 한둘은 아니지만 아까시나무는 좀 특별하게 느껴진다. 어린 시절부터 늘 봐왔던 친근한 나무라 더욱 그렇다. 약간 혼란스럽긴 하지만 지금부터는 아까시나무로 기억해야 한다.

아까시나무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산림청에 따르면 한국 전쟁 이후 농촌 연료를 해결하기 위한 계획 사업으로 아까시나무 조림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60·70년대 황폐한 민둥산을 복구하는 사방 사업 때도 많이 심었다. '국민학교' 시절 학교 뒷산에 올라 송충이도 잡고 아까시나무도 심었던 기억이 난다.

아까시나무와 같은 콩과 식물은 뿌리혹박테리아로 질소를 고정시킨다. 비료를 주지 않아도 잘 자란다. 주변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 사는 주변의 버려진 땅, 쓰레기를 묻어 놓은 쓰레기 매립장, 산을 깎아내려 만든 임도 주변, 도로 벽면 가파른 곳에서도 잘 자란다. 알고 보면 다른 식물이 살기 힘든 척박한 땅을 개척해나가는 고마운 나무가 바로 아까시나무다. 따뜻한 섬 지방에서는 잘 자라지 못 하고 약간 건조한 땅에서 더 잘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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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까시나무 꽃. /윤병렬

또 300미터 이상 높은 산에서는 잘 자라지 못한다고 한다. 이런 아까시나무의 특성이 70년대 무렵 민둥산에서 다른 나무보다 빨리 자랄 수 있었던 비결이었던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대부분 마을 뒤 산기슭을 중심으로 아까시나무 숲이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까시나무는 버릴 게 하나도 없는 나무 중 하나다. 꽃과 잎은 무쳐 먹고, 볶아 먹고, 튀겨 먹을 수도 있다. 나물과 샐러드로 이용하기도 한다. 말린 꽃은 주머니에 넣어 침실에 걸어두면 좋다고 한다. 잎에는 비타민C가 많고 씨는 살짝 볶아 먹으면 기관지 천식을 고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꽃은 자괴화라고 부르는데 소변보는 것을 좋게 하고 어린이 중이염을 고치는데도 사용된다고 한다. 뿌리도 좋은 약재로 알려져 있다. 광복 후 80년대 까지만 해도 10대 조림 수종에 들어있을 정도로 중요한 나무였던 아까시나무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첫 번째는 가시가 많아 산행이나 농사지을 때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아~ 까시!' 나무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기 때문이다. 식물이 가시를 만드는 이유는 자신을 뜯어먹거나 해치는 천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릴 때는 큰 가시를 만들어 자신의 몸을 보호하다가 제법 큰 나무가 되면 가시가 줄어들거나 거의 없어지게 된다.

두 번째는 집 주변이나 농사짓는 곳으로 성큼성큼 내려와 밭을 망가뜨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몹시 성가신 존재가 되고 말았다. 나무 둥치를 잘라내고 뿌리를 뽑아내도 계속해서 고개를 내미는 아까시나무가 미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세 번째는 무덤 근처에 잘 침입하는 것이다. 뿌리가 옆으로 뻗어 나가는 특성 때문에 뽑아도 퇴치가 어렵고 다시 무덤 주위를 감싸게 된다. 혹시 무덤 속 조상의 관을 휘감는 것은 아닌가 싶어 자손들 속을 태웠던 것이다. 건조한 산기슭에 무덤을 조성하는 경우가 많아 더욱 그렇게 보였던 모양이다. 연구 자료에 의하면 아까시나무는 1년에 3m씩 자란다고 한다. 엄청난 성장 속도다. 땅속 뿌리도 끈질긴 번식력으로 뻗어 나간다. 그래서 '나쁜 나무'의 대명사처럼 언론에 다뤄진 적도 있다. 그리고 IMF 외환 위기 때는 '숲 가꾸기 공공 근로 사업' 시행을 통해 제일 먼저 베어지는 운명에 처해지기도 했다. 1970년대 50만ha까지 조성됐던 아까시나무 숲이 현재는 5만ha가량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아까시나무가 베어지면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양봉업계다. 사단법인 한국양봉협회에 따르면 2015년 기준 벌꿀 전체 생산량 가운데 아까시나무 꿀이 차지하는 비중은 78%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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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네 뒷산의 아까시나무. /윤병렬

아까시나무는 좀처럼 썩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비바람에 그대로 내버려두어도 20년 가까이 썩지 않는 내구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참나무보다 비중이 더 높을 뿐 아니라 무게와 충격에 견딜 수 있는 압축 강도는 1.6배에 이른다. 아까시나무 목재는 특히 유럽에서 고급 주택의 테라스나 야외 수영장 바닥재로도 사용되면서 인기가 높다고 한다. 최근에는 아까시나무의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상수리나무보다 2배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고, 항바이러스 효능도 새롭게 밝혀졌다고 알려졌다.

아까시나무는 꿀이 흐르는 나무라 해서 영어로 꿀벌나무(Bee Tree)로 불린다. 배고픈 시절 구황 식물로, 좀 살 만해졌을 땐 밀원 식물로, 궁금한 일들의 끝을 알고플 땐 잎으로 점까지 칠 수 있는 나무가 바로 아까시나무다. 알고 보면 참 고마운 아까시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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