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우해이어보] (17) 같은 물고기로 혼동하기도 했던 어종 '너무 작아서', '상하기 쉬워서'귀한 대접 못 받아

이번 <우해이어보> 탐사 기행의 대상 어종은 요즘 한창 제철을 맞은 멸치다. <우해이어보>에는 우리 지역의 양섬에서 이 어종이 많이 난 걸로 기록되어 있어서 이번 탐사는 다시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고현리에 있는 양도로 떠난다.

이 섬은 <세종실록지리지> 경상도 진해현에 범의도(凡矣島)란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범의도는 현 남쪽에 있는데, 수로로 3리다. 백성들이 내왕하면서 농사를 짓는다."

그러다가 <우해이어보>에 양섬(羊島)으로 바뀐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 책을 쓴 1803년 이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맞은편의 송도와 더불어 대범의도 소범의도라 불리는데, 실제 섬의 규모는 엇비슷하지만, 경지면적이 송도의 2~3배 정도가 되므로 이곳 양섬이 상대적으로 큰 섬으로 인식된 것으로 보인다.

멸치를 앞서 정어리란 놈을 먼저 소개해야겠다. <우해이어보>에 멸치와 동시에 소개되기 때문이다. 실제 정어리와 큰 멸치는 비슷하게 생기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정어리를 포식하기 시작한 때는 신석기시대부터다. 욕지도, 연대도 등 남해의 바깥 섬과 연안의 영도, 동삼동 등지에 남겨진 당시 사람들의 쓰레기터인 조개더미(패총)에서 도미, 농어, 돔, 방어, 참치, 대구, 상어, 가오리, 숭어 등과 정어리의 뼈가 함께 출토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기록으로는 전해지지 않다가 바로 이 책 <우해이어보>에 근연종인 멸치와 함께 실리면서 본격적으로 그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정어리는 <우해이어보>에 증얼이라 했고, <현산어보>에는 증얼어라는 속명으로 나온다.

▲ 남해군 미조활어위판장에 나오는 요즘 제철 어종들. 중개인들 말로는 멸치와 정어리, 청어 새끼 등이 섞여 있다는데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이서후 기자

난류성 어종인 정어리는 우리나라의 모든 바다에 서식하며 겨울에는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날이 따뜻해지면 여름에는 북쪽으로 회유하면서 연안으로도 몰려든다. 몸빛은 등이 짙은 청색이고, 옆구리와 배가 은백색인 대표적인 등푸른생선이다. 다른 종과 구별되는 두드러진 특징은 옆구리에 한 줄로 된 일곱 개 안팎의 흑청색 점이 있어서 쉽게 알아 볼 수 있다. 담정은 <우해이어보>에 이렇게 적었다.

"정어리는 색이 푸르고 머리가 작다. 관북지방의 바다에서 잡히는 비웃(비의청어·飛衣鯖魚)과 비슷하다. 맛은 달지만 맵싸하다. 잡아서 곧바로 구워먹거나 국을 끓여도 먹을 만하다. 며칠이 지나면 더욱 매워져서 사람들에게 두통을 일으키게 한다. 이곳 사람들은 정어리를 증울(蒸鬱)이라고 하는데 증증울울이란 말은 '덥고 답답해서 머리가 아프다'는 말이다. 이곳 사람들은 이 물고기는 습한 풍토병인 장기(축축하고 더운 땅에서 생기는 독한 기운)가 변한 것이라 하며, 정어리가 많이 잡히면 반드시 장려병(기후가 덥고 습한 지방에서 생기는 유행성 열병이나 학질)이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이 물고기를 많이 먹지는 않고, 잡으면 인근의 함안 영산 칠원 등 물고기가 희귀한 지방으로 가서 판다."

▲ 창원시 마산합포구 고현리에 있는 양도. <우해이어보>에는 양섬으로 나오며 멸치가 많이 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최헌섭

담정의 말처럼 정어리는 등푸른생선으로 생김새가 청어와 닮았다. 맛은 달지만 맵싸하다고 한 것은 통째 구워서 내장까지 먹은 느낌을 나타낸 듯하고, 국을 끓여도 먹을 만하다고 했다. 필자도 어린 시절에 이즈음 어머니께서 고등어와 정어리 같은 등푸른생선이나 큰 멸치를 추어탕처럼 맑게 끓여주시던 국을 맛나게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고기의 이름을 증울 또는 증얼이라 한 것은 사후 부패가 진행되어 싱싱하지 못한 것을 먹었을 때 식중독을 일으키는 부작용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이 물고기를 많이 먹지 않고 수산물이 귀한 가까운 내륙의 함안 영산 칠원 등에 내다 판다고 했다. 아마 이때는 젓갈처럼 염장한 상태로 유통하였을 것이다. 손암 정약전의 <현산어보>에도 정어리가 나오는데, 그는 이를 멸치의 일종으로 보아 소추를 멸치, 대추의 속명을 정어리라 소개하였다. 손암은 정어리를 두고 "큰 놈은 5~6치 정도이고 빛깔이 푸르고 약간 길며 지금의 청어와 닮았고 멸치보다 먼저 회유해 온다"고 적었다.

<우해이어보>에는 정어리와 함께 근연종인 멸치(말자어·末子魚)를 소개하고 있다. "말자어라는 근연종이 있다. 정어리와 비슷하지만 매우 작다. 바닷가의 여러 곳과 서울에서 팔리는 말린 물고기 포인 멸아(멸치)와 비슷하다. 이 지방에서도 멸치가 생산되는데, 이곳 사람들은 그것을 멸(幾)이라고 한다. 선어로 쓰거나 말리기도 하는데, 말자어와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관동지역 바닷가 사람들의 말을 듣기로는 멸치도 역시 장기와 이내 때문에 생기기 때문에 매번 무덥고 안개가 끼어 흐릿할 때 조수가 부글거리는 곳으로 가서 삼태기로 건져 올린다고 하는데, 대개 이러한 종류의 이야기들이다."

<우해이어보>에는 멸치의 이름을 말자어, 멸아, 몇, 멸 등으로 소개했다. <현산어보>에는 '추어'라 나오는데 속명은 '멸어'라 전하며 <전어지>에는 우리말로 '몃', 한자로 '이추'라 했다. 이름만으로 보자면 크기가 작아서 잡어처럼 인식한 것으로 여겨지며, 그리 귀한 대접을 받은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전어지>에 "나라 안에 많이 유통되니, 시골사람들도 먹게 된다"고 한데서 그때나 지금이나 누구나 즐겨 먹을 수 있는 뼈대 있는 국민 생선의 위상을 헤아려 볼 수 있다.

예부터 전국 어디서나 누구든 즐겨먹었다는 국민생선 멸치.

멸치를 먹는 방식은 선어를 먹거나 말려서 먹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조리법은 소개하지 않았다. 요즘이 멸치 선어를 조리해 먹기 좋은 때인데, 날것은 주로 무침회로 즐긴다. 익혀 먹는 방법은 <우해이어보>에도 소개된 바와 같이 정어리만큼 큰 놈은 구워 먹거나 국을 끓여 먹는 것이 좋다. 요새는 간간하고 맵싸하게 조린 쌈밥이 널리 사랑받는다.

담정은 멸치를 잡는 시기와 방식도 소개하고 있다. 그때는 요즘처럼 해무가 잦을 때가 멸치잡이의 제철이었나 보다. 이때 조수가 부글거리는 곳에 가서 삼태기로 떠내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물살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멸치가 수면 바로 아래를 떼 지어 이동하면서 물살을 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최헌섭 두류문화연구원 원장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