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비춤]1982년 전국체전 개최 위해 건립, 90년대 '경남체육' 1번지 명성
최루가스로 축구대회 중단도…2018년 최신식 야구장 재탄생

닳아빠진 트랙, 시멘트 담벼락, 때 묻은 플라스틱 의자…. 커다란 그리움으로 남을 마산종합운동장의 흔적이다. 34년간 경남 스포츠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기며 시민과 동고동락했던 마산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이 작별을 고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창원시는 21일 오후 4시 20분 마산종합운동장에서 고별 행사를 열고 본격적인 철거 작업에 들어간다. 마산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은 2018년 12월 새로운 야구장으로 재탄생될 예정이다.

1982년 9월 경남 최초의 종합경기장으로 마산종합운동장은 탄생했다. 제63회 전국체전 유치로 완공된 마산종합운동장 건립은 당시로는 마산시 유사 이래 단일 공사로는 최대 규모였고, 실내체육관과 테니스장 등을 갖춰 공설운동장 대신 '마산종합운동장'이란 이름이 붙었다.

시민들은 큰 경기가 열릴 때마다 운동장을 가득 메우고 스포츠가 주는 묘미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마산종합운동장은 경남체육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의 현장으로, 이 곳에는 경남 체육의 영욕, 선수들의 땀과 눈물, 스포츠팬들의 추억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30년 넘게 각종 경기가 열렸다.

경남에서는 처음으로 치러진 제63회 전국체전에는 입석을 포함해 3만 명이 넘는 관중이 입장했고, 이 외에도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와 프로축구 등이 열리면 장안이 떠들썩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1982년 마산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제63회 전국체전 개회식 모습. 지난 30여 년간 각종 체육·문화 행사 등이 열린 마산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은 도민들의 추억이 서린 곳이다. /국가기록원

박소둘 경남체육회 자문위원(전 체육회 사무처장)은 "마산종합운동장은 경남체육사에서는 역사적인 장소"라며 "체육인들의 한결같은 염원이었던 전국체전이 처음으로 열렸던 곳이고, 1만 명이 넘는 인원이 참가한 남도친선체육대회가 처음 개최되는 등의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박 자문위원은 "당시만 하더라도 전국체전에는 대통령 내외가 참석해 생방송으로 개회식을 생중계했다"면서 "마산에서 열린 제63회 체전은 당시 한일여실고(현 한일여고) 학생 3400여 명이 대규모 카드섹션을 진행해 큰 호응을 받았다. 카드섹션이 얼마나 화제가 됐는지 대회가 끝난 후 그 장면을 보지 못한 마산시민을 위해 학생들이 다시 카드섹션을 보여주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마산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은 경남 축구의 성지(聖地)와도 같은 곳이었다. 도내에 프로축구팀이 없던 시절 축구팬의 갈증을 풀어 줄 프로축구 경기가 해마다 마산종합운동장에서 열렸고, 축구 국가대표팀의 전지훈련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특히 1987년 6월 10일 마산종합운동장에서 열렸던 한국과 이집트의 제16회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 조별 예선 경기는 한국 축구사에서도 잊지 못할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날은 전두환 정부의 집권 연장을 막는 '6·10 민주항쟁'이 일어난 날이다.

당시 오후 7시 시작한 경기는 경찰이 시위 군중에 쏜 최루탄 연기가 운동장으로 날아들면서 시작 5분 만에 중단됐다. 사태의 심각성을 안 대회본부는 몰수 경기를 선언하면서 이날 경기는 무승부로 기록됐다.

경남축구협회 장기팔 전 부회장은 "당시 시대적 분위기는 알고 있었지만 축구 경기장까지 최루탄 가스가 들어올 줄은 정말 몰랐다"면서 "최루탄 가스를 처음 접한 이집트 선수들이 코를 막은 채 경기장을 빠져나왔고, 나는 심판진과 함께 용마산공원 쪽으로 피신했던 기억이 있다"고 회고했다.

대한축구협회도 이날 경기에 대해 '경기장 내 관중의 난동이 아닌 경기장 외 인파의 시위와 최루탄 발사로 몰수 경기가 선언된 것은 세계 축구사에도 유일무이한 사례로 전해진다'고 설명했다.

1997년 제78회 전국체전을 앞두고 창원종합운동장이 생기자 마산종합운동장은 경남 체육의 중심에서 서서히 멀어져 갔다.

주로 축구경기장으로 쓰이던 마산종합운동장은 2009년 인근에 창원축구센터가 생기면서 경기장 기능을 사실상 상실했다. 2015년에는 공무원 채용을 위한 체력 검사, 생활체육대회 등 단 17번의 소규모 행사가 열렸을 뿐이다.

또 마산종합운동장은 어떤 이에겐 삶의 터전이었다. 종합운동장 내에서 17년간 복싱체육관을 운영했던 김호상 관장은 "오늘 아침 운동장에 안전펜스가 설치되는 걸 보고 왠지 모를 막막함을 느꼈다. 마산운동장은 복싱 꿈나무를 키워 국가대표까지 배출한 곳이었는데 철거된다니 자식을 내놓는 심경"이라고 아쉬워했고, 종합운동장에 입주해있던 마산문화원 임영주 원장도 "정들었던 곳을 떠나게 돼 안타깝기도 하지만 창원시에서 새로운 야구장을 짓는다고 하니 시민으로선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마산종합운동장은 역사와 꿈을 품은 소중한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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