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인 안전기준 없고 근거 없는 막연한 발표로 불신 자초

경기도 일산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유모(58·여)씨는 최근 탈취제를 찾는 손님이 줄면서 생활화학 제품에 대한 소비자 불안을 느끼고 있다.

옷에 고기 냄새가 배는 것을 싫어하는 손님이 많아 페브리즈 섬유탈취제를 매장 안쪽과 계산대 등에 비치해놨는데 요즘 들어 탈취제를 뿌리는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것이다.

유씨는 "매장에 놔두려고 탈취제를 박스째 구매하곤 했는데…"라고 말끝을 흐리며 "밀폐된 공간에서 뿌리면 몸에 좋지 않다던데 믿을만한 (흡입 독성) 연구 결과나 안전 기준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가습기 살균제에 이어 섬유탈취제와 방향제를 비롯한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소비자 불안이 커지면서 정부의 '뒷짐 감독'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21일 유통·중소기업계에 따르면 최근 환경부는 한국 피앤지(P&G)의 페브리즈 성분이 인체 위해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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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마트에 진열된 탈취제들./연합뉴스

논란이 된 성분인 벤조이소티아졸리논(BIT)과 제4급 암모늄 클로라이드(디데실디메틸암모니움클로라이드·DDAC)가 각각 페브리즈 공기탈취제와 섬유탈취제에 들어있지만 탈취제의 사용 빈도를 고려하면 가습기 살균제와 달리 몸에 심각하게 해를 끼칠 정도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다만, DDAC의 흡입 독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여전한 만큼 환경부는 이와 관련된 실험을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방이나 차량 등 밀폐된 공간에서 공기탈취제를 장기간 사용할 경우 몸에 이상이 생길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정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정부의 입장 발표에 불안함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논리적인 근거에 따라 이런 성분의 제품 함량 기준을 정해놨는지 기준을 지킨다면 정말 인체에 무해한 것인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DDAC의 경우 미국에서는 섬유탈취제에 0.33% 함량까지 사용할 수 있지만 환경부는 국내에 판매되는 페브리즈의 DDAC의 함량이 미국의 절반 이하인 0.14%라고만 밝혔을 뿐 다른 안전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다.

시장에 유통되는 다양한 탈취제와 방향제들이 정부가 전한 안전성 기준을 따르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이들 생활화학제품은 대부분 살균·보존제 성분을 포함하고 있지만 공산품으로 분류돼 있어 화장품이나 향수 등과 달리 전성분을 표시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환경부는 지난해 7월부터 올해 1월까지 시장에 유통되고 있는 생활화학제품 331개의 안전성 조사를 벌였더니 신발 탈취제인 바이오피톤의 '신발무균정'에서 사용금지 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PHMG는 가습기 살균제에 포함돼 폐 섬유화를 일으키는 것으로 분석된 물질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터진 뒤 5년이 지났지만 독성 물질이 든 탈취제가 버젓이 시장에 나돌고 있었던 셈이다.

소비자들은 정부가 소비자 건강과 맞닿은 제품의 성분과 함량에 대한 독성 실험을 통해 정확한 기준을 세우고 관리·감독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주부 김선미(32·여)씨는 "정부는 당장 몸에 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흡입 독성에 대한) 정확한 근거없이 무책임하게 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이런 제품을 아예 쓰지 않을 수는 없으니 정부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말할 게 아니라 철저한 안전관리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꼬집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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