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공서 흡연실엔 왜 남자뿐일까…더 서럽고 눈총받는 여성흡연자

나는 흡연자다. 하루 담배 한 갑은 거뜬히 피우는 '골초'다. 담배 한 갑에 약 3000원, 연간 120만 원의 세금을 내고 있다. 내 호주머니를 털어 10조 원이라는 나라 곳간을 채우고 있으니, 그야말로 애국자다.

하지만 내는 세금에 비해 권리는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호구다. 커피숍, 식당은 물론 길거리에서 담배 하나를 마음 놓고 피우지 못하는 가여운 신세다. 비흡연자의 권리를 존중하기 위해 공기청정기는커녕 사방이 꽉 막힌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워야하는 처지다. "폐암 한 갑 주세요~"라는 공익 광고를 보며 인권을 침해당하면서도 대놓고 싸우지 못하는 약자다. '서러우면 담배를 끊어라!' 의지박약아 취급을 받으면서 오늘도 수많은 흡연자들이 담배를 찾는다. 그렇다. 이 시대 흡연자로 산다는 건 서럽다. 설상가상 나는 더 서럽다. 여성흡연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성흡연자다. 대한민국에서 여성 흡연자로 산다는 건 '여자가 담배를?' 물음표에 담긴 따가운 눈총과 '여자가 담배를…' 줄임말에 담긴 출산에 대한 걱정과 '담배 피우는 여자!' 느낌표 속에 숨은 페미니스트 혹은 '까진 여자'라는 오해를 감내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미성년보다 더 주변의 눈치를 보며, 또 때로는 철분이 줄어드는 노인 흡연자보다 뼈가 녹는다는 농담을 들으며 흡연을 해야 한다. 이유는 단 하나, 그저 여성이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교수님, 선후배들과 함께 담배를 피우며 술을 마시던 어느 날이었다. 단, 여자 후배 두 명만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그래서 난 그들이 당연히 비흡연자인 줄 알았다. 하지만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에 난 보았다. 으슥한 계단에서 담배를 피우는 여자 후배의 모습을. 그래서 내가 말했다. "너도 담배 피우네? 안에서 같이 피우자!" 나의 제안에 여자 후배가 답했다. "교수님도 계시고 선배들 앞에서 어린 제가 담배를 피우는 게 좀 아닌 것 같아서요." 담배 앞에서 나이가 무슨 개뿔~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고 다시 술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술자리는 더 이상 화기애애하지 못했다. 나이 타령을 한 여자 후배보다 더 나이가 적은 남자 후배가 교수님과 선배들 앞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고 내가 버럭 화를 냈기 때문이다. "야! 너도 나가서 담배 피워~ 남자면 다야?" 물론, 남자 후배는 잘못이 없다.

내가 욱한 건 여성 흡연자에 대한 시선이 두려워 나이 핑계를 댄 여자 후배와 그 여자 후배를 쪼그라들게 만든 사회적 시선이다. 기호품인 담배 앞에서 나이의 많고 적음을 따지는 것도 웃기지만 남성과 여성을 차별한다는 건 더 코미디가 아닌가? 그날 술자리의 화제는 "여성흡연자에 대한 시선, 이대로 괜찮은가?"로 이어졌고, 그날 이후 내가 참석한 술자리에선 담배를 피우는 여자 후배들이 한두 명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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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 때문에 가끔 관공서에 들어갈 때가 있다. 어느 날, 흡연실에서 모 과장님과 담배를 피우며 회의를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시민단체 대표가 나에게 한마디 했다. "김봉임 대단하다~ 관공서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운 여성은 아마 네가 처음일 거다"라고. 그러고 보니 남성 흡연자는 많이 봐도 아직까지 흡연실에서 여성을 본 적은 없다. 물론, 관공서에는 여성 흡연자가 한 명도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 흡연 욕구를 퇴근시간까지 참고 있는 여성 공무원이 있다면 그건 문제다. '누가 여성공무원을 흡연실로 못 오게 만드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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