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부상·태풍 피해 이름심리상담사 계기로…아이·인생2막 작명부터 고민

이름이 인생을 좌우할까?

적어도 주기범(58) 씨는 좋은 이름이 갖는 힘을 믿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이름 짓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

주 씨는 자신을 '이름심리상담가'라고 소개했다. 심리상담가는 널리 알려진 전문 직업이지만, 이름심리상담가라는 호칭은 낯설다.

그는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에서 '내이름미래원'을 운영하는 원장이다. 지난 2004년 사업자등록을 하고 창원시 의창구 팔룡동에 일을 꾸리다 상남동으로 옮겨온 지는 10년째다.

"이름이라는 공통분모로 많은 분이 찾아오지만 수많은 사연과 고민을 안고 상담을 청해옵니다. 이름을 새로 짓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그분들이 2시간 동안 상담하고 후련한 마음으로 문밖을 나서면 그만입니다."

주기범 내이름미래원장은 작명이 직업이지만 어찌보면 상담이 그의 주된 일이다. /박정연 기자

작명보다 상담이 어찌 보면 그의 주된 일이다. 주 씨가 말하는 자기 직업에 관한 설명을 들으면 이해하게 된다. 주 씨는 하루에 4명 이상 상담하지 않는다.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미리 상담 날짜를 잡아 오전에 2명, 오후에 2명을 만난다.

"상대 고민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시간과 하루에 제가 소화할 수 있는 양을 고려했을 때 적정선이 나옵니다. 예전에 가게를 운영하며 시간에 끌려 살았던 때보다 훨씬 의미 있는 삶이라 생각합니다."

주 씨는 일전에 북마산가구거리에서 가구점을 운영했다. 이름 짓는 일에 집중하게 된 계기는 아이가 다치고, 아내가 운영하던 양곡도매상회를 잃었을 때다.

"부모 마음에 운동하겠다는 아들이 걱정이 앞서긴 했지만 축구공만 보면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길래 더 반대할 수도 없었죠. 1998년이에요. 다리를 다쳐서 병원에서 운동을 중단하라더군요.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주 씨에게 아이가 다친 일이 개명의 첫 신호탄이 되긴 했지만, 재산을 잃었을 때가 결정적이었다.

"2003년 매미 때 물에 다 휩쓸려갔습니다. 아내가 십수 년째 마산 어시장에서 쌀, 팥, 콩 각종 곡물을 파는 양곡상이었는데 가게는 흔적조차 없어졌습니다."

그의 가족은 모두 이름을 새로 지었다. 물론 주기범 씨가 지어준 이름이며, 자신 이름도 2006년에 바꿨다.

어릴 적부터 죽음에 관한 책을 유달리 읽었단다. 장사를 하면서도 인문학, 심리상담에 관한 책이 계산대 옆에 있을 정도였으니 주변에서는 장사치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을 테다.

'내이름미래원'을 찾는 이는 다채롭다. 태어난 아이 이름을 지으러 온 젊은 부부부터 환갑을 맞아 '인생은 60부터'라며 이름을 바꾸고 싶다고 찾아온 사람까지. 반려동물의 이름을 지으러 오기도 한다.

"키우는 강아지 이름도 지으러 오죠. 함께 사는 가족인데 좋은 이름 붙이고 싶은 건 같은 마음이니까요. 저희 집에 입양한 강아지도 정성스레 이름 붙여준 것처럼요."

남의 근심 걱정을 들어주다 마음이 무거워지는 경우는 없을까.

"건강상 문제로 찾아오는 경우가 가장 마음이 아프죠. 의학이 해야 할 일은 엄연히 다르지만 제가 배운 '자성파 한글성명학'으로 좋은 이름, 숫자, 색 등을 이야기해줍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호전됐다는 소식을 전해오면 제가 다 기쁩니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까. 주기범 씨는 마음을 비우는 일은 명상으로, 기운을 얻는 일은 사람들이 많은 곳을 일부러 찾아간다고.

"부산 남포동, 자갈치 시장을 자주 가는데요. 지역을 벗어난 기분도 들고, 활기를 느끼기에 딱이죠. 물론 백화점이나 패션몰도 빠뜨리지 않습니다. 유행하는 패션이나 색상, 헤어스타일도 제게는 중요한 정보니까요."

주 씨에게 상담을 청하는 이들의 80%가 여성이라 패션 정보도 중요하다. 부부 갈등을 겪는 이들에게 최고의 조언은 상대를 바꾸려 하기보다 자신을 바꾸라는 것이다. 물론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저를 찾는 이들은 대부분 문제 해결 의지가 있는 분들입니다. 반은 성공한 셈이죠. 이름을 바꾸고 싶어하는 것도 결국 본인의 의지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좋은 이름을 갖고 있다면 그 이름이 갖는 힘에 대해 설명하고 바꾸지 말라고 말합니다. 일상의 변화를 유도하는 게 제 몫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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