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좋은 그믐골로' 37년 한결같은 청년…25살 고향서 이장일 시작 45가구 사정 훤히 꿰뚫는 삼촌·든든한 기둥으로

경남 함양군 유림면 회동마을은 예부터 그믐골이라 불렀다. 이 마을 사람들은 마을 뒷산에 '금조탁시(金鳥啄尸·금빛 새가 시신을 쫀다는 의미로 풍수지리학에서 명당을 표현하는 말)'로 불리는 명당이 있다고 해서 마을을 '금명동(金鳴洞)'이라 불렀는데, 그것이 음이 변하고 변해서 그믐골이 됐다.

이렇듯 그믐골 사람들은 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게 묻어난다. 사람 살기 좋은 곳, 대대로 좋은 기운이 서리는 곳이라는 주민들의 뿌듯함이 배어있는 명칭이다.

그믐골에서 나고 자란 박홍서(66) 이장도 마찬가지다. 박 이장은 그믐골이 다른 어느 마을보다 자랑스러운 마을이 되도록 마을을 발전시키려고 수십 년간 동분서주해왔다. 이 덕분에 45가구 95명의 마을주민은 박 이장을 회동마을 이장이라고 부르지 않고, 유림면의 대표이장이라고 부를 정도로 자랑스러워한다.

경남 함양군 유림면 회동마을 박홍서 이장. 박 이장은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늘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청년'이다. /안병명 기자

박 이장은 아주 어릴 적 잠깐 외지에 나갔던 것과 군 복무 시기를 제외하곤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는 토박이로, 군을 전역하자마자 25세의 나이로 마을이장을 시작했다.

젊은 나이에 하도 힘들어 중간에 4년 정도 쉰 것을 빼면 주민 성화에 못 이겨 37년을 이장으로 살아왔으니 그의 삶이 곧 이장의 삶이라 하겠다.

이처럼 주민들이 회동마을 이장으로 그를 점찍고 수십 년간 '부려 먹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세상물정 모를 청년이장 시절부터 책임감 강하고, 어르신 공경할 줄 알고, 크든 작든 마을 일에 앞장서며 강단 있는 모습이 깊은 인상을 줬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박 이장이라면 우리 마을도 좀 좋아지겠구먼~"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 이장은 자신의 집 사정보다 마을 45가구 95명 주민 사정에 더 훤하다. 윗마을 어느 어르신 병원 가는 날짜며, 명절에 찾아오는 손자나 집안 가계사정까지 훤히 꿰고 알아서 손발이 되어 주민편의를 책임졌다. 주민 형제자매나 자식, 어려운 집안일을 의논할 삼촌이자 든든한 기둥이었다.

하지만 박 이장은 사람 좋은 것만으로는 주민 행복을 책임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열악한 마을 편의시설 인프라부터 갖추기로 했다. 경운기가 오갈 수 있는 농로를 포장했고, 주민이 한자리에 모여 밥도 먹고 어깨도 주물러줄 수 있는 마을회관도 신축했다. 그렇게 회동마을 주민이 오래도록 바라던 사업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서 신뢰는 공고해졌다.

많은 일 중에 보람으로 느끼는 대표적인 것은 '창조적 마을 만들기 공모사업'에 선정된 일이다. 그는 재정난을 겪는 함양군에만 기대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마을 발전과 주민 편의증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 끝에 2014년 농림축산식품부 일반농산어촌 개발 공모사업인 '창조적 마을 만들기 사업'에 도전했다.

물론 과정은 쉽지 않았다. 창조적 마을 만들기 사업이라는 것 자체가 마을주민들의 의지와 뜻이 결집하지 않으면 추진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주민들은 박 이장을 전폭적으로 신뢰했다.

박 이장도 공모사업에 신청할 사업 하나하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십분 존중해 추진했다. 덕분에 2015년 창조적 마을 만들기 사업 공모에 확정됐고, 올해부터 다목적 회관, 기존회관 리모델링, 마을 쌈지 쉼터 조성 등 주민 편의시설 확충과 좁은 마을 진입로 확·포장 등이 추진되고 있다. 공모신청부터 공모확정, 사업추진까지 3년이 걸리는 기간 박 이장은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고 소임을 다했다.

박 이장은 다시 또 다른 마을발전 꿈을 꾼다. 회동마을은 65세 이상 노인가구가 많고 마을주민 대부분이 논농사 밭농사 지으며 그냥저냥 살지만 결코 잘사는 마을은 아니다. 그래서 박 이장은 농촌사회 흐름을 공부하고 여러 경로로 정보를 접하며 생각한 끝에 '마을기업'을 추진키로 하고 농산물 6차 산업화 추진에 열정을 보이고 있다. 마을기업을 추진하면 마을 공동 육묘장을 만들고, 마을의 대표 농산물인 양파· 참깨·홍화 등을 직접 가공·유통할 수 있다.

박 이장은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지만 마을기업에 선정되면 2년간 최대 8000만 원의 사업비 및 경영컨설팅을 지원받을 수 있는 혜택이 있어 반드시 해내야겠다고 생각한다.

봄볕에 그을려 농사준비로 한창인 박 이장은 "쉬운 일이 어디 있나요. 어렵다고만 생각하면 도전할 수가 없지요.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아직도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마음만은 청년'"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그믐골은 유림면에서도 작은 마을이지만 잘 다듬으면 지금보다 훨씬 살기 좋아지리라고 확신한다"며 "마을에 숨은 자원과 스토리 개발로 주민이 똘똘 뭉쳐 유림면에서 가장 창의적인 마을로 만들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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