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비춤]홍 지사-도의회 밀월 끝, 긴장 시작?

뜻밖의 ‘사건’이 벌어졌다. 새누리당 소속 경남도의원이 홍준표 도지사 면전에서 도정은 물론 홍 지사 개인을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은 처음이었다.

옥영문(새누리·거제1) 의원은 지난 24일 본회의에서 도청 추가경정 예산안과 관련해 “도청 공무원은 예산이 왜 필요한지 제대로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의회를 이렇게 무시하는 집행부는 처음 봤다”며 홍 지사를 정조준했다. “본회의장에서 의원 발언 중에 영화 예고편을 보는(지난해 4월) 등 홍 지사의 의회 경시에 우리는 한마디도 못했다. 부끄럽고 비겁했다”고 자성 섞인 쓴소리를 던진 것이다.

박삼동(새누리·창원10) 의원 역시 연단에 올라 “의회가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집행부는 견제기관인 도의회는 안중에도 없나”라고 따졌다.

지난 17~18일 진행된 도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부터 심상치 않았다. 진병영(새누리·함양) 의원은 이날 “채무 제로를 앞세워 각 시·군 조정 교부금을 집행하지 않는 것은 경남도의 갑질”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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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4일 경남도의회 본회의에서 홍 지사와 도정을 비판한 옥영문(왼쪽 사진) 의원과 해명에 나선 홍준표 지사.

여러 해석이 가능해 보인다. 무엇보다 홍 지사의 ‘권위’가 예전 같지 않다. 한때는 차기 대선 주자로까지 자천타천 거론됐으나 지금은 불법정치자금(성완종 리스트) 스캔들, 교육감 주민소환 불법서명 사건 등으로 도지사직 유지조차 위태한 처지다.

4·13 총선 패배 책임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도내 야권 약진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말마저 나온다. 여영국(정의당·창원5) 도의원은 “총선으로 정치 지형이 변화됐다. 기존에 하던 대로 하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의원들이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 의원은 “터질 게 터졌다”는 분석도 내놨다. “홍 지사 독주에 도의회는 그저 끌려가는 형편이었다. 겉으로는 아무 소리 못했지만 속으론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홍 지사의 고압적 태도, 의원을 무시하는 태도에도 불만이 적지 않았다.”

무상급식 중단부터 서민 자녀교육지원 조례, 채무 제로, 공적기금 폐지, 누리과정 예산까지. 지난 2년 동안 ‘하수인’이니 ‘친위대’니 온갖 욕을 먹어가며 도정에 협조했건만, 의원 개개인에게 돌아온 것은 많지 않았다. 지난 10일 시작된 제335회 도의회 임시회에서 시·군 조정 교부금(진병영), 마산자유무역지역 고도화사업(박삼동) 등이 쟁점이 된 배경이다.

섣부른 예단은 물론 금물이다. 이번 임시회 하나로 홍 지사-도의회 간 ‘밀월’ 관계가 끝났다고 볼 수는 없다. 단적으로 교육감 주민소환 불법서명 사건과 관련, 홍 지사 측근 다수가 연루된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일제히 침묵한 새누리 의원들이다. 24일 본회의 5분 발언에서 홍 지사 책임론이 나올 법했으나 야권의 김지수(더불어민주당·비례) 의원만 살짝 언급했을 뿐이다.

홍 지사 자신도 “도의회를 무시하는 일이 있었다면 정말 송구스럽다”고 몸을 낮추며 빠르게 수습하는 모양새다. 격한 ‘충돌’이 있었던 이날 본회의 직후에는 초선 도의원과 술자리까지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빨 빠진 호랑이도 호랑이는 호랑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정치인의 용인술·처세술이 언제 또 반전을 만들어낼지 모른다. 어쨌거나 홍 지사는 7조 원이 넘는 예산 편성권을 쥐고 있는 권력자 중의 권력자다.

김윤근 도의회 의장은 “그간 의원들이 지역 여론을 무시한 채 도 입장을 수용하거나 문제 지적을 소홀히 했다고 생각지 않는다”며 “쓴소리가 필요할 때는 했다. 후반기에는 더욱 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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