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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목수 세상에서 살아남기] (3) 배운대로 산다

고 전형두 경남축구협회장, 소신 있고 최선 다하는 태도 내 인생의 스승이 됐습니다

황원호(창동목공방 대표) webmaster@idomin.com 2016년 05월 30일 월요일

마음에 큰 울림을 주는 감동적인 경험을 하거나, 본받을 만한 스승을 만나 배우게 되고 그것을 머리로, 또 몸으로 체득하게 되면 인생의 큰 밑천이 될 겁니다. 이래야 할까 저래야 할까 하는 선택의 고민을 대면했을 때 그 배움이 판단의 기준을 제시해주기도 합니다. 제게도 그런 가르침을 준 한 분이 계십니다. 3년여 전 고인이 되신 전형두 전 경남축구협회장입니다. 경남도민프로축구단의 초대 단장과 대표이사를 지낸 분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분을 기자 시절 기자와 취재원 관계로 만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형이자 친구가 됐습니다. 이제는 그 분이 계시지 않지만 언제나 든든한 인생의 스승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판단이 어려운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그 분은 어떤 판단을 했을까?"라고 떠올리면 대부분 적절한 해답을 제시해 줍니다.

"똥만 싸고 올 거냐?"

2007년 여름이었습니다. 한 해 전 프로축구 K-리그에 데뷔한 경남FC가 처음으로 창원을 벗어나 밀양에서 FC서울과 홈경기를 치르게 됐습니다. 장소를 옮길 경우 준비할 사항이 만만치 않습니다. 신경 쓸 일이 많은데다, 처음이니 더욱 힘들었죠.

경기 며칠 전 어느 날. 오전에 구단 선발대가 밀양으로 간 데 이어 후배 한 명과 함께 오후 2시 반쯤 공설운동장에 도착했는데, 사무실에서 고함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 시청 담당계장이 구단 직원들에게 불만을 터뜨리고 있었는데, 경기 당일 운영 요원들이 먹을 도시락 100개를 창원업체에 주문한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담당계장은 "밀양시가 수천만 원을 들여 경기를 유치했는데 그까짓 도시락 하나조차 창원에서 갖고 오냐"며 "경남FC든 FC서울이든 밀양에서 하룻밤이라도 자는 것도 아니고, 밥 한 그릇조차 밀양에서 안 먹지 않느냐"며 흥분했습니다.

제가 나서서 밀양도시락 주문을 약속했지만 이미 빈정 상한 뒤니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였습니다. 화를 삭이지 못해 여전히 씩씩거리는 계장에게 제가 주유소와 식당에서 받은 영수증을 보여줬습니다.

사실 창원 구단사무실에서 출발할 때 시각은 이미 오후 1시를 넘은 시각이었습니다. 후배가 "점심 먹고 차에 기름도 채우고 출발합시다"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남은 기름으로 밀양까지 갈 수 있겠냐"고 물었고, "간당간당하지만 가능할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배고프다고 툴툴대는 후배에게 "밀양에 맛난 국수가 있다"고 꼬드겨 오후 2시가 넘은 늦은 시각에 밀양에 도착해 구단 승합차에 기름도 채우고, 시청 인근에서 국수로 배도 채웠습니다. 영수증에는 결재시각이 정확히 새겨져 있으니 '일부러 밀양까지 와서 기름 넣고 밥 먹은 것'이 확인된 것이죠. 그제서야 계장은 마음을 풀었습니다.

고 전형두 회장. /경남도민일보 DB

자랑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때 그런 제 판단은 모두 전형두 회장으로부터 배운 것이었습니다. 도내 전역에서 축구대회를 자주 열었던 전 회장은 언제나 "비용은 다소 비싼 경우가 있더라도 가급적 개최 비용을 부담하는 해당 지역에서 지출하라"는 얘기가 입버릇이었습니다. 다소 원색적인 표현이지만 "상대방 입장을 생각해야지. 가서 똥만 싸고 올거냐?"며 "진심으로 일해야 한다"는 것이 입버릇이었죠.

사실 그날 저는 당초부터 밀양에서 밥먹기로 결정해뒀습니다. 우리 둘이서 기름 넣고 밥 먹고 해봐야 지역 경제에 어떤 도움이 되겠습니까. 하지만 배운대로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고 행동한 것이 사소하지만 그날 갈등을 해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날 얘기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때 동행했던 후배가 지난해 술에 취해 저를 찾아와 "그때 형의 판단에 감동이 있었다"며 "나도 손님을 맞을 때 그때 생각을 떠올리며 최선을 다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후배는 지금 부동산중개소를 하고 있습니다.

"상대에게 감동을 줘라 최선을 다할 것이다"

프로축구는 '지금 경기 내용과 관중 서비스가 다음 경기의 관중 유치 성패를 결정'하게 됩니다. 홈경기가 기껏 한 달에 두 차례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때그때 승패는 물론 최고의 관중 서비스에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프로축구 수원삼성은 최고 인기구단입니다. 이 경기는 짭짤한 장사가 되는 경기죠. 그래서 수원과 경기에는 준비에 제법 큰돈을 투자합니다.

