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 쏟아부어 곳곳서 벌이는 기념사업…돈 핑계로 막는 세월호 진상규명과 대조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17년생이다. 내년이면 탄생 100주년이 된다. 그는 경북 선산(현 구미)에서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보통학교(초등학교) 교사를 지내다 만주로 가 군인이 되었다. 그가 입대한 부대는 독립군이나 광복군이 아니었다. 일본군이나 매 한가지인 만주군이었다. 1945년 8월 일제가 패망할 때 그는 만주군 중위였다. 해방 이듬해 패잔병의 몰골로 귀국선을 탄 그는 한동안 고향에서 죽은 듯이 지냈다.

그 무렵 그는 형 친구인 좌익분자들과 교류하면서 남로당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이 일로 결국 여순사건 직후 김창룡의 특무대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으며, 군사법정에서 무기징역(2심에서 징역 10년으로 감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한국군 수뇌부를 차지하고 있던 만주군 출신 선배들의 도움으로 겨우 풀려났다. 그러나 그의 좌익전력은 두고두고 그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훗날 대통령이 되고나서는 누구보다도 반공에 앞장섰는데, 아마 이때 트라우마 때문인 듯하다.

탄생 100년, 사후 근 40년이 다 돼가지만 그는 아직 역사책 속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의 삶과 대통령 시절의 공과를 두고 여전히 논란이 뜨겁다. 한 쪽에서는 쿠데타로 집권한 독재자, 한쪽에서는 경제성장을 일군 위대한 지도자. 둘 다 맞는 말이다. 1961년 5·16 구사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해 18년간 장기 집권한 독재자도 사실이며, 단군 이래의 가난을 극복하고 경제성장의 기틀을 다진 것도 사실이다. 공과의 한 쪽 면만을 주장하는 것은 온당한 평가 자세는 분명 아니다.

그런데 근자에 들어 박정희 우상화 작업이 세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그를 두고 '반신반인(半神半人)'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구미시'를 아예 '박정희시(市)'로 명칭을 바꾸자고 한다. 박승호 전 포항시장이 2014년 경북지사 선거에 출마하면서 한 얘기다. 그는 미국 워싱턴 DC는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을, 케네디공항은 케네디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라고 예를 들었다. 물론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런 식이라면 거제시는 김영삼시, 전남 신안군은 김대중군, 대구는 박근혜시로 해야 할까? 또 울산시는 정주영시, 포항시는 박태준시로 하면 어떨까? 문득 우남시 얘기가 생각이 난다. 이승만 정권 시절 서울시를 이승만 대통령의 호(우남)를 따서 우남시로 바꾸려고 한 적이 있다.

박근혜 정권 들어 박정희 추모·우상화 작업에 수백억 원의 혈세를 쏟아 부어 빈축을 사고 있다. 구미 박정희 생가 복원에 286억 원, 생가 주변 테마공원 조성사업에 785억 원, 구미 '박정희 민족중흥관' 건립에 65억 원, 서울 신당동 박정희 사저 기념공원 조성사업에 297억 원, 서울 상암동 박정희 기념도서관 건립에 208억 원, 문경서 교사시절 묵었던 하숙집 복원에 17억 원, 1962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 울릉도 시찰 때 1박을 했던 옛 울릉군수 관사를 기념관으로 꾸미는 데도 12억 원이 들었다.

내년 탄생 100주년을 맞아 구미시는 전담인력 8명을 두고 대대적인 기념사업을 추진 중이다. 대표적으로 '박정희 뮤지컬'(가칭 '고독한 결단')을 준비 중인데 소요예산이 28억 원이라고 한다. 기념우표와 기념주화 발행, 국제학술대회 개최, 사진전시회, 휘호집과 근대화 관련 책자 발굴 등을 합치면 총 40억 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생가에서 구미초등학교까지 약 6.4㎞에 이르는 '박정희 등굣길'도 조성했으며, 박정희의 어린이 시절 동상까지 만들어 세웠다. '박정희 소나무'에 '박정희 테마밥상'까지, 이만하면 북한 김일성도 울고 갈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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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에 예산 투입을 마뜩잖게 여겼다. 300여 명의 우리 국민이 백주에 수장된 경위를 밝혀내는 데는 당연히 인력과 예산이 든다. 그런데 올해 6월말로 특조위 예산 지급이 종료된다고 한다. 특조위가 공중분해가 되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도 물 건너간다. 박정희 기념사업비의 1할만 써도 유족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으련만. 하늘에서 박정희가 보면 뭐라고 할까? 참 나쁜 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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