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우해이어보](18) 전갱이

마산 진동 고현에서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의 산실인 율티 염밭마을로 가는 바닷길 중간에 선두(船頭)라는 마을이 있다. 선두마을 동쪽 끝, 뱃머리 부둣가에는 뱃사람들이 풍어와 안녕을 비는 선돌, 혹은 남근석이 있고 그 옆에는 소나무와 포구나무가 서로 기대어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나무를 연리목(連理木)이라고 한다. 두 나무가 하나로 붙은 연리지(連理枝)에 대한 설화는 원래 효자가 부모를 지극히 그리워하는 효심을 이야기한 것이었으나 지금은 남녀 간의 깊은 사랑을 비유하는 말이 되었다. 부부간의 지극한 사랑을 노래한 백거이(白居易)의 <장한가(長恨歌)>에 연리지가 등장한다.

"헤어질 때 은근히 거듭한 말 그 말은 둘만이 아는 맹서였지. 칠월칠석 장생전에서 깊은 밤 남몰래 속삭인 약속, 하늘에서는 비익조(比翼鳥)가 되고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자.(하략)"

진동 고현 선두마을 남근석과 연리목.

연리지는 상사수(相思樹)라고도 한다. 동진(東晉) 간보(干寶)의 <수신기(搜神記)>에 나오는 이야기다. "송(宋)나라 강왕(康王)이 절세미인인 한빙(韓憑)의 부인 하씨(何氏)를 빼앗았다. 한빙이 이를 원망하자 성을 쌓는 형벌을 내렸고 한빙은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 하씨 역시 한빙과 합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누대에 올라 몸을 던져 자살하고 말았다. 화가 난 왕은 두 사람을 합장하지 않고 무덤을 서로 바라보게 하였다. 그날 밤 개오동나무가 두 무덤에서 각각 나더니, 열흘 만에 아름드리나무로 자라 몸체를 구부려 서로에게 다가가고 아래는 뿌리가 서로 맞닿았다. 나무 위에는 한 쌍의 원앙새가 앉아 떠나지 않고 서로 목을 안고 슬피 울었다. 사람들은 그 나무를 상사수라고 불렀다."

선두리 바닷가의 이 나무들도 상사목(相思木)이 아닐까. 상사목 곁에서는 원앙새가 슬피 울며 밤을 지새울까.

김려의 <우해이어보>에서는 원앙새가 아닌 원앙어가 등장한다. 원앙어는 어떤 물고기일까. 원앙어에 대하여서는 그동안 많은 사람이 수많은 추측을 해 왔을 뿐 정확하게 어떤 물고기인지를 알지 못하였다. 김려는 원앙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원앙은 원앙어(鴛鴦魚)라고도 하고 해원앙(海鴛鴦)이라고도 하는데 절어 즉 납자루와 비슷하다. 입은 작고 비단 빛 비늘이며 아가미 옆 뺨은 붉고 꼬리는 길다. 꼬리의 가운데 부분이 짧아서 제비꼬리와 같다. 이 물고기는 암수가 반드시 같이 다닌다. 수컷이 헤엄쳐 가면 암컷이 수컷의 꼬리를 물고 간다. 죽더라도 떨어지지 않으니 낚시를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한 쌍을 낚게 된다. 이곳 사람들의 말로는 이 물고기를 잡으면 눈알을 뽑아 깨끗하게 말려서 남자는 암컷의 눈알을 차고 여자는 수컷의 눈알을 차고 다니는데 그러면 부부의 금실이 좋아진다고 한다. 그러나 이 물고기가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세 들어 있는 이웃의 이생(李生)이라는 사람이 일찍이 거제도의 양곡(洋曲)에 낚시를 갔다가 이 물고기를 낚아 와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물고기가 이미 반쯤 말랐는데도 꼬리를 물고 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설명 때문에 민물고기인 납자루와 비슷하게 생긴 바다의 물고기를 원앙어라고 보고 어떤 사람은 원앙어를 자리돔이라고 추측하였다. 그런데 이와는 전혀 다른 추론이 제기되었다.

2015년 마산문화원에서 개최한 '우해이어보 학술심포지엄'에서 국어학자로 고지명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이정용 선생은 '<우해이어보>에 나오는 몇 어패류 이름에 대하여'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원앙어가 전갱이라고 하였다. 즉 원앙(鴛鴦)새의 옛 우리말이 즹경이, 증경이, 징경이인 것에 주목하고, 또한 전갱이의 방언인 전광이가 전광이 → 전강이 → 전갱이로 변형된 것으로 파악하면서 원앙어가 전갱이라고 추론하였다.

원앙새를 징경이로 풀이할 수 있는 근거는 다른 곳에도 있다. <시경(詩經)> 첫머리인 주남(周南) 국풍(國風) 관저장(關雎章)을 보자.

"關關雎鳩(관관저구)는 在河之洲(재하지주)라. 窈窕淑女(요조숙녀)는 君子好逑(군자호구)라.

끼룩끼룩하는 저 징경이는 하수의 물가에 정답구나. 아름다운 숙녀는 군자의 좋은 짝이로다."

이 시에서 저구(雎鳩)를 징경이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징경이를 물수리라고 하는 사람과 원앙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서로 사이좋게 기대어 사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보아 원앙으로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물고기인 전갱이를 징갱이와 같은 발음으로 파악한 김려는 이 물고기 이름을 원앙어 혹은 해원앙이라고 풀이한 것이다. 전갱이는 '정개이'(경남) '매가리'(경남·전남) '각재기'(제주) '아지'(일본) 등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매가리는 전갱이의 어린 물고기를 말한다. 원앙어가 전갱이라면 김려가 살던 집 율티 염밭마을 이웃집의 어부 이씨가 거제 양곡에서 잡아온 물고기 역시 전갱이일 가능성이 크다. 전갱이는 낚시를 하면 한꺼번에 여러 마리가 잡힌다. 그러므로 동시에 잡은 물고기를 통에 넣어두면 입에 닿는 다른 물고기의 꼬리를 물고 죽을 가능성도 있다.

김려가 어느 날 이웃의 어부 이씨에게 어떤 물고기의 이름을 묻자 징갱이라고 답하였을 것이다. 나아가 김려가 '징경이는 원앙인데 이 물고기가 원앙어냐'고 되묻자 어부는 '이름이 같은 징경이면 원앙어 즉 징경이 물고기이지 않겠는가'라고 답하였을 것이다. 그러자 '원앙어면 원앙새처럼 사이가 좋으냐'고 물었을 것이고 어부는 '징경이(원앙어)가 낚시를 하면 연달아 꼬리를 물고 올라온다'고 하였을 것이다. 이것을 김려는 서로 지극히 사랑하는 물고기로 착각하였고 그것을 다시 남과 여의 사랑이야기로 승화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징경이 눈알을 가지면 사랑이 깊어진다는 이야기는 실제 민속인지 만들어진 이야기인지 알 수 없다. /박태성 두류문화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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