2011년으로 기억되는데, 삼성과 경기에 거액 3000만 원을 들여 다양한 즐길 거리를 준비하는 등 공을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경기 당일 폭우가 쏟아져 망연자실. 모두가 허탈하면서도 당황한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때 전형두 대표이사는 "열심히 준비한다고 수고 많았다. 하느님과 다퉈서 이길 사람이 있느냐? 준비한대로 열심히 하자"고 직원들을 격려했습니다. 짜증을 낼 법한 상황이었고, 직원들도 우왕좌왕했지만 분위기는 이 말로 급반전. 직원들은 폭우에 완전히 젖었지만 열심히 일했고, 경기를 마친 뒤 대표이사가 내는 회식에서 화끈하게 달렸습니다.

한 번은 외부강사 특강 때 제가 강사비를 미리 지급하지 않았다가 욕을 잔뜩 먹은 기억이 있습니다. 강의 전에 이를 확인한 대표이사는 구단에서 준비한 50만 원에다 당신 지갑에서 30만 원을 더 보태 강의 직전 손수 전달했습니다. 미리, 또 약속한 금액보다 훨씬 많은 현금 봉투를 받아든 강사는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그날 구단 직원들은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열정적인 강의를 하던 강사를 기억할까요? ㅎㅎㅎ

지난해 2월 27일 창원컨벤션센터 컨벤션홀에서 열린 고 전형두 경남축구협회장 자서전 <축구바보, 전형두> 출간을 기념하는 북 콘서트와 수국 전형두 축구장학재단 출범식. MBC경남 라디오DJ인 조복현(맨 왼쪽) 씨 사회로 신문선(명지대·왼쪽서 둘째) 교수와 황원호(전 경남FC 사무국장·왼쪽서 셋째) 씨, 우희주(전 경남FC 서포터즈 지회장) 씨가 참석해 고 전형두 회장을 추모하며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경남도민일보 DB

"선배는 후배의 우산"

전형두 대표이사는 축구 발전과 관련해서는 확신이 서면 손해를 보더라도 타협이 없는 자세를 유지했습니다.

지금은 자리를 잡았지만 경남FC와 같은 시·도민 구단에서 절대적으로 반대했던 1~2부 리그 승강제 도입을 두고 그는 유일하게 시행을 강력 주장했습니다. 프로축구가 발전하려면 반드시 도입해야만 한다는 소신을 주장했고, 다른 시·도민 구단의 '집단이기주의적 반대'에 부딪쳐 유보 결정이 내려지자 연맹이사회 자리에서 당장 사표를 던질 정도로 소신이 뚜렷했습니다.

그는 또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잔소리도 많고 거친 말투로 정 떨어지게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성과가 있든 없든 결과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결과가 나쁠 경우 책임은 온전히 당신이 감당했습니다. 그래서 함께 일하는 것이 힘들기는 했지만 소신껏 일할 수 있었습니다. 선배는 후배의 우산이 돼야 한다는 얘기를 항상 했습니다.

최근 경남도교육감 주민소환 허위서명 사건으로 경남FC, 경남개발공사 전 대표이사가 구속되고, 도청 국장을 비롯해 인명부 유출 문제로 많은 공무원이 형사 입건된 사건과 관련해 홍준표 경남지사가 보이는 태도와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관련 공무원의 일탈행위였다"는 홍 지사 얘기를 믿는 도민이 있을까요? 처벌을 받게 될 관련 공무원들은 어떤 심정일까요? 그래서 좋은 친구를 사귀라는 얘기가 있는 건가요? 제가 모셨던 그 분을 떠올려보면 이건 뭐 부끄러운 수준입니다. ㅠ.ㅠ

대단한 인생 아니지만배운 것 지켜가며 즐겨

월세를 걱정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큰돈 벌어 가족 호강시켜주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모범되는 인생도 아니지만 그 분이 가르쳐 준 진심의 가치를 믿으면서 크게 후회 없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자영업 4년차. 먹고살기 위해 주말, 휴일 없이 365일 일하자고 각오했습니다. 자영업이란 특히 저 같은 서툰 목수에게는 쉽지 않은 매일이지만, 크게 힘들다고도 느끼지는 않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여전히 쉼 없이 '생존 확인 차' 찾아와주고 있고, 저 자신도 목공소가 제 놀이터라고 최면을 걸고 사니까요. 밥 먹을 형편이 아니면 라면 끓여 먹는다고 생각하니 아주 적은 돈일망정 제 관심이 가는 곳에 기부도 할 수 있으니까요.

술값은 걱정 없습니다. '창동모꽁파 두목놀이'를 하는 데 동조해 스스로 '쫄병놀이'에 참여하는 수많은 조직원들이 다 챙겨서 오니 말입니다. ^.^ /황원호(창동목공방 대표)

※이 기사는 경남도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주민참여사업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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