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아너소사이어티 아름다운 나눔] (16) 한철수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돈자랑이라고 볼까 봐 기부 꺼리는 사람도 많아요. 막상 하고 나면 긍정에너지가 솟고 그저 행복합니다. 걱정 마세요."

한철수(64) 회장. 그는 경남아너소사이어티 다섯 번째 회원이면서 아너소사이어티를 모으고 관리하는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이 밖에도 고려철강을 운영하는 대표이자, 창원상공회의소 마산지회장이라는 직함도 가지고 있다. 여러 가지 직책에서 알 수 있듯 역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한 회장. 그가 꿈꾸는 함께 어울려 사는 나눔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학, 새로운 세상을 접하다 = 한 회장은 스스로 마산 토박이라는 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대학 때를 제외하면 지금까지 쭉 마산에서 살아왔다.

"마산 중성동에서 태어났어요. 지금은 1남 3녀 장남인데…. 어릴 때 남동생이 죽었어요. 중학교 1학년 때 퇴비 증산한다고 풀을 베오라는 숙제가 있었습니다. 그때 동생이 하천 풀숲에 며칠 따라다니고는 뇌염에 걸려서…. 그래서 아직도 죄책감이 있어요. 그 기억 외에는 유복하게 유년시절을 보낸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 마산공고 선생님이셨죠. 그냥저냥 밥걱정은 안 하는 그 정도 형편이었습니다."

한 회장은 어려서부터 공부를 곧잘 했다. 성호초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당시 엘리트 코스라 불리던 마산중학교-마산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기계공학과에 진학한다.

경남아너소사이어티 다섯 번째 회원인 한철수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외할아버지가 독립투사 죽헌 이교재 선생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머니도 올곧고 꼼꼼하고 엄한 편이셨어요. 특히 어머니가 어릴 때부터 숙제나 공부하는 것을 꼼꼼히 챙기셨죠. 그 덕에 공부는 잘했어요. 대학은 아버님 권유로 취직 걱정없는 기계공학과로 갔는데 실수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저는 인문학 계열이 적성에 맞아요."

그 탓에 그는 학과생활보다 서클 활동을 더 열심히 했다.

"청년문제연구회라는 모임인데 서클 활동을 하면서 선배들이 그 시대에 고민해야 할 것들을 많이 깨우쳐줬죠. 온실 속 화초처럼 지냈던 제가 그때부터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었어요. 4학년 때는 서클 회장이 됐고요. 당시 유신 체제에 반대해 한참 데모를 많이 하던 때라 서클 선후배들이 많이 잡혀가서 구속되고 그랬죠. 마고 동문 설훈 의원도 그때 구속됐죠. 저도 경찰에 잡혀가 여러 번 조사 받았지만 깊숙이 관여하지 않아 구속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3대 독자라 집에서 걱정도 많았고 또 교직에 계시는 아버지에게 악영향과 심려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짙었어요. 참 그때 심적인 갈등이 말할 수 없이 심했죠. 그런 저를 보고 설훈 의원을 비롯해 선후배들이 '나중에 준비가 되면 그때 세상을 위해 나서면 된다. 성공해서 돈 많이 벌어 세상을 위해 보람있게 사용해라. 그러면 된다'고 오히려 저를 위로하고 그랬죠. 그게 부채의식으로 남아 제가 나눔을 실천하는 한 계기가 된 것이라 생각해요."

◇시련은 있어도 좌절은 없다 = 대학을 졸업한 그는 창원공단에 입주한 기아기공에 곧장 취직한다. 하지만 3년을 근무하고는 독립을 하게 된다.

"27살에 취직을 했죠. 철강과 특수강을 구매 주문하는 부서에서 일했습니다. 그게 인연이 돼서 1981년 고려철강을 설립했습니다. 지금의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 고속버스 터미널 뒤쪽 남의 사무실 한쪽에 전화 하나 놓고 더부살이로 시작했죠."

