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살아나니 원주민·세입자들 쫓겨나…건물주만 좋은 도심재생 안전장치 필요

부산에서 돼지국밥 식당을 운영하는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그는 꽤 긴 시간 과도기를 겪었다. 사람 좋은 웃음에는 늘 고단함이 묻어났다. 그런 친구가 최근 장사에 맛을 들였다. 임계점을 넘기니 매출에 탄력이 붙었다. 늘어날 사업 규모를 셈하는 표정은 제법 여유로웠다. 어깨에 힘 좀 빼라고 냅다 '임대료' 문제를 꺼냈다. 친구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

"임대료? 3년 전에 월 100만 원 정도 하던 게 지금 얼마인지 아나?"

"200만 원 정도 하나?"

'언제였더라' 하는 표정으로 웃었다. 답은 월 400만 원이었다. 재계약은 2년에 한 번 아닌가? 그런 거 없었다. 건물주가 월세를 해마다 어떻게 올리고, 관리비는 어떻게 씌우며, 세입자를 이용해 세금은 어떻게 피하는지 설명이 한참 이어졌다.

친구가 식당을 열기 전에는 이미 식당 하나가 망해 나간 빈자리였다. 가장 최근에 재계약을 하면서 친구는 건물주에게 월세 인상 유예(?)를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동안 건물을 살려놓은 공도 고려하길 바랐다. 사람 좋아 보이는 노신사 답은 단호했다. "그러면 나가셔야죠."

빈 점포가 속출하고 한없이 을씨년스럽던 창동·오동동 상가에 가까스로 활기가 돌고 있다. 창원시가 '원도심 재생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겨우 얻어낸 성과다. 안상수 창원시장은 산업도시 창원에 문화·예술 옷을 입히겠다며 대표 사업으로 원도심 재생 사업을 꼽곤 한다. 앞으로도 행정력이 이 지역에 소홀하지는 않을 듯하다.

새로 들어서는 건물, 재단장하는 가게에서 한동안 잊었던 기대가 엿보인다. 하지만 한쪽 편에는 이 활기를 위협하는 음습한 기운이 있다. 기회만 있으면 지역 양분을 빨아들이려는 임대료다. 그나마 창동·오동동은 원도심 재생 사업 초기부터 암묵적으로 건물주와 상인회, 지방자치단체 사이 '신사협정'이라는 게 있었다. 오랜 침체기에서 빠져나오려는 몸부림에 건물주도 호응하고 협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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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신호는 이렇게 감지된다. 옛 건물주가 새 사업자에게 건물을 판다. 지방자치단체가 공을 들여 살린 거리 덕에 권리금은 제법 두둑하게 챙긴다. 새 건물주는 투자 규모를 웃도는 수익을 세입자에게서 얻고자 한다. 그 욕구를 채울 수 없는 옛 세입자는 능력이 되는 새 세입자에게 밀려나야 한다. 이를 보는 새 건물주 주변 옛 건물주는 뻔한 셈을 다시 하게 된다. '신사협정'은 그렇게 깨지게 된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 사람들이 몰리고 이 과정에서 임대료가 오르면서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이다. 부산시는 최근 광복동, 감천 문화마을 등에서 나타나는 이 현상으로 골머리를 앓는다고 한다. 다행히 창원시는 이 문제가 지닌 심각성을 어느 정도 감지한 듯하다. '신사협정'을 넘어 조례 등 제도적 장치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참고로 부산 광복동에서 2㎞ 정도 떨어진 곳에서 식당을 하는 그 친구는 '원도심 재생사업'을 혐오했다. 부산시가 막대한 세금을 들여 건물주 간만 키웠다는 게 그 친구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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