그의 젊은 패기로 점점 성장한 고려철강은 현재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신촌리 진북일반산업단지 내에 공장을 두고 있다. ㈜세아베스틸(옛 기아특수강), 세아창원특수강(옛 삼미특수강), 한국철강㈜의 대리점으로 자동차·산업기계·공작기계 구조용강, 방위산업용 특수강과 파이프 등 철강·특수강을 취급하는 유통업체다. 철강·특수강 생산업체로부터 원자재를 받아 수요자 요구에 따라 1차 가공 후 공급하는 방식이다. 2010년에는 특수강 유통회사인 고려스틸을 별로도 설립해 사업을 확장했다. 전화 하나로 시작한 회사는 지난해 매출이 700억 원가량이며 현재 30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동안 사업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기업 대부분이 그렇지만 고려철강 역시 IMF 외환위기가 부도와 직면했던 가장 힘든 시기였다.

"그때 기아자동차가 부도가 나면서 이후 외환위기가 찾아왔지 않습니까. 저희 주거래업체가 기아그룹입니다. 동종업체 절반은 부도가 났어요. 돈은 없고 어음은 돌아오고…. 한 30년 만에 끊었던 담배도 그때 잠시 피웠습니다. 밤에 부도가 나서 힘들어하는 꿈을 꾸다가 얼마나 많이 깼는지…. 부도를 내고 재기할까 하는 고민을 했을 정도니까요. 그게 금전 손실이 더 적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죠. 고향이 여긴데 불명예스러운 짓을 해서는 되겠느냐는 생각에 버텼죠."

그가 위기를 넘을 수 있었던 것도 그동안 쌓아온 신용 덕이었다. 위기를 넘기는 데는 대략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내 삶의 흔적 하나 남기자 = 한 회장은 2010년 7월 다섯 번째 회원으로 경남아너소사이어티에 이름 올렸다. 더 놀라운 점은 도내 네 번째 부부회원이라는 것이다. 한 회장 아내 최선자(60) 씨는 2014년 4월, 1억 원 기부를 약정해 34번째 회원이 됐다.

"회사 차원에서 어려운 이웃집 고쳐주기를 자체적으로 하기도 했고, 회사 이익이 생기면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탁도 자주 해왔습니다. 저는 평소에 '저승에 10원도 못 가져갈 것 쌓아두면 뭐하나' 그런 이야기 자주 하거든요. 그래서 내 삶의 흔적 하나를 세상에 남기자는 생각에 아너소사이어티 가입을 결정했어요.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라는 아버지의 주문과 대학 선후배들에 대한 부채의식이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자식이 셋인데 강요할 수는 없지만 나중에 스스로 돈을 벌어서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했으면 하는 기대도 있습니다."

이처럼 그는 나눔에 대한 생각이 남다르다. 2014년부터는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그가 회장이 된 후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급격히 늘었고, 매년 사랑의 온도계 모금액도 꾸준히 늘고 있다.

"기부 결정을 꺼리는 이유 중에 '주변에는 못하면서 돈 자랑 하려고 저런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걱정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데 막상 하고 나니 그런 고민은 필요 없었습니다. 참 잘한 선택이라 생각했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기면서 뿌듯하고 보람차고 행복했습니다. 고민하고 계시는 분이 있다면 걱정 벗어 버리고 저지르세요. 인생 최고의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겁니다. 그리고 기부하고 나누는 것도 익숙하지 않으면 잘 못 합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교육이 필요합니다. 자녀 이름의 통장에 매달 5000원씩 적립해 나중에 그 돈을 기부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또 부모들이 아이와 함께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좋은 교육입니다. 소액기부도 아주 소중합니다. 재능기부도 중요합니다. 어려서부터 솔선수범으로 가르치는 것이 가장 효과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회장의 나눔은 책임감과 부채의식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지만 그가 지향하는 것은 함께 잘 사는 아름다운 세상이다.

"사실 세상은 공평하다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타고난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죠. 저는 좋은 부모 만나 유복한 환경에서 공부하고 또 주변 사람과 지역사회 도움으로 이 정도라도 살고 있습니다. 제 작은 나눔이 많은 이의 동참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길 바랍니다. 혼자 잘살면 무슨 소용입니까. 함께 잘살아야 더 좋은 세